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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우 Mar 25. 2024

집 주소를 주는 건, 내 맘도 주는 거라고

집에 들이는 건, 마음에 들이는 것 





집들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서움은, 집에 들인다는 건 마음에 들이는 일인 탓이다. 집은 한 사람의 자아가 현상되어 나타난 장면이자 그가 살아온 인생의 사건 현장이다.


2009년의 여름에는 상도동의 오르막 끝에 자리 잡은 휘의 집으로 자주 들어갔다. 오래된 판본의 하루키 에세이집이 아무렇게나 놓인 책장, 구겨진 맥주캔이 수북이 쌓여 있는 쓰레기통, 빨랫비누 냄새가 나는 뻣뻣하고 뒤틀린 걸레. 달처럼 고독하고, 현악기처럼 예민하고, 규칙을 알 수 없는 그 애의 세계였다.


마른 빨래향이 희미하게 감도는 휘의 집 앞에 도착하면 숨을 삼키고, 허리를 곧게 폈다. 내가 들어갈 그 애의 세계가 두려워서, 일종의 기도처럼 비밀번호를 누르기 전에 양 손을 꼭 가로쥐었다.


특히 빗방울이 지면을 때리는 소리가 선명한 날이면 조금 더 오래 기도하게 되었다. 숨을 꾹꾹 눌러담고 불을 켜지 않은 방에 들어선다. 열린 창틈으로 빗물이 아무렇게나 들이치고 있다. 휘는 이마위로 팔을 늘어뜨리고 웅크린 채 숨을 내쉰다. 반쯤은 희미하게 잠들고 반쯤은 선명하게 고통받는 채로 누워있으면, 꼭 차에 치인 고라니 같이 가녀리고 기묘하게 뒤틀려보였다. 특정한 날씨와 소리가 두통을 유발하는 요소가 된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던 때, 나는 가만히 창문을 닫고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이불 밖으로 비죽 나온, 마른 그 애의 발목을 어린 짐승을 어루만지듯 쓰다듬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이 세계에서 내가 이방인임을 더욱 실감했다.


영원히 그치지 않는 빗 속에 버림받은 세계, 수몰된 마을 같았다. 그 애는 점점 가라앉아 가는 자기 방에 나를 들여주었고 우리는 함께 수몰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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