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난 아픈 곳이 없는데 왜 병원에 온 거야?"
매주 우리는 정신건강의학과로 향했다. 아이도 나도 정신과는 처음이었다.
병원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훅 끼쳐오는 무거운 공기. 낙후된 동네라 그런 것인지 정신과라는 곳이 원래 이런 것인지, 난생 처음 발을 들인 정신과는 그간 미디어를 통해 막연하게 상상하던 이미지 딱 그대로였다. '정신건강의학과'나 '정신과'라는 단어로 애써 외면해보지만 기어이 '정신병원'이라는 단어를 맞닥뜨렸을 때 느껴지는 그 음습한 기분. 나 역시 그러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아이에게만은 그 기분이 전이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매우 의식적으로' 아이 앞에서 우리의 행선지를 병원이라고 칭하지 않았다. 놀이방에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 관심이 아주 많은 선생님이 너와 함께 놀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싶어한다고,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는 조금의 거부감도 없이 따라나섰다.
wee센터(학생들의 학교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학교와 연계되어 각종 심리검사와 상담을 진행하는 기관)에서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우리 동네 유일의 정신과는 여러 모로 열악했다. 작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가끔은 방과 방 사이의 대화가 들릴 정도였으며 사방의 벽마다 피부미용/다이어트/마늘주사 등의 홍보문구가 매출증진을 위해 열일 중이었다.
좁디좁은 대기실에는 무언가 불안정해 보이는 어른들로 가득했다. 쉴 새 없이 욕을 하는 사람, 다른 사람이 보든말든 3인용 소파를 차지하고 드러누워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사람, 데스크에서 몇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 기껏해야 중고등학생 정도가 다리를 떨거나 손톱을 물어뜯거나 신경질을 부리거나 그도 아니면 심란한 부모의 타박을 묵묵히 감내하며 앉아있을 뿐, 우리 아이 또래의 어린 아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짐작컨대 ADHD아동을 둔 대다수의 부모들은 다양하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인근 대도시의 심리상담 전문센터를 찾는 모양이었다. 나처럼 운전이 서툴러 기동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동네 정신과라도 감지덕지하며 찾을 수밖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피차 나같은 이들일 것이다. 여기밖에 달리 대안이 없는 사람들. 대안이 없는 사람들이 잔뜩 모인 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아이는 조금 무서웠던 것 같다. 지금까지 그가 발을 담궜던 모든 세상(유치원, 또래집단, 친척모임, 주일학교 등)에서 본인보다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는데, 여기서는 모든 사람들이 갖가지 현란한 색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늘상 무채색의 사람들 사이에서 형광색처럼 홀로 튀어왔던 아이는 형형색색으로 발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당혹감을 느꼈다. 아마 아이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정도라고?'
'나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이렇게 보인다고?'
첫날, 상담치료와 놀이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난 아픈 곳이 없는데 왜 병원에 온 거야?"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병원 곳곳의 문구,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 수많은 지표들이 이곳이 병원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아이가 모를 리 없었다.
"우리가 아픈 곳이 없어도 병원에 오잖아. 주사 맞으러도 오고. 또 지금 건강한지도 보러 오고. 그런 것처럼 하라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하라를 힘들게 하는 건 없는지, 하라도 모르고 엄마도 모르는 하라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가끔 필요하거든."
"엄마. 혹시 내가 학교에서 말을 너무 안 들어서. 나 때문에 A가 다쳐서. 그래서 여기 오는거야?"
그런 이유도 없지 않아,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듭 그런 게 아니라고,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미 아이가 병원에서 본 수많은 사람들은 아이의 기준에서 '누구나'가 아니었다.
병원에 오기 전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었다.
아이가 자신을 '누구나'와 많이 동떨어진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상관없는 듯 상관있는 이야기 하나.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보면 다양한 부모유형을 보게 된다. 개중에는 간혹 아이보다 본인의 치료가 시급해보이는 부모들도 있었다. 오히려 아이는 자신의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는데, 아이 때문에 이런 곳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못내 한심스러운 것인지 아이를 문제덩어리처럼 대하는 문제덩어리 부모들이 종종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 또한 스스로에게서 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살피곤 했다.
표지이미지 출처 : 마인드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