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아는 맛 1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필 Apr 27. 2021

마이 무따 아이가, 친구 샐러드

네가 있어 괜찮은 나

지금부터 내가 추억할 샐러드는 고기요리에 양심상 곁들이는 풀떼기 따위가 아니다. 잎채소를 찢어 풍성하게 담고 색색의 과일과 채소를 올리는 것까지는 여느 샐러드와 같지만, 여기에 볶은 버섯과 구운 두부가 추가됨으로써 새로운 메인요리가 탄생한다. 이름하여 두부버섯샐러드. 한끼 식사로서도 손색이 없는 이 샐러드 레시피는 나의 오랜 친구, 람이에게서 배웠다.


람이는 나의 유치원 동문이자 30년지기 친구다. 한때 람이의 얼굴에는 내가 긁어놓은 손톱자국이 선연했다. 똥오줌도 못 가리던 시절부터 진한 터치가 오간 소꿉친구치고 우리는 그다지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다. 교회 동갑내기들 중에 가장 특출나게 예쁘고, 찬송 시간엔 피아노 반주를 도맡아하고, 공부까지도 잘했던 람이는 늘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모두를 대했지만 엄친딸 특유의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있었다.


중고등 시절에도 람이는 잘나갔다. 소위 <잘나간다>는 여중고생을 상징하는 지표가 깻잎머리, 짧은 치마, 어설픈 화장, 거친 말버릇 같은 것들이라면 람이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잘 나아갔다. 늘 단정한 차림에 풋풋한 얼굴, 상냥한 말씨의 람이를 모두가 좋아했다. 굳이 람이의 단점을 꼽으라면 너무 잘 웃었다는 것 정도? 햇살처럼 모두에게 고루 내려지는 람이의 웃음에 꼭 의미를 부여하는 일부 남학생들의 껄떡거림에도 람이는 항상 깨끗하고 맑고 단호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외모도 공부도 교우관계도 그냥 그랬다. 밋밋한 이목구비와 무난한 성적에 늘 함께 다니는 친구 서넛. 무엇 하나 딱히 성에 차지는 않지만 어느 하나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정도의 수준을 유지했다. 지극히 평범한 여중고생의 표본이었지만 '흔녀'에게만 꽂힌다는 하이틴 소설의 남주같은 건 살면서 구경도 못해봤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성에게 대시를 받은 경험 자체가 전무했다. 엄마는 "잡놈들 껄떡대봤자 성가시기만 하지, 좋을 거 하나도 없다."며 나를 위로했지만 단 한번만이라도 잡놈들 때문에 성가셔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입 이후 람이와 나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람이는 서울에 있는 명문대 건축학과에 진학했고 빠르게 서울생활에 적응해갔다. (친구 필터를 쓰고 보았을 때) 신입생 람이는 <건축학개론>의 수지보다도 맑고 풋풋했다. 명문대생 친구들과 <남자셋 여자셋>을 찍으며 그야말로 장밋빛 대학생활을 만끽하던 람이는 한달에 한 번 잿빛 노량진을 찾았다.


노량진에는 내가 있었다. 지원한 대학에 차례차례 떨어지고 타의로 시작한 재수생활에 하루하루 절여져가던 나를, 굳이 만나겠다고 오는 람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꽃밭인 그녀의 일상에 굳이 나를 끼워넣어 함께 우울해질 필요가 없지 않은가. 심지어 우리는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동향이고, 같은 교회에 다녔던 친구였을 뿐, 서울 하늘 아래 있다고 해서 그녀가 나를 찾아 밥을 사줘야 할 의무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람이를 앞에 두고 무채색의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람이는 한달에 한 번 꾸준히 나를 찾아와 밥을 사주고, 색색의 포스트잇을 사주고, 잡다한 주전부리를 사주고, 손잡이가 달린 텀블러를 사주었다. 누군가는 그런 람이의 호의를 음해하기도 했다. 초라한 나를 보며 상대적으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시혜적 행위'라는 것이었다. 재수생인 나의 처지와 명문대생인 람이의 처지가 너무 대비되어 스스로 위축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속마음을 투명하게 내보이는 람이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람이의 의도를 곡해할만큼 나는 꼬여있지 않았다. 람이는 내가 묻지 않으면 대학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고, 말없이 마주앉아 시간을 보내다 갔다. 수능을 보러 고향으로 내려가던 날엔 용산역까지 초콜렛을 사들고 와서 나를 안아주었다. 




이듬해에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해 람이와 함께 살게 됐다. 람이는 바빴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꼬박꼬박 나를 찾아왔었구나, 뒤늦게 미안해질 정도로. 새벽 두 시가 다 되어서 택시비를 들고 나와줄 수 있냐는 말을 람이는 무지 어렵게 했다. 지가 나한테 해준 게 얼만데. 그깟 일로 그렇게 미안해할 일인가. 나도 람이를 위해 해줄 일이 생겼다는 게 뿌듯했다.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 람이로부터 겨울옷가지를 부쳐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고작 6개월의 어학연수 기간동안 우리 사이엔 예닐곱통의 편지가 오고 갔다. 홈스테이 아주머니에게 잡채를 선보였다가 푹 삶긴 시금치 때문에 혹평을 받은 이야기, 한국에 돌아오면 빨간 다이제스티브를 사서 등산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로 람이는 세 네 장의 종이를 꽉꽉 채웠다.


람이는 편지 속에서 시적이면서도 시적이지 못한 표현을 자주 썼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편지를 열어보고 난 후의 내 기분은 뭐랄까. 먼 곳에서부터 날아온 행복감이 내 안에 가득 차서 아무리 두꺼운 이불을 덮어도 이불을 뚫고 나와버릴 거 같은 느낌이야!"

나는 가공되지 않은 그녀의 문장들이 한치의 과장도 없는 진심에서 우러난 표현들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멀리 타향에서 편지 한 통으로 그만큼의 행복감을 느꼈다니, 잘 지내고 있구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람이가 한국에 없는 동안, 나는 이성으로부터 첫 까임을 당했다. 상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도 람이에게는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자조 섞인 편지를 적어 영국으로 보내고 얼마 안 있어 답장이 왔다. 첫 문장은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가 아니라 뜬금없는 치아칭찬이었다.


으넷기. 너는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송곳니가 너무 예뻐.


처음 알았다. 나는 웃을 때 송곳니가 살짝 드러나는구나. 그게 좋아보이는구나. 적어도 람이에게는 그렇구나. 한껏 낮아졌던 마음이 둥실 떠올랐다. 이렇게 좋은 아이가 좋아해주는 나라면, 나도 별로는 아닐 것이다. 그깟 까임이 대수란 말인가. 내가 이렇게 괜찮은 사람인데. 그 후로도 살면서 사람에게 치일 때마다 람이의 문장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왔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해도 괜찮았다. 나는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송곳니가 예쁜, 꽤나 매력적인 사람이니까.




우리의 스물 다섯은 또 달랐다. 나는 결혼을 했고, 람이는 사회인이 됐다. 람이는 역시 람이였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개최한 건축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특채로 입사한 람이는 대학 때보다 더 바빠졌다. 내가 결혼준비와 출산준비로 바쁘게 지내는 동안 람이는 계속해서 사회에서의 이력을 쌓아갔다. 


람이의 자취방과 나의 신혼집은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입덧으로 다 죽어가는 나를 위해 람이는 장을 봐왔다. 장본 것을 꺼내놓고 부엌에서 한참을 뚝딱거렸다. 함께 살 때의 전적으로 보았을 때 먹을 만한 것은 못될 거라 예상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고마워 나는 잠자코 람이가 하는대로 내버려두었다. 잠시 후 람이가 내놓은 것은 특대사이즈의 접시에 가득 담긴 요리였다. 거대한 풀더미 위로 두부와 버섯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으넷기, 난 집에서 새벽 여섯 시에 나가는데, 그래도 꼭 30분 일찍 일어나서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 이렇게 먹고나면 점심시간까지 배가 안 고프다? 진짜 신기하지? 생각보다 발사믹 식초가 되게 든든한가봐."


람이의 발사믹식초 예찬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야 발사믹이고 나발이고 이만큼 먹으면 코끼리도 점심시간까지 든든하겠다.'

람이의 정성에 찬물을 끼얹는 대신 잠자코 샐러드를 먹었다. 생각보다 잘 먹혔다. 두부의 고소함과 버섯의 고소함이 서로 달랐고 양상추의 풋풋함과 토마토의 풋풋함이 또 달랐다. 같은 말로 표현되지만 입 안에서는 다른 맛으로 구현되는 각각의 식재료를 씹고 또 씹었다. 쉬지 않고 아삭거린 끝에 마침내 한그릇을 비웠다.


두부와 버섯을 올렸을 뿐인데 람이의 샐러드는 내게로 와서 한 끼의 식사가 되었다. 절대 메인이 될 수 없는 재료들을 하나하나 다듬어 람이는 보암직도 먹음직도 한 메인요리로 만들어낸 것이다. 별 볼 일 없던 내게서 장점을 하나하나 발굴해 일깨워주었던 것처럼, 람이는 한낱 식재료들에게도 한없이 관대하고 다정했다. 




내가 아기를 낳은 후에도 람이는 종종 내 선물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머리띠, 스카프, 립스틱, 가방같이 절대 아기와는 공유할 수 없는 것들. 람이의 선물 속에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서도 "너를 잃어버리지 말라"는 람이의 마음이 읽혔다. 비록 서로의 일로 바빠 얼굴도 못 보고 넘어간 해도 많았지만 육아로 소진되는 일상 가운데서 나를 잃지 않게 하는 데 람이의 지분은 결코 작지 않았다.


10대부터 30대까지 항상 나보다 잘나갔던 친구. 객관적 지표로 보아 람이는 늘 나보다 앞서 있었지만 나는 한번도 람이에게 열등감을 느낀 적이 없다. 오히려 람이가 세상에 있어, 나는 특별할 수 있었다. 나를 아끼는 람이의 존재가, 너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한결같이 내게 말해준 덕분이다.


람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여전히 "으넷기!"로 시작하는 카톡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마흔이 넘어도 그는 나를 으넷기라고 부를 것이다. 지난 날 나의 실패와 성장을 오롯이 아는 친구, 친구로서 줄 수 있는 사랑을 모두 내어준 친구, 백발이 성성한 나이가 되어서도 으넷기라고 불러줄 친구. 너와 함께한 시간은 나의 인생에서 극히 일부였지만 네가 있어 내 지난 시간들이 충만했다.


이전 10화 단장의 분홍소시지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