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생색내지 않고 우리를 치료했다
학교에서의 사고 이후, 나는 거의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학교도서관으로 향했다. 학폭위를 희망하는 A엄마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중간놀이 시간만이라도 사고의 당사자들을 떨어뜨려 놓자는 담임선생님의 중재안이었다. 거기에 A엄마의 요구가 더해져 우리 아이는 2주일씩, A는 1주일씩 번갈아가며 도서관에 있기로 했다. 다소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나는 군말없이 따랐다. A와 A엄마를 위해, 무엇보다 우리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아이가 도서관에 가 있게 하자고 합의한 것이지, 엄마가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막 친구들과 노는 기쁨을 알아가던 아이에게 모두가 어울려 노는 중간놀이시간에 너 혼자 도서관에 가 있으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어떤 엄마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조용히 학교를 오가고 싶었지만 중간놀이시간이다 보니 자꾸만 아이들 눈에 띄었다. 내게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는 아이들에게 방문이유를 부자연스럽게 얼버무리기보다는 먼저 반갑게 인사하는 쪽을 택했다.
"동혁아 안녕! 오~브롤스타즈 옷 입었네~"
"민찬인 인사를 참 잘 해~멋있어!"
"예서도 책을 참 좋아하는구나! 오늘은 무슨 책 찾으러 왔어?"
점차 나는 도서관에 가면 '원래 있는 이모'가 되었고 아이들도 더 이상 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한 아이는 이모는 어떻게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냐며, 우리 엄마에게도 좀 알려달라며 진지하게 요청해오기까지 했다.
9월부터 12월까지. 공룡에서 파충류, 파충류에서 곤충, 사마귀에서 잠자리, 잠자리에서 장수풍뎅이, 장수풍뎅이에서 사슴벌레로 옮겨가는 아이의 관심사에 따라 아이가 들고오는 책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은 즐겁기도 했고 때론 매일이 똑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와 함께 30분간 책을 읽으면서 아이는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것을 참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각자의 책을 읽다가도 중간놀이시간이 끝나갈 즈음엔 꼭 엄마가 읽어줄 수 있을만큼 너무 길지 않으면서도, 또 너무 빨리 끝나버리지는 않을만큼 적당히 긴 책을 들고 와 내 앞에 펼쳐놓았다. 대부분 생태에 관련된 책이었는데 우리는 책을 읽으며 알게 모르게 수많은 토론을 했다.
"엄마 난 이런 사슴벌레를 야생에서 잡아다가 키우고 싶어."
"그렇군. 근데 사슴벌레가 야생에서 살다가 우리집에 오면 좋을까?"
"좋지 않을까? 따뜻하고 먹이도 항상 있고."
"글쎄. 이미 야생에서 한번 살아봤는데 아무리 먹이가 있고 따뜻해도 자유롭게 밖에서 돌아다니던 때가 그립지 않을까?"
"근데 얘네 먹이 찾으려고 돌아다니는 건데? 먹이가 항상 있으면 안 돌아다녀도 되지."
"얘네 원래 겨울에 겨울잠 자잖아. 근데 깨어있으면 수명이 줄어드는 거 아냐?"
"아니지. 먹이도 항상 있고 따뜻하면 더 오래 살지."
"무조건 오래 살기만 하면 좋은거야? 너는 남의 집 가서 살면 오래 산다고 하면 거기 가서 살고 싶어?"
"아니."
"사슴벌레도 똑같지 않을까?"
"그 대신 내가 잘해줄거야."
유치원생활이 힘들어서 일곱살 가을 겨울을 엄마와 함께 도서관에서 보냈던 아이. 그 가을 겨울이 지나도록 수백권의 책을 읽어달라고 들고 오던 아이. 그 아이가 이제 혼자서도 책을 읽을 수 있고, 책을 읽다말고 이렇게 길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평온한가. 매일매일 도서관에서 아이를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한 일이었다. 아침에 두 아이 준비시키느라 미처 어루만지지 못하고 보냈던 마음도 한번 더 다독여줄 수 있고, 뺨 한 번 더 어루만져 교실에 들여보내는 것이 아이보다 나를 더 안심시켰다.
학교도서관을 오가는 일은 자의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지만 일상의 작은 활력이자 바쁜 아침을 만회할 기회가 되었다. 무너졌던 마음이 천천히 회복되었고 나와 아이를 안쓰러워하는 담임선생님께 진심으로 말씀드릴 수 있었다.
"저는 괜찮아요. 시간은 어찌 됐든 가니까요. A와 A어머님 마음 많이 다독여주세요. 제 아이는 제가 잘 다독일게요."
그 말을 마치고 웃어보이는데 내가 나를 안아주는 기분이었다. 나의 말에 내가 위로받았다. 선생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책은 소리없이 우리를 응원하고 위로하고 치유했다. 아무도 모르게. 우리가 나아지는지도 모르게. 그래서 나중에는 우리가 아팠는지조차 모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책에서 희망을 봤다.
학교입학을 전후로 적지 않은 사람이 아이에게 약을 쓸 것을 권했다.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 원장선생님, 상담선생님, 놀이치료선생님, 담임선생님, A의 엄마까지. 그들의 호소를 외면할 수 없어 수차례 병원을 찾았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병원의 존재이유가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보니 병원에 있을 때 아이와 나는 우리가 '환자', '치료의 대상' 이라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병원에 가야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는 알 수 없는 중압감을 느꼈다. 허나, 그 병원에서도 우리는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