나는 부모라 감당한다지만 선생님은 무슨 죄로
사실 약물치료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권했던 건 아이의 1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
4월 첫 면담 때부터 선생님은 아이의 약물치료 여부를 물어왔다. 약물치료는 최대한 유보하고 싶다는 나의 말에 이미 같은 반 친구들 중 일곱 명이 ADHD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레 알려주었다. 그 후로도 선생님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조언을 구해가며 약물에 대한 나의 막연한 두려움을 덜어주려고 지속적으로 애를 썼다.
"선생님, 저는 약을 쓰는 게 정말 무서워요. 지금은 감당하기 힘든 저 에너지가 이 시기를 지나고 나면 좋은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당장 눈에 보이는 기질이 불편하다고 약을 써서 눌러버리면 아이가 가진 무수히 많은 가능성까지 사라져버릴까봐 겁이 납니다."
"어머니, 저도 아이 키우는 부모로서 어머님 마음을 이해해요. 저는 하라가 약을 쓰지 않고서는 절대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교사경력 20년을 통틀어 하라는 처음 보는 유형의 아이예요. 솔직히 처음엔 많이 놀랐습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하라가 날이 갈수록 개선가능성을 크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에요. 분명히 2학년 되면 더 좋아지고, 3학년 되면 더더 좋아질 겁니다. 다만 제가 걱정되는 점은 아직 주변의 이목을 끄는 요소가 많이 보인다는 거예요. 약을 씀으로써, 불필요하게 주목받는 상황을 최대한 줄였으면 하는 거지요. 제가 아무리 어머님과 하라를 보호하고자 해도 1학년 전체로 말이 새어나가면 일이 커져요. 요즘 학부모들은 우리 때랑 달라요, 어머님. 한 번 학부모들 눈 밖에 나면 복잡해져요."
선생님 말씀에 일리가 있었다.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를 선택했고 학교에선 담임선생님이 아이의 보호자였다. 공동책임자인 선생님의 지속적인 권유와 호소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의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선생님 본인의 고충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위한 진심어린 조언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내 신념을 끝까지 고집할 거라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내게는 홈스쿨링을 강행할 동기도, 각오도 없었다. 부모인 내가 마이너의 삶을 살고 있을지언정 아이가 마이너의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훗날 아이가 마이너의 삶을 선택한다면 존중하겠지만 지금은 나의 선택이 아이의 향후 5-10년간의 삶을 결정짓는다. 아이는 어쨌든 사람들 가운데 어울려 살아야 하고, 그렇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수하는 공교육 과정 속에서 그들과 어울리는 법을 체득하기를 바랐다.
아이를 계속 학교에 보내야 했다. 사고가 있은 후에 선생님의 말을 따라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해주기를 청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이런 나의 속사정을 털어놓았을 때, 상담선생님은 예전에 경험한 다른 ADHD아동의 담임선생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의 진료일에 맞춰 아이의 부모와 동행한 문제의 담임선생님은 "이 아이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약을 쓰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을 시켜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약을 쓰고 있다는 전문의의 답변을 듣고서도 그 담임선생님은 이대로는 이 아이를 가르칠 수 없으니 약을 더 세게, 더 많이 써 달라고 재차 주문했단다. 아이와 아이의 부모가 듣고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상담선생님과 담임선생님, 아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아이부모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노라고 상담선생님은 당시를 회상했다. 그에 비하면 내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그동안 얼마나 우리를 존중해주었던가. 그런 담임선생님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앞서 고백했듯 나는 결국 약을 먹이지 못했고 이후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에서도 이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병원 진료실 앞에서 갈등할 때와 마찬가지로 거짓말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지금껏 함께 고민해준 선생님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을 속일거라면 도움을 받지 말았어야 한다.
그렇다 해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약의 필요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어필해왔던 선생님에게는 '약을 처방받았지만 먹이지 않았다.'는 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만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야 부모니까 아이의 남다른 일상을 감당한다지만 선생님은 무슨 죄로 이 아이의 담임이 되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고생을 감내해야 한단 말인가.
약이 도와줘서 말을 들으면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라 약이 한 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조금만 더 해보겠다던, 아이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당장 약을 쓰는 것이 급한 일은 아니니 한달만 더 지켜보자던 상담선생님의 제안도 함께 전달했다. 두배로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약물이 채워야 할 부분까지 두 배로 더 노력하겠다고, 그렇게 한달만 더 지켜본 뒤에 그때도 여전히 약물을 써야한다는 소견이 나오면 그때는 반드시 쓰겠다고, 묻지도 않는 선생님에게 앞으로의 나의 각오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선생님은 나의 결정을 못 미더워하면서도 따라주었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를 믿고 아이를 지도해요. 어머니도 그러셔야 하구요. 어떤 결정이든 하라에 대한 거라면 지금처럼 저한테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약속한 한달이 되기 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