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죽색 커튼, 토요일 점심시간 무렵 나른하게 떠다니던 먼지들, 눈을 가늘게 뜨고 빛과 먼지가 산란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글감이 될만한 것을 건져내기 위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늘 창가자리에 엎드려 자고 있던 좋아하던 남자애의 윤이 나는 머리칼에 먼지가 천천히 내려앉을 때까지. 미국 국립공원에 사는 그리즐리 베어같이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우렁찬 선생님은 그날의 글감이 될 한 단어를 칠판에 시원하게 갈겨주셨다. 어찌나 힘이 좋은지 늘 분필이 반으로 또각, 부서져버렸다. 에이포 용지의 윗부분을 2센티미터 정도 두 번 적어서, 첫 번째 칸에는 날짜와 이름, 다음 칸에는 제목을 적었다.
중학교 시절 한 달에 한 번, 토요일의 국어 시간은 산문을 썼다.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신경질적으로 종이를 채우고 일찌감치 잠들어버리는 친구, 창작의 고통으로 계속 새 종이를 받아가는 친구, 뽀얀 종이 위에 엎드려 쌔근쌔근 자다가 두툼한 선생님의 손바닥과 만나는 친구의 등짝. 세필화처럼 정교하게 남아있는 산문시간의 풍경.
석죽색 커튼과 먼지, 그 애의 머리카락 사이 어딘가를 바라보다 보면 쓰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 찼다. 머릿속에 알파벳 시리얼 마냥 글감이 잘그락거렸다. 숨도 참으며 샤프로 도도도 써 내려가다가, 흠집난 책상 때문에 흰 종이에 구멍이 뽁, 나던 순간까지 선명하다.
글을 쓸 때면 석죽색 커튼이 쳐진 낡은 교실, 좋아하던 남자애의 뒷모습을 눈이 부시게 바라보던 산문시간으로 돌아간다. 글을 쓰고 싶다는 감각이 파종되어 시간차를 두고 발아한다. 손이 빨개지도록 샤프를 꼬옥 붙잡고 손보다 빠른 생각을 담기 위해 에이포용지 위를 내달리던 때, 나의 산문시간이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