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리얼 치질 수술기(2)
"선생님, 저 이거 그냥 여기서 빼고 가면 안 될까요?"
두 간호사가 동시에 양손을 내저으며 나를 만류했다.
"아유, 안 돼요!"
"일단 하고 가시고, 오늘 밤에도 괜찮으면 그때 빼세요."
과연 간호사는 백의의 천사임에 틀림없다. 그녀들이 오늘 나를 여기 있게 했다.
들어올 때처럼 내 발로 걸어 나가야 하나? 고민할 새도 없이 수술대 위에서 이동식 침대로 옮겨졌다.
"하나 둘 세엣!"
수술실 스텝들은 합이 좋았다. 이동식 침대 위에 깔려있던 천을 양쪽에서 잡아들어 입원실 침대 위에 나를 사뿐히 내려놓았다. 옮겨질 때 천에 폭 파묻힌 그 기분이 생각보다 아늑해서 안심이 됐다. 지붕 위에서 네 사람이 힘을 합쳐 내려보냈다던 성경 속 중풍병자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겠구나. 그 와중에도 감정이입을 했다.
누운 자리를 정돈하고 스마트폰을 찾아 쥐여준 뒤, 간호사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1. 마취약이 머리로 들어갈 수 있으니 베개를 베지 말 것. 같은 이유로 머리를 들지도 말 것.
2. 4시간 후 소변을 봐야 하니 요의가 느껴지면 간호사를 호출할 것.
병원은 수술 당일 입/퇴원 시스템이었다. 퇴원까지 남은 시간은 다섯 시간 남짓. 끝끝내 요의가 없으면 소변줄을 삽입해야 한단다. 그것만은 정말 싫다. 어떻게든 하반신 감각을 되찾아 스스로 싸버리겠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옆으로 돌아눕는 간단한 동작조차 다리가 따라와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눕혀준 자세 그대로 천장을 보고 누워 스마트폰을 열었다.
가장 먼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수술했어."
"어어...어???"
"치질 수술했어. 시내에 있는 00항외과, 다섯 시 퇴원. 오늘 퇴근할 때 데리러 와 줘."
"어?????"
놀란 남편을 뒤로 하고 카톡을 열어 가까운 시일 내 약속이 잡혀 있는 지인들에게 수술 소식을 알렸다.
- 아이고 세상에. 얼마나 아팠으면...
- 어휴 고생했네. 당분간 푹 쉬어!
아무래도 '수술'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모두들 웃음기 없이 진지한 답톡을 보내왔다. 음. 만족.
하염없이 유투브를 보다가, 웹툰을 보다가, 중간중간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한 시간쯤 지나니 옆으로 돌아누울 수 있을만큼 감각이 돌아왔다. 동구의 감각도 조금씩 살아나 동구에 대어놓은 거즈의 두께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허리와 다리께에서 거즈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테이프의 존재도 인지하게 됐을 즈음, 요의가 왔다.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힘은 주지 마세요. 시도해보고 잘 안 되면 일어나서 그냥 나오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저 부르시고요."
변기에 앉기가 무서웠다. 이때만큼은 간절하게 남자가 되고 싶었다. 잠깐 서서 쌀까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변기커버에 엉덩이를 갖다댔다. 무사배출 성공. 통증은 없었다.
다시 입원실로 위풍당당하게 돌아왔다. 걸음걸이는 비척비척이었지만 기개만은 적을 토벌한 광개토대왕의 그것과 진배없었다. 내게 대적할 자 누구냐! 난 퇴원까지 해야 할 모든 퀘스트를 마쳤다! 어쩐지 옆자리 환자도 나를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고 하면 자의식 과잉일까. 나보다 먼저 수술을 마친 그는 아직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 저런, 딱하기도 해라. 온 마음으로 배뇨 기운을 보냈다.
가만 생각하니 세 평 남짓한 입원실에서 같은 성형동구끼리 오줌 싸는 일로 우월감을 느끼는 꼴이 우습다. 밖에 나가면 건강한 자연동구로 활보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널렸다. 그들에 비하면 저나 나나 루저이기는 매한가지인 것을. 한날한시에 새 동구를 갖게 된 우리 앞에 부디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혼자서 견제했다, 우쭐했다, 축복했다 난리났다.
혼자서도 이렇게 넓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오가다 보니 금방 퇴원시간이 됐다. 남편이 퇴원수속을 하는 동안, 간호사는 내게 수술 후 주의사항과 함께 <무통주사 사용 및 제거 방법>을 알려주었다. 상대를 집중해서 바라보는 눈과 달리 상대의 말을 모두 블러처리하는 귀 때문에 본의 아니게 상대를 기만할 때가 있지만, 그때만큼은 눈과 귀가 오롯이 간호사에게로 향했다.
"안에 물풍선 같은 게 보이죠? 이게 점점 줄어들어서 없어지면 무통약이 다 들어간 거예요. 지금도 약이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고 있어요. 많이 아플 땐 파란색 버튼을 꾸욱 누르면 약이 더 많이 들어가요. 그런데 한 번 꾸욱 누르고 나면 조금 기다려야 해요. 연속으로 누른다고 계속 많이 들어가지는 않거든요."
"선생님, 저 이거 그냥 빼주시면 안 돼요? 별로 안 아파서요..."
"아니에요. 하고 가세요." 병원에 도착한 이래 가장 단호한 간호사의 반응에 잠자코 무통주사를 받아들었다.
수납처에서도 한번 더 무통 주사 제거를 요구해 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똑같았다.
"아유, 안 돼요!"
"일단 하고 가시고, 오늘 밤에도 괜찮으면 그때 빼세요."
하나같은 반응에 무통 주사를 달고 집으로 오긴 했지만 내가 이걸 누를 일이 있을까 싶다. 두 아이 출산 때에도 무통주사는 물론이고 진통제 한 알 쓰지 않았다. 살면서 진통제를 먹은 경험이라고는 대학병원에서 매복 사랑니를 발치했을 때 뿐이다. 진통제만으로도 충분할텐데 무통 주사씩이나. 빈 속에 계속 약물이 들어가는 것도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모양새가 너무 오바스럽다. 심히 환자 같다.
집에 도착하니 피로감이 쏟아졌다. 이부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눈을 떴을 땐 저녁과 밤 사이, 아직 뒷설거지가 한창이었다. 아이들 말소리와 살림살이 부딪는 소리가 방문 틈으로 흘러들었다. 내가 왜 이 시간에 방에서 혼자 자고 있지. 아...아아...돌아오는 현실 감각과 함께 깨어나는 통각. 아. 아프다. 아아, 아파. 입에서 절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온몸이 저리고 으슬으슬하고 수술 부위가 타들어가는 듯 아팠다.
"아파...아파..."
누가 알아주길 바라서가 아니다. 마치 동구와 입이 하나의 링크로 연결된 것처럼 통증과 신음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그 와중에 소변이 마려웠다. 무통 주사 버튼을 꾸욱 누른 뒤 한참만에야 겨우 일어났다. 조심스럽게 앉았는데도 아팠다. 변기 위에서 몇 번을 일어났다 앉은 끝에 겨우 일을 마쳤다. 힘을 주지 않고 몸 안에 있는 것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다시 이부자리로 돌아와 잠을 청해봤지만 점점 심해지는 통증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한번 더 꾸욱- 벌써 2꾹이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어쩐지 입 안에서 약 냄새가 감도는 것 같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벌컥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평소 안방 화장실에서 씻는 걸 선호하는 남편이 습관처럼 안방 화장실에서 씻고 나온 것이다. 다시 시작된 통증은 아까보다 훨씬 심해져 있었다. 울고 싶었다. 아니, 이미 울고 있었다. 남편이 정말 원망스럽다. 사람이 아픔을 잊으려 자고 있는데, 하필 그 방 화장실에서 씻어댈 게 무어냐. 조용히나 씻을 일이지 문을 경망스럽게 발칵 열어제낄 건 또 무어냐.
"씻지 마..."
"응?"
뭘 되묻고 있냐.
"여기서...씻지 말라구..."
"뭐라고?"
울컥.
평소 같으면 이쯤에서 소리를 꽥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소리는 온 몸으로 지르는 것이다. 특히, 터져나오는 고성을 뒤에서 단단히 받쳐주는 동구의 역할이 생각보다 크다. 지금의 동구는 70dB이상의 고성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성질을 죽이고 I-message로 조곤조곤 속삭이는 수밖에.
"잘 때만 겨우 아픈 게 사라지는데...씻는 소리에 깨버렸잖아...자다 깨면 더 아프단 말이야..."
눈물을 꾸욱 참으며 한번 더 3꾹. 아...그래도 아프다. 꾹 꾹 꾹 꾹. 무통아, 들어가라 들어가. 내 혈관으로 쏟아져 들어가라고.
아까 병원에서 무통 주사를 빼고 가겠다고 주절거리던 우매한 것의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무통 만세.
현대의학 만세.
대한민국 의료진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