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쓸까, 거짓말을 할까(1)

ADHD약을 앞에 두고 신념과 양심이 부딪쳤다

by 날필

첫 주에 병원에서 처방받은 ADHD약을 먹이지 못했다. 약에 대한 반응(약효나 부작용)을 보기 위한 극소량의 시약이였기에 복용 후에도 큰 변화는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내키지 않는 손놀림으로 몇번이나 약봉지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 일주일을 흘려보냈다. 진료일이 되어 다시 병원을 찾는 마음이 무거웠다.


진료실에는 아이가 먼저 들어가고, 아이가 나오면 다음이 내 차례다. 진료실 앞에선 잘못한 것도 없이 마음이 묵직해진다. 어른인 나도 그러한데 하물며 아이는 어느 정도의 압박감을 느꼈을까. 그 압박감 속으로 아이의 등만 떠밀지 않고 함께 나눠질 동료가 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아이가 진료실에서 나와 나를 흔들었다.
"엄마, 엄마 들어오래."

가슴이 방망이질쳤다.

상담선생님은 늘 그렇듯 환한 미소와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일주일간 어떠셨어요? 약 복용 후에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었나요?"

거짓말을 할까도 생각했다. 플라시보 효과는 본인 뿐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나게 마련이니까. 어쩌면 아이가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아이를 달리 보기 시작할지도 몰랐다.


사고 이후 A의 엄마도 말하지 않았던가. 왜 애를 약을 안 먹이느냐고. ADHD약을 처방받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그녀의 말은 바꿔 말하면 "왜 마땅히 ADHD약을 먹여야 할 아이를 안 먹이고 방치해서 이렇게 주변에 피해를 주세요?"였을 것이다.(사고 관련글: https://brunch.co.kr/@rawfeel/21#comment)


마치 약을 먹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어쩌면 약은 효과가 있든 없든 간에, 우리에게 손 쉬운 도피처가 되어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약을 아이의 주스잔에 털어넣을 수만 있다면, 하다못해 약을 먹이고 있다고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말이다.




ADHD약을 받아온 다음날,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하라야, 이건 약이야. 가끔 하라가 하고 싶지 않은데 뇌가 시켜서 잘못하게 될 때가 있잖아. 네가 '뇌야, 이제 그만해'라고 해도 뇌가 말을 안 들을 때, 그럴 때 이 약이 너를 도와줄 수 있어. 어때? 한번 먹어볼래?"

그는 지금까지 내가 건넨 것을 거부한 적이 없다. 이유를 설명하면 무엇이든 받아들였다. 만약 아이 스스로 약을 선택한다면 더는 망설이지 않으리라. 아이에게 결정을 유보할 정도로 나는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엄마. 약이 나를 도와줘서 뇌가 내 말을 들으면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라, 약이 한 거잖아."

아이의 입에서 상상도 못했던 말이 나왔다.

"내가 조금만 더 해볼래. 엄마."




진료실 의자 위에 앉아 대답을 기다리는 선생님 앞에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상기했다. 나는 왜 병원을 찾았던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처방받은 약을 먹이지도 않고, 먹였다고 속이기까지 할 거라면 나는 왜 병원을 찾았나.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전문가를 기만하면서 그 도움을 바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죄송해요. 사실은...약을 안 먹였어요."

선생님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랬군요. 왜 안 먹이셨어요?"

나무라는 말투가 아니었다. 선생님은 여전히 온화한 표정으로 내 행동의 이유를 물으셨다.


"저는 약을 보면 '부작용'이라는 말이 먼저 떠올라요. 어쩌면 이 약이 앞으로 아이의 정신건강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겁이 났어요."

"어머니, 그렇지 않아요. 약이라는 건 지속적으로 먹어야만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거예요. 문제가 생기면 약을 끊으면 되는거구요. 그렇게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전문가의 시선에서 약에 대한 일반인의 막연한 두려움은 얼마나 허망하게 보였을 것인가? 그러나 선생님은 조금도 당황하거나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반응에 용기를 내서 아이와의 대화를 그대로 옮겼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아이가 그렇게 말하니 더 고민이 되셨겠어요. 그러면 이렇게 해요. 어머님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신 게 있으니 일단은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주세요. 네 말대로 당분간은 약의 도움 없이 스스로 조절하는 노력을 해보고, 대신에 한달이 지났는데도 병원에서 약을 권유한다면 그때는 약을 써야 한다고. 그렇게 다짐을 받으세요."


이런 게 전문가의 노련함인 것일까? 예상 밖의 답변을 가져온 내담자에게 상담선생님은 조금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청한 뒤 납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일방적으로 병원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선택권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었다. 나도 아이의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 앞에서 이와 같은 태도로 대화에 임해야겠다고, 진료실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약을 쓸까말까를 결정하기 전, 한달이라는 시간이 더 생겼다.

한달이 지나서도 여전히 정신과에서 처방전을 내민다면 그때는 기필코 약을 쓰겠다고, 내가 먼저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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