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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아는 맛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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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Mar 24. 2022

사람은 미워하되
오므라이스는 미워하지 말라

도망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머리가 아팠다. 사무실 안, 그것도 내 옆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부장 때문이다. 비행기에서도 담배를 피웠다던 8,9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 놀랍게도 2009년의 일이다.




"내일부터 출근해요. 날필 씨한테도 좋을 거예요. 뭐 여태 했던 편의점 알바 같은 거보단 훨씬 나을 테니까."

전시회 알바, 서점 알바, 교정교열 알바, 이력서에 적어넣은 수많은 알바경력 중에 '편의점 알바'만 콕 찝어 비아냥대는 이유가 뭘까. 수화기 건너편 남자의 말에 어쩐지 쎄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이겠지. 직감을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내 인생 최악의 알바가 시작됐다.


여의도 증권사 내에 딸린 작은 방송실이었다. 증권강의 촬영 시 PD를 보조하고, 촬영에 필요한 PPT를 준비하는 것이 나의 주업무라고 했다. 한참 업무내용을 전달받고 있을 때, 불쑥 옆자리에 앉아있던 부장이 말했다.

"나 한 대 피울게?"

딱히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다는 듯 그는 이미 담배를 꺼내들고 있었다.

"아 예 그럼요, 부장님. 편하게 피우십시오."

부장 앞에 한껏 몸을 낮추는 이 PD가 전화로 나의 채용을 통보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 PD는 부장과 충분히 멀어져 결코 들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자마자 부장을 향해 욕지거리를 했다. "어유, 저 개XX."


점심시간이 되자 그는 고급 오므라이스 전문점*으로 나를 데려갔다. 20대 초반의 내가 스스로 벌어 사먹기에는 비싼 오므라이스였다. 몹시 송구스럽고 빚진 기분이 들었다. 오므라이스를 먹고 들어오는 길에 PD가 불쑥 엘리베이터에서 질문을 던졌다.

"날필 씨 주변에도 촛불집회 뭐 이런 데 나가는 애들 있어요?"

"네?"

"그런 애들 어떻게 생각해요? 날필 씨도 그런 데 나가요?"

"글쎄요. 저는 아직 못 나가봤지만..."

"다행이네. 그런 거 나가서 우쭐대고 이러는 애들 하나같이 같잖더라고."

아. 내 생각이 궁금한 게 아니었구나.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의 화법을 파악했다. 최대한 사적인 대화를 줄이고 일만 잘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부장 앞에선 이마가 땅에 붙을 정도로 싹싹하던 PD는 방송실에선 왕처럼 군림했다. 그도 그럴 것이 AD(조연출) 두 사람이 모두 PD의 추천으로 채용된 지인들이라고 했다. PD와 AD는 주로 조정실에서 지시를 내렸고, 나는 스튜디오 안에서 헤드셋을 쓰고 조정실과 출연자를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 출연자 중에는 전문강사도 있었지만 간혹 증권사직원도 있었는데, 대부분 방송촬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무척 어색해했다. 그럴 때마다 PD는 스스럼없이 출연자를 향해 욕설을 던졌다. 

"저 개XX 진짜. 답답해 죽겠네."


방음이 잘 되는 스튜디오 안엔 나와 출연자 둘 뿐이었고, 조정실과 연결된 헤드셋은 나에게만 주어졌다. 그러니까 출연자를 제외한 모두가 PD의 욕을 들을 수 있었다는 소리다. 헤드셋을 타고 고스란히 전달되는 PD의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욕 먹는 당사자를 스튜디오 안에서 마주해야 하는 나는 번번이 모멸감을 느꼈다.


근무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날따라 촬영이 늦게 시작됐고, 하필 여섯 시 반에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일정이 잡혀있었다. 오늘은 꼭 여섯 시에 나가야 한다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 PD에게 양해를 구했다. 일단 촬영부터 들어가자는 PD의 말에 떠밀려 스튜디오로 향했지만, 여섯 시가 넘어도 촬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쉬었다 가자는 PD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스튜디오 밖으로 나갔다.

"이미 약속시간에 늦어서요, 저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애초에 내 근무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였고, 정시퇴근을 위해 그들의 양해를 구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죄송하다고 말한 건,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였다.


다음날 출근하니 아침부터 PD가 사람을 본체만체 했다. PD의 십년지기라는 AD가 나를 불러 조언해주는 척, 대놓고 사과를 종용했다.

"어제 그건 날필 씨가 잘못한거야. 오늘 가서 잘 얘기하면 PD도 이해할 거야. 가서 죄송하다고 해요."

지금 생각하니 스물 갓 넘은 알바생 사과 한 번 받겠다고 마흔이 다 된 성인 둘이 담합한 모양새가 우습기 짝이 없지만, 순진했던 그때의 나는 순순히 PD에게 가서 어제 일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본인친구인 AD를 시켜 내게 사과를 받아낸 PD는 몹시 아량을 베푼다는 듯 나의 실수를 용서하며, 아래와 같은 가르침을 덧붙였다.

"날필 씨 사회성이나 이런 게 이전 알바에 비해서 많이 떨어져요. 아무리 알바라도, 부서 회식도 참여하고 그래야 날필 씨를 추천한 나도 면이 서지."

이때까지만 해도 내 잘못인 줄 알았다. 이게 사회생활이구나.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더 분발해야지.




그날 이후로 나를 대하는 PD와 AD의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졌지만, '은근한 하대'에서 '대놓고 하대'로 바뀌었을 뿐이라 타격감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대놓고 욕설'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지금까지 봤던 출연자 중 가장 젊은 출연자였다. 강의는 처음이라고 했다. 관련부서에서 차출된 신입사원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출연자가 많이 헤맸다. 벌써 몇 번이나 NG를 낸 그는 모두에게 미안해하며 쩔쩔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자꾸 틀려서...많이 힘드시죠?"

"아니에요. 처음인데 이 정도면 잘하시는 거예요. 잘하고 계세요."

스튜디오 안에서 출연자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있는데 헤드셋 너머에서는 끊임없이 PD의 욕설이 들려왔다. 
"아 저 병신 XX."

"개 같은 XX 저거 진짜."


헤드셋을 통해 들려오는 욕지거리와 눈앞의 천진한 출연자 사이에서 말할 수 없이 참담해진 나는, 스튜디오 안에도 밖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상태로 누구에게 미안해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곧 다시 촬영이 시작됐고 출연자의 시선을 카메라 쪽으로 유도하다가, 툭 카메라를 건드리고 말았다.

"씨X! 카메라 건드리지 말라고!"

스튜디오 안팎의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AD가 소리를 질렀다. PD는 출연자를 향해 욕을 하고, AD는 FD를 향해 욕을 하는, 가관 중의 가관이었다. 누가 조정실의 그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주었는가?


그들은 출연자의 실수로 누적되어 있던 짜증을 만만한 나에게 쏟아냈다. 그만큼 화를 낼 일도 아니었지만, 설령 그만큼의 잘못이었다고 해도 욕을 하는 건 가당찮았다. 그날의 녹화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스튜디오를 나서면서 출연자가 오늘 정말 고생했다고, 덕분에 무사히 잘 마쳤노라고, 나에게 고마움을 표할 때에야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오늘 내가 출근해서 들은 최초의 따뜻한 말, 인격적인 대우라는 것을. 마음이 짜게 식었다. 시급이 짠 건 견딜 수 있지만 마음이 짠 건 견딜 수 없었다.


"여어, 날필 씨. 다음달에도 계속 나올 거지?"

사무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는 부장이, 복도를 지나다 아무렇지도 않게 근속여부를 물어왔다. 딱히 이런 식으로 알릴 생각은 없었지만, 굳이 묻기에 친히 답해줬다. 이달까지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라고.

"어어? 그래? 그럼 안 되는데...어허...일단 알겠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PD에게로 향하던 부장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사무실 안에서 시도때도 없이 피워올리는 자신의 담배연기도 알바의 퇴사이유 중 하나라는 사실을. 곧 PD가 조정실로 나를 불러 무섭게 을러댔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나는 알바고, 마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둘 수 있는데, 니깟 게 화를 내든말든 내가 알 바냐.


"날필 씨, 그만둔다는 걸 왜 부장한테 바로 말해요? 나한테 말해야지?"

"지나가는데 물어보시니까 제 의사를 말씀드린 건데요?"
"아니, 그래도 먼저 나하고 상의를 해야지 왜 멋대로 행동하냐고!"
"제가 가서 말씀드린 게 아니고, 저한테 와서 직접 물어보시는데 그럼 제가 어떻게 했어야 해요?"

"...됐으니까 가서 할 일 해요." 그리고 혼잣말처럼, 다 들리게 덧붙였다. "내가 짜증나서 진짜."

"네." 나 또한 혼잣말처럼, 그러나 분명히 들릴 만큼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거야?" 그렇게 사사건건 비아냥거리고, 윽박지르던 그가 나의 도발에는 입을 다물었다. 놀랄 노 자였다.


그 후로는 기억에 남는 사건이 없는 걸 보면 비교적 평온(?)한 근무환경이 조성되었던가 보다. 그렇다고 사무실 내 담배연기가 사라지는 기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욕설과 하대, 고성만 없으면 담배연기 정도는 무난하게 느껴질 정도로, 나의 근무환경에 대한 기대치는 한껏 낮아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녁이나 같이해요."

시작도 끝도 오므라이스 집이었다. 1분 1초라도 더 빨리 헤어질 수 있다면 오므라이스 같은 거, 조금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거절의 말조차 길게 섞고 싶지 않아 그저 내 몫의 오므라이스만 묵묵히 해치웠다.

"근데 날필 씨는 왜 자기 얘기를 안 해요? 사람이 좀 폐쇄적이야."

피식. 실소가 나왔다.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폐쇄적으로 기억되고자, 나는 오므라이스를 집어넣을 때 말고는 입을 벌리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만 PD의 입을 오므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회사에서 알바자리를 구했다. 사무실 안에서 담배연기를 맡는 일도, 욕설을 듣는 일도, 그 외 어떤 비인격적인 대우도 없었다.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나 내가 맡은 일의 중요도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을 뿐 아니라, 전공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중요한 미팅도 참관할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실수한 것도 많고, 부끄러운 일도 많은데 나를 담당했던 주임님은 묵묵히 어른의 아량으로 모든 것을 덮어주었다. 좋은 어른이었다. 앞서 만난 어른들에게 받은 상처가 조금은 희석될 정도로.


그래도 20대가 다 지나가도록, 증권사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짰다. 정면으로 맞서지 않은 비겁자, 끝까지 버티지 않고 도망친 패배자라는 스스로의 낙인이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서른을 훌쩍 넘기니 이제야 알겠다. 내겐 대항할 힘은 없었지만 옳고 그름을 분별할 판단력이 있었다. 그릇된 일을 그르칠 실행력이 있었다. 절이 싫어서 떠났고, 똥이 더러워서 피했다. 더없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여전히 후회하는 게 있다면 좀 더 빨리 그만두지 않은 것. 부당함을 느낄 때마다 나를 탓하며 몰아붙인 것. 그것 뿐이다.


저녁밥이 김치볶음밥이라는 사실에 실망했다가도 계란옷을 입혀내면 환호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여의도에서 먹었던 인생 최악의 오므라이스를 떠올린다. 모래를 씹어도 그것보단 맛있었겠지. 오므라이스 입장에선 억울할 노릇이다. 오므라이스는 죄가 없다. 13년 만에 오므라이스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바이다.


엄마야 잠시 과거에 다녀오든 말든 오늘의 오므라이스 앞에서 마냥 행복한 나의 아이들, 언젠가는 음식이 모래알처럼 느껴지는 날도 몸소 겪어내야 할 예비청춘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을 납득하려 애쓸 필요 없다고. 너를 탓하며 부당함에 익숙해지지 말라고.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너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도망치라고. 근성, 끈기, 책임, 그 어떤 가치도 너의 남은 삶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누구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글 속에서 언급된 오므라이스 전문점은 당시엔 꽤 비싸다고 생각했던 브랜드 음식점인데, 검색해보니 가성비 맛집이 되어있어서 깜짝 놀랐다. 내 지갑사정이 바뀌었거나, 브랜드 전략이 바뀌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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