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아아아아!"
아플만큼 아프고 나면 비로소 안식이 찾아오겠지.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 전에 숨이 끊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아무리 강한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사그러든다는 점에서 일말의 희망을 준다. 아무리 미약할지라도 희망은, 인내의 근거가 된다. 그러니까 나는 시방, 참을 수 없는 상태다. 첫 배변 후 30분이 지나도 통증은 여전했다. 아니, 갈수록 더했다. 당장의 투명한 고통 앞에 미래의 불투명한 부작용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추가로 처방받은 진통제, 이걸 쓸 일이 있겠냐며 마지못해 챙겨온 그 진통제를 입에 털어넣었다. 조금씩 옅어지는 통증을 느끼며 안도하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끝없는 황야를 달린다.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러나 기어이 내 어깨를 붙잡아 강하게 돌려세운 의문의 존재가 곧장 내 얼굴에 총구를 겨눈다. 빌어볼 새도 없이 당겨지는 방아쇠. 얼굴을 관통하는 강한 바람에 소스라치며 잠에서 깼다. 꿈. 그 생생한 감각에 몸서리가 쳐진다. 아니,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런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나의 뒷모습을, 나는 어떻게 보고 있지? 퍼뜩 눈을 떴다. 꿈 속의 꿈. 얼마나 잔 걸까. 옷은 여전히 흠뻑 젖어 있다. 원래 꿈이란 게 하나같이 낯설고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생생하고 오싹한 꿈은 처음이다. 이건 꿈인가, 현실인가? 지금 생각하는 나는 꿈 속의 나인가, 실존의 나인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불쾌하게 전신을 타고 흐른다.
해당 진통제에 대한 이상반응으로 드물게 <비정상적인 꿈>과 <불안감>, <이인증*> 등이 나타난다고 했다. 약발이 잘 받는만큼 부작용도 잘 받는 모양이다. 마냥 좋기만 한 게 세상에 있겠나. 물풍선이 사라진 무통 주사를 제거해 지퍼백에 담으며 다짐했다. 진통제는 꼭 필요할 때, 하루 최대 두 알까지만 쓰기로. 어쨌거나 첫 배변을 마쳤으니 모든 고비를 넘긴 셈이다. 그리고 이런 속단을 우리는, 아 쎄이 사망, 유 쎄이 플래그, <사망 플래그>라고 부른다.
나보다 앞서 이 길을 걸어간 자들은 왜 첫 배변의 고통만 부르짖었는가. 두번째도 만만치가 않다. 아니, 오히려 마음을 놓은 탓에 더 충격적으로 아프다. 바보같은 나 새끼는 어째서 두번째는 괜찮을 거라고 멋대로 안심해버리고 말았나. 다시 한 번 귓속에서 울리는 쇳소리를 들으며 숨을 헐떡거렸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할까.
"으아아아아아아!"
땀과 물로 푹 젖은 채 자리에 누워 동구를 부여잡고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언제까지 이따위로 살 텐가! 언제까지 이따위로 쌀 텐가!! 억울함의 포효였다. 벌컥 방문이 열리며 아이들의 걱정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엄마, 왜 그래?" "엄마, 괜찮아?"
황급히 동구에서 손을 떼고 최대한 의연하게 답했다(고 믿고 싶다).
"어...엄마 괜찮아..."
화악 밝아지는 네 개의 눈동자. 아들들은 참 단순하다. 눈에 보이는 정황이야 어떻든 간에 괜찮다는 상대의 말만 철썩같이 믿어버리는 순수함.
"형 형, 엄마 방금 꼭 락밴드 스타 같았다. 그치? 킥킥."
"큭큭. 맞아 맞아. 으아아아아~"
...때로는 순수함이 순수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의 고통에 온가족이 잠식당하는 것보다는 저렇게 키득거리는 게 낫다. 진통제와 씁쓸함을 함께 삼켰다.
문제는 하루에 적게는 세 번, 많게는 다섯 번까지도 락밴드 스타로 빙의했다는 것이다. 그저 거기에 달려있을 뿐인 무력한 동구는 스쳐가는 통로로서의 역할도 버거워했고, 5초 이상 개방하면 곧 쥐불놀이를 시작했다. 남은 게 있든 없든 닫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몸 밖으로 나오면 한낱 오물에 불과한 덩어리들도 몸 안에서는 염치가 있는지 함부로 똥대문을 두드리지 않고 잠잠히 때를 기다렸다.
잠시 고통이 잦아드는 틈을 타 스마트폰을 집어들었다. 치질수술 후...통증...언제까지...누군가는 이 지난한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았을까, 간절한 바람을 꾹꾹 눌러담아 검색어를 입력했다. 있다! 치질수술 후 2주차부터 출근했던 한 남성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오전 업무 중에 꼬박꼬박 회사 화장실에서 이루어졌던 그의 배변 기록은 50일경에서 멈춰 있었다. 48일째 글에서 그는 '배변 직후엔 여전히 주먹으로 한 대 맞은 것처럼 아프다'고 썼다. 진심으로 부러웠다. 하루 빨리 주먹으로 맞은 것만큼만 아팠으면 좋겠다. 지압볼을 싸는 거 같은 아픔에 비하면 주먹 한 대쯤이야 얼마나 경미한가. 모름지기 자상보다는 타박상이다.
*이인증 :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자신과 분리된 느낌을 경험하는 것으로 자기 지각에 이상이 생긴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