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복판에서 아이는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나는 온몸에 힘을 주어 아이를 붙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힘들게 아이를 데리고 내려가는데 뒤늦게 나타난 D의 할머니가 우리 앞을 막아섰다.
"얘, 친구한테 그러면 안되지. 아무리 화가 나도 죽여버린다고 하면 안되지."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D의 할머니는 우리를 그냥 보내주었어야 했다. 뒤이어 D의 엄마가 나타났고 그녀도 꼭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를 내야 할지, 사과를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우리들이 흔히 짓는 표정.
D는 학기 초, 아이에게 큰 사고가 있은 후에 새롭게 사귄 친구였다. 원래 친하게 지내던 A와 사고* 이후 함께 놀지 못하게 된 아이는 D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A와의 일 이후로 나는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는 일에 있어서도 무척 조심스러워졌다. 행여 다른 학부모들이 아이를 위험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을까 늘상 눈치를 살폈고, 그런 아이가 자신의 아이와 친해졌다는 사실을 불쾌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생각 끝에 나는 D와 D의 엄마를 집으로 초대했다. 아이의 현재상황과 성향에 대해 미리 알린 후 여전히 친구로 남을지를 선택하게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도리'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냥 아이와 함께 싸잡혀 욕먹기 싫은 마음이었다.)
D의 엄마는 현관에서부터 무척이나 들뜬 얼굴로 동네 빵집의 빵을 종류별로 담은 빵봉지를 내밀었다. 아이가 친구집에 초대받은 게 처음이라 간밤엔 너무 설레 잠이 안 오더라는 그녀의 말에서 희미한 동질감의 냄새를 맡았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과연 그녀와 나는 같은 부류였다. D도 학교 입학 전에 ADHD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ADHD판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려진다. 뇌파검사라든지, 수차례에 걸친 아이와의 면담이라든지, 다각도의 심층적인 분석 이후에 종합적으로 진단이 내려질 것이라는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검사지와 잠깐의 면담, 부모의 진술만으로 간단하게 내려지는 것이 ADHD진단이다. 간단하지만 뒷맛이 깔끔하지는 않은, 부모에게 못내 찝찝함을 남기는 진단과정에 대해 우리는 격하게 공감했다.
ADHD약 처방도 비슷하다고 했다. 약은 쓰지 말고 일단 지켜보자고 하다가도 학교입학을 앞두고 있으니 약을 처방해달라고 부모가 강력하게 요청하면, 별말없이 약을 처방해준다는 것이었다. 한때 D아빠의 의견대로 ADHD약을 먹여보기도 했지만 약의 부작용으로 D가 식욕을 잃고 손톱을 물어뜯고 몹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중단했다는, ADHD아이를 둔 부모끼리가 아니면 하기 힘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 또한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D엄마로부터 공감받고 위로받았다. 이제까지 수많은 위로와 공감을 받았지만 이처럼 와 닿은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각자의 아이를 키워본 내공으로 서로의 아이를 이해했고, 서로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D와 우리 아이, D의 엄마와 나, 우리는 그날 의기투합했다.
본래 나와 D의 엄마는 각자 어울리는 동네엄마들이 따로 있었지만 D의 엄마는 나를 자신의 바운더리로 기꺼이 초대했고 나 또한 거부감없이 나와 아이를 그 안에 풀어놓았다. D의 친구들, 새로운 또래그룹은 아이와 성향이 잘 맞았다. 별로 큰소리가 오가지 않고도 두세시간씩 어울려 노는 일이 가능했다. 유치원 친구들과 놀 때는 상상도 못했던 평온함이었다. 물론 가끔씩 어른의 중재를 필요로 하긴 했지만 늘상 아이의 뒤를 쫓아다녀야 했던 유치원 친구들과의 놀이에 비하면 그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문제는 나와 D의 관계였다. 가끔 아이의 과격한 행동을 제재하는 나를 D는 못마땅하게 여겼고 시간이 갈수록 내게 적개심을 드러냈다. 처음엔 말로 불퉁거리는 게 고작이었지만 나중에는 발로 찬다든가 주먹으로 때리는 건 예사였고 한번은 안경이 날아갈 정도로 세게 얼굴을 후려치고 달아난 적도 있었다. 보다 못한 아이가 내게 '엄마 나는 D엄마를 안 때리는데 D는 왜 자꾸 엄마를 때려?"라고 물어올 정도였다.
모든 상황을 함께 보았음에도 D의 엄마는 D에게 제재를 가하지도, 내게 사과를 건네지도 않았다. 적절한 대처가 있었다면 정말로 괜찮았을 문제였다. 나도 내 아이를 통제하기 힘들 때가 많았으니까 D의 행동 역시 엄마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그러나 D의 행동에 대한 D엄마의 대처는 내 상식 밖이었다. 아이들끼리는 어울리더라도 어른들끼리는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을 즈음이었다.
D는 학기초부터 수업중에 가방을 매고 집에 가려는 돌발행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아이는 그런 것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런 것은 아이와 D가 친구로 지내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이와 D가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지긋지긋한 학교에서 서로의 마음을 잡아주는 친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문제의 그 날, D가 수업중에 가방을 매고 일어나 교실 뒷문으로 향한 것까지는 평소와 같았다. 그날따라 친구들은 우르르 달려나가 D를 붙잡았고 그 중에는 아이도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아이는 D의 가방을 잡았다고 한다. 그 순간 D가 아이의 팔을 물었고 이에 화가 난 아이는 D를 확 떠밀었다. 떠밀리면서 D는 벽에 부딪쳤다고 했다. 그 후로도 다른 친구들과 D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그 길로 아이는 교실로 들어와버려 뒤의 상황은 잘 모른다고 했다.
D의 엄마는 매우 조심스럽게 내게 연락을 취해왔다. D가 친구들에게 맞았다는데 그 무리 중에 '하라'도 있었다며 무척 섭섭해한다는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놓았다. 아이에게 물어 정황을 알아낸 후, D의 엄마에게 사과를 건넸다. 나는 내심 D가 아이를 문 것에 대한 사과가 돌아오기를 기대했다. D의 엄마는 D의 행동에 대한 언급없이 그저 나의 사과를 받은 후 전화를 끊었고 그순간 나는 그녀에게 적잖은 실망감을 느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 아이의 잘못에 대해서는 사과를 시키고 주의를 주겠다, 그런만큼 D의 행동에 대해서도 적절한 지도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D가 내 얼굴을 후려쳐 안경이 날아가던 순간의 당혹스러움과 당시 D엄마의 대처에 느낀 실망스러움까지 문자에 그대로 담겼다. 지금 생각하면 문자를 보낼 게 아니라 전화를 걸었어야 했다. 참 나답게 옹졸하게 찌질하게 구구절절 길게도 보냈다. 돌아온 D엄마의 답장은 나와 달리 짧고 간결했다.
네, 어머님 뜻 잘 알겠습니다.
그 짧은 문자에서도 그녀의 감정이 그대로 읽혔다.
짧지만 결코 쿨하지 않은 문자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더 이상 연락을 나누지 않았다. D의 엄마는 눈에 띄게 나를 어색하게 대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자기들의 놀이에 우리를 초대하지 않았다. 조금도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잖아도 D의 엄마와 거리를 두려던 참이었으니까. 그러나 어른들끼리의 감정이 아이들의 세계에 침범할 이유는 없으므로 나는 그저 저들끼리는 잘 지내기를 바랐다.
그러다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나의 소망이 무색하게도 아이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D를 향해 악을 쓰며 발악하는 중이었다.
"D를 죽여버릴거야!!"
악을 쓰는 아이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나는 D에게 물었다. 화를 억누르려 애를 썼지만 나의 목소리에는 원망과 물기가 가득 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