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는 성향이다. 결함이 아니라.
아이가 ADHD판정을 받고서부터 미안할 일이 많아졌다.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이 주변이 시끄러워지면 가슴이 쿵쿵 뛰었다.
누군가 아이를 빤히 바라보면 안절부절못하다가 자리를 피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어느새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미리 사과를 하고 있었다.
"저희 아이가 행동이 조금 과격해서요, 계속 가르치고 있는데 아직 조금 부족하네요."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나는 무엇에 대해 누구를 두고 미안해했던 것일까.
나의 잦은 사과, 이른 사과가, 섣부른 사과였다는 걸 알게된 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입학식 날부터 모두의 주목을 받았던 아이는 3월 한달간 반에서 가장 이름이 많이 불린 아이었을 것이다. 첫날에는 집에 와서 30분을 목놓아 울었다. 선생님은 자기가 하는 것마다 혼을 내고, 친구들은 그런 선생님 편만 들고, 내 마음을 알아줄 엄마는 아무데도 없었다고. 그런 아이를 안고 토닥여주는데 목구멍으로는 뜨겁고 덩어리진 것이 넘어갔지만 한편으로는 이만큼 자라 엄마가 없는 곳에서 시련을 겪고 온 아이가 대견했다.
"원래 새로운 곳은 다 힘들어. 엄마도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겁이 나. 그래서 평소엔 하지 않던 행동을 해버리기도 해. 넌 아직 여덟살이잖아. 힘든 게 당연한 거야."
생각보다 빠르게, 아이는 학교생활에서 재미를 찾아냈다. 친구가 생긴 것이다. 마음이 꼭 맞는 친구, A가 생긴 후로 아이는 전처럼 학교를 미워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내 아이에게, 또 그 아이에게 고마웠다. 그러나 A의 엄마는 나와 입장이 달랐던 모양이다.
아이를 학교 현관까지 올려다주고 내려오는 길에 누군가가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A의 엄마였다. A가 아이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둘이 많이 친해진 모양이라고. 분명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얼굴 어딘가 묻어나는 수심을 그때는 몰랐던건지, 이제와 내가 기억에 필터를 덧씌운건지.
A의 엄마와 나는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공교롭게도 A 역시 선생님의 관심대상이었고, 그런 선생님의 관심이 왜곡된 시선과 섣부른 오판에서 비롯되었다고 느끼었던지 A의 엄마는 비슷한 처지의 나에게 이런저런 속내를 털어놓곤 했다. 결코 나를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아이의 성향으로 인해 여러 일을 겪고 고민해왔던 나로서는 아이 담임선생님의 특별관리가 그저 송구스러웠을 뿐,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말수가 없다는 것 외에 크게 눈에 띌 행동을 하지 않았던 A는 학교 입학 전에 크게 지적받을 일이 없었을테고, A와 우리 아이를 비슷한 선상에 놓는 것조차 A엄마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런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뭐라고.
"A가 뭐 문제랄 게 있나요. 우리 아이야 과격해서 문제지만, A는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구요."
"항상 불안해요. 제 아이가 거침이 없다보니 A가 다치진 않을까, 영향을 받진 않을까."
난 누구를 위해 내 아이를 팔아 열심히 남의 아이를 변호해주고 그 엄마의 마음을 위로해주었을까?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내가 모정과 인정을 가장해 내 아이에게 몹쓸짓을 했다는 것.
A가 다쳤다. 둘이 놀다가 A가 넘어져 부딪치면서 크게 다쳤다. A의 엄마는 공포스럽다고 했다. 차라리 싸우면서 있는 힘을 다해 때린 게 부상으로 이어졌다면 이해를 하겠는데 놀다가 실수로 친 걸로 이렇게까지 다치면 어떻게 함께 놀겠냐, 무섭다고 했다. 아이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고 그래서 지금까지 불안하지만 지켜봐왔다, 상처를 주고싶진 않지만 행동이 교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울리게 하는 것이 공포스럽다, 는 이야기에 나는 감히 상처를 받을 수도 없었다. 받아들였다. 상대방이 느끼는 공포를 인정했다. 다시는 어울리지 않게 하겠다, 이 일로 인한 모든 책임을 다 지겠다고 용서를 구했다.
그렇게 끝나는 듯 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A와 우리 아이가 상황을 다르게 기억했다. A의 엄마는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 아이엄마까지 아이 말만 믿고 자신을 기만한다며 펄펄 뛰었다. 같은 반 아이들 중에 그 상황을 봤다는 증인이 있으니 주변을 수소문해서라도 진상을 알아보겠다며 일을 키울 기세였다.
어쨌든 이 일로 크게 다친 건 A였다. 다친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질 아이엄마에게 내 입장을 피력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A의 엄마가 원하는대로, A의 엄마가 보는 앞에서 A가 기억하는대로 A에게 사과를 했다. A가 다쳤을 때에도, 학교에 가서도 계속해서 A에게 사과하고 미안함에 울며 잠들던 아이는 그 집 거실에서 마침내 마지막이 될 사과를 건넸다. 어색하게 사과받는 아이와 눈치보며 사과하는 아이. 사과가 끝나자 바로 손을 잡고 어항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아이. 사과와는 별개로 A의 엄마는 A와 우리 아이가 일절 어울리지 않기를 원했기에 두 아이가 서로를 여전히 좋아하는 것이 너무나 가슴아팠다. 그 집을 나서자마자, 문 앞에서 아이를 그러안았다. 아무 말도 못했다. 고작 여덟살. 제 실수로 인한 대가를 너무나 톡톡히 치러낸 아이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 그저 안고. 안았다.
상황을 보았다던 반친구, 증인이라던 그 친구가 사실은 별 생각없이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해들었을 때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엎드려 토하듯이 울었다.
"엄마가 미안해."
"널 믿는다고 말만 하고 끝까지 너를 지켜주지 않아서 미안해."
"엄마도 힘든 자리에 너를 데리고 가서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잘못 엄마가 두고두고 갚을게. 미안해 미안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다시 어울렸고 그러다 A가 머리를 부딪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A의 엄마는 이번엔 학폭위 얘기를 꺼냈다. 그것도 그 전의 사건, 이미 여러 차례 진위를 가리고 사과했던 그 일로 학폭위를 열고 싶다고 했다. 학폭위의 목적은 반을 바꾸기 위해서. 학폭위까지 열고 싶지는 않지만 두 아이가 완전히 분리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반을 옮기는 것이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처벌'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니까 함께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내 오지랖이었나 싶어요."
"아이가 자기 행동에 대해 전혀 반성을 안 하는 게 아닌가요?"
"(아이가 ADHD인데) 왜 약을 안 먹이세요?"
"솔직히 처음부터 인상이 좋진 않았잖아요.
그때 그냥 어울리지 말라고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싶고."
상대의 입에서 떨어진 많은 말들이 내 발 앞에서 살아 팔딱거렸지만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 엎드려 울던 그때처럼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 아이가 없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다. 아이가 듣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받아낼 수 있었다. 다행히 학폭위는 없던 일로 하고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분리하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해서 나는 거의 매일같이 학교를 오갔다.
모두가, 심지어 A의 엄마까지 인정하듯 이 일은 사고였다. 누구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상대를 해하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끼리 놀다 사고가 났는데 그 사고가 너무 컸다. 사고로 인해 다친 아이와 그 부모가 감당해야 할 고통이 너무 컸다. 그렇다고 그게 함께 놀던 아이가 ADHD이기 때문은 아니다.
큰 사고가 난 건 사고현장에 그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와 함께 놀면 위험해진다, 라고 생각하게 만든 건 바로 나다. 그 엄마에게 그런 생각의 빌미를 제공한 건, 내 아이를 두고 미리서부터 사과하고 양해를 구한 나에게 철저하게 책임이 있다.
아이가 ADHD인 것, 그 자체를 미안해하지 마라. 그것은 아이의 잘못도, 엄마의 잘못도 아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미리 굽신거리지 마라. 잘못에 대해서만 확실하게 사과하고 훈육하면 될 일이다.
ADHD를 부끄러워하지 마라.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에 미리서부터 위축되는 것이다. 엄마가 위축되면 아이는 더 위축된다. ADHD아이에게 집 밖은 매분매초 전장이다. 부모는 많은 순간 방패가 되어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가서 닿을 충격을 미리 감지하고 경험으로 치환할 수 있도록 돕는 방패. 쪼그라든 방패를 들고 전장 한가운데 서 있는 아이는 너무 가엾다.
뻔뻔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조건 감싸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책과 사과가 ADHD부모의 덕목인 양, 미리서부터 엎드려있지 말라는 이야기다. ADHD를 팔아 미리 면죄부를 얻을 생각일랑 접어라. ADHD는 결함이 아니다. 성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