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 달 살기 구일 차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 키나발루 산을 올랐다. 나에겐 거대하고 굉장했던 숲의 길이었던 그 산은 현지인들에게는 우리가 회색도시에서 느끼는 것과 같이 때론 따분하기도 하고 때때론 지루하기도 한 공간이었다. 세상 누구도 항상 보는 것만, 항상 다니는 길만 오고 가는 것은 비슷한 감정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것도 매일 반복되면 일상이 돼버려 소중한지 모르게 된다. 그게 인간이 가진 이성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일상 일지 모르는 것들이 나에게는 신비롭고 새롭게 다가서는 일이 많다. 그것은 여행을 하면 할수록 더욱 많이 늘어나는데, 아무리 제주도를 많이 갔어도 현지인들보다는 머물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기에 언제나, 웬만하면 즐겁고 흥미롭다. 그랬던 내가 제주도에 잠시 살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아홉날이 지나버렸다.
짧은 낮의 일상 …
제주도에서는 제발 일찍 일어나자고 했다. 도시에서 나와 아내는 빨리 일어나야 아홉 시, 늦게 일어나면 열한 시도 넘긴 적이 많다. 아내는 육아 휴직 중이고, 나는 기업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로 둘 모두 시간을 알아서 조절할 수 있는 시기 었다. 때문에 하루하루가 매우 불규칙했고 건강은 나날이 나빠지고 있었다. 문득 제주로 떠나자고 했을 때 우리는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변하자고 했고, 어렵사리 지켜나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오늘도 딸, 수아가 가장 빨리 일어나서 엄마와 아빠를 깨웠지만 말이다.
"벌써.. 7시야..?
"수아 봐.. 일어났잖아...."
제주도에서의 아침 일과는 도시와 비슷했다. 일단 나와 아내 둘 중 한 명은 밥을 하고, 나머지 한 명은 아침 청소를 하면서 수아를 돌본다. 어쩔 때는 가볍게 시리얼이 나올 때도 있지만 집에서 보내주신 쌀 덕분에 밥을 자주 해서 먹었던 편이다. 아내의 김치찌개, 아내의 된장찌개 그리고.. 그리고 또 기억이 안 난다. 설마 한 달 동안 이 두 가지만 먹었을까?
그렇게 식사가 끝나면 또다시 점심을 차려 먹기 위해서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 시간이란 게 정말로 신기하기만 하다. 어쩜 이렇게 빠르게 흐르지.
아침 또는 오전에는 거의 집 근처에서 보낸다. 따로 계획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제주도 어디 멀리 나가기 위해서는 긴 고민이 필요하다. 도시에서 100km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다녔던 내가 제주도에서 20km만 돼도 멀게만 느껴진다. 섬이란 공간이 그래서 참 신기하다. 제주도는 빠르면 하루 만에 돌아볼 수 있다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귀찮거든.
아홉째 되던 날, 우리는 삼달리 밖의 마을 길을 걷기로 했다. 여기 삼달리는 감귤밭도 많지만 무밭도 심심찮게 구경할 수 있다. 쌀이 재배가 되지 않는 땅은 우리와 친숙한 농산물로 가득 찬다.
지금 하늘은 맑음이지만 우리가 피부로 느끼기에는 곧 비가 올 것 같다.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의 높이만 봐도 대략 감이 온다랄까? 집 밖, 5분이면 보이는 바다가 지금 생각해도 매우 좋았다. 그 바닷소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까지 들리니깐. 이곳에 제주도구나! -라는 것을 매일매일 느끼게 해줬다.
기어코 하늘에서는 빗줄기가 내린다. 바다를 보며 사색에 잠기려던 찰나, 짧은 낮의 일상은 그렇게 끝났다. 비만 내리면 유독 집이 생각난다. 아니, 이미 우리 부부는 집에 들어갈 것을 각자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 반가운 존재는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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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막 해변에서
"집에 가서 치킨이나 시켜먹자."
"근데 치킨이 우리 집까지 배달이 와?"
"알아봤는데, 두 마리 시키면 온대."
이 여정은 2017년 10월 10일부터 11월 9일까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끝마치고 작성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