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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즈 Jul 24. 2019

헤르미온느의 시계는 없지만

소소한 시간관리법

트위터에 종종 대학 시절 이야기를 올렸는데 다들 놀라면서 헤르미온느의 시계를 가지고 있었냐고 되물은 적이 있었다.


매 학기 21학점 씩 들으며 주 2회 7시간 알바를 하거나 과외를 여러 개 뛰면서 동아리를 두 개 이상하면서 임원까지 했고 방학 때는 공연도 하고 교환학생 갔다 오면서 다른 분야 부전공을 하고 조기졸업을 했고 그 와중에 친구들도 만나고 엠티도 가고 여행도 가고 미팅 소개팅도 하면서 연애도 하고 봉사활동 프로그램도 하면서 덕질 차원에서 블로그도 운영하고 정모도 나가기도 함. 석사 때도 15학점 씩 들으면서 (보통 대학원은 학기 당 9학점을 듣는다.) 조교도 하고 스터디도 하면서 종시도 빨리 붙고 유학 준비도 시작하고 성당 청년부 활동을 하면서 석사를 3학기에 마치고 졸업 전에 취직함.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언제 그걸 다 했냐고 물어보곤 한다. 내 친구들도 다들 비슷한 성향이라서 다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느라 당시엔 내가 특별히 많은 일을 한다는 생각도 별로 안 했다. 대신 많은 친구들이 고시나 자격증, 취업 준비에 몰입했는데 난 일찌감치 동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었어서 그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저 많은 걸 한 학기에 하진 않았고, 5년에 걸쳐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리고 분명 어떤 일들은 대충 흘러가거나 소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에 이렇게 많은 일정을 관리한 방법이라던가, 혹은 지금도 박사 과정 중이면서 브런치랑 트위터는 언제 하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계셔서 내가 시간 관리하는 방법을 좀 적어보려고 한다. 사실 나는 나 자신이 시간관리를 썩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하는 만큼만 적어볼 생각이다. 


1. 계획 변태


계획 변태라는 말은 내가 예전에 썼던 인터넷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의 별명인데, 몇 분 몇 초 단위로 계획을 세워서 상대에게 작업을 거는 쪼잔하고 치밀한 캐릭터였다. 작업을 당하는 상대 주인공이 어이없어하면서 당신 계획 변태냐고 놀리는 장면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내 친구들이 소설 보더니 그 캐릭터가 나 아니냐고 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 적이 있다. 내가 그 정도였나...


일단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긴 하다. 하지만 소설 속 캐릭터와 달리 상당히 게으르기 때문에 초단위로 계획을 세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예정된 일정을 따르는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즉흥적인 일정 변경이나, 무계획으로 일단 시작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내가 무계획적으로 뭔가를 할 때도 있지만 그땐 단지 무계획을 계획했을 때뿐이다. 다만 나는 즉흥적인 사람이 생산성이 적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즉흥적인 사람들은 또 부지런하게 그때그때 최적을 선택을 해가면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못할 뿐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그걸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행할지 결정한 다음에야 움직이는 타입이니까 바쁜 상황에서는 상당히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내 성격이라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타고난 내 기질을 존중하며(?) 세상에 적응하려고 나름대로의 요령을 터득한 것뿐이다. 그래서 내 방법이 남에게 맞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보면 굉장히 철두철미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굉장히 덜렁대고 건망증이 심하다. 방에 들어와 놓고 왜 들어왔는지 까먹어서 다시 나가는 일이 하루에 한 번 이상 일어난다. 항상 뭔가를 잃어버려서 찾느라 시간을 보내고, 내 손으로 벌인 실수를 수습하느라 엄청나게 시간낭비를 한다.


계획이란 걸 세우기 시작한 건 중학교 입학할 무렵부터인데, 바로 건망증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늘 알림장을 적어줘서 그거만 안 잊어버리면 되었었는데 중학교에 오니까 아무도 알림장을 적어주지 않아서 너무 당황했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또 중학교 입학한 후로는 엄마가 방임주의로 돌아서서 완전 혼자 공부하게 되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집에 굴러다니던 아빠 수첩을 주워다가 과목이 바뀔 때마다 과제를 적어뒀던 게 계획 인생의 시작이었다. 공부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시험 기간에는 그 수첩이 공부 스케줄러로 변신했고, 고등학교 입학할 무렵부터는 스스로 요령이 생겨서 스케줄러에 현란하게 공부와 일정 계획을 짜는 사람이 되었다. 


대학에 온 이후로는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살지는 못했다. 일단 강의실을 항상 옮겨 다니느라 어디 앉아서 계획을 정리할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대학생활이 다들 그렇듯 매일매일 새로운 일이나 약속이 터지고 일정이 수시로 변경되곤 했다. 그때쯤부터는 좀 여유롭게 한 시간 단위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여러 앱이나 프로그램도 써보았는데 결국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나는 손바닥 정도 크기의 수첩에다가 일정을 손으로 정리하는 습관에 정착하게 되었다. 



2. 스케줄러 적는 법


내가 성공한 위인도 아닌데 대체 이런 걸 누가 궁금해할까 싶지만-_- 나도 내 습관을 정리해볼 겸 적어본다. 그리고 참고로 나는 직장생활보다 학교생활을 더 오래 했기 때문에 아마 직장인에게는 안 맞을 것 같다.


MONTHLY 일단 전체적인 큰 일정은 월별로 정리. 


WEEKLY  구체적인 계획은 주간 단위로 세우기 때문에 나에게는 주간 일정이 제일 중요하다. 

왼쪽 사진은 올해 4월의 스케줄러를 찍은 건데 보다시피 굉장히 더럽다. ㅋㅋ 남들은 다이어리 꾸미기도 한다는데 나는 딱히 꾸미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일단 보다시피 꾸미는 걸 잘 못하고 또 너무 바쁘고... 다이어리 아니고 스케줄러라고 생각해서 막 갈겨 적는다.

 

일단 오른쪽 사진처럼 기본 페이지 세팅을 한다. 월화수목금토 6칸을 세로로 만들어 둔다. 일요일도 칸을 만들면 좋을 텐데 7칸을 만들면 홀수라 페이지 비율이 안 맞음.

반드시 같은 페이지 안에 메모를 할 빈 공간도 만들어 둔다. 한눈에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무조건 양 옆으로 2페이지를 1주 일정에 할당하게 된다. 

빈 페이지에 이번 주에 해야 할 일을 상단에 주르륵 적는다. 그리고 날짜가 정해진 일은 해당 날짜에 다시 옮겨 적는다. 날짜가 정해지지 않고 기한 안에 끝내야 하는 일은 기한을 적어두고 며칠 동안 해야 하는 일은 그냥 화살표 그어서 표시해 둔다. 

우선순위는 기존에 알려진 법칙을 따른다: 중요하고 급한 일>> 안 중요한데 급한 일>>중요하고 안 급한 일>>안 중요하고 안 급한데 해야 하는 일>>아무도 안 시켰는데 하면 좋은 일 >> 안 해도 되는데 그냥 하고 싶은 일

언젠가 하긴 해야 하는데 간간히 해야 하는 일은 하단에 적는다. 

주 중에 급하게 생긴 일이나, 주 중에 끝내지 못한 일은 중간에 표시해둔다. 다음 주 계획표에 옮겨 적음.

그냥 좋아하는 글귀나 좌우명 같은 것도 자유롭게 적는다. 


DAILY 

일간 일정은 매일 아침이나 전날 저녁에 계획한다.

그날 해야 할 일을 주르륵 정리하고 체크한다. 

시간이 정해진 일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일과 조합해서 최적의 "시간 순서"와 "공간 이동 경로"를 짠다. 예를 들면 학교에 가서 해야 할 일을 모아서 학교에서 다 하거나, 집에서 하고 나가야 하는 일 등등을 정리하고 여러 군데 돌아다녀야 하면 어느 순서로 이동해야 가장 빠른지 확인한다. 집순이는 원래 집 밖에 나갈 때 다 해치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시행하고 변경 사항이 있으면 기억하거나 기록해 둔다. 

하루가 끝나면 그날 완료한 일은 가운데 줄을 긋거나 까맣게 칠해버리고, 그 날 처리하지 못한 일은 다음 날이나 다음 주로 미루는 표시, 취소된 일도 지워버린다. (불렛 저널 방식 사용 가능)

완료 표시를 해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꼭 함.


BIG PICTURE

보다시피 나는 목표지향적인 인간인데, 대신 목표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한다. 그래서 늘 월간/연간/10년/인생 버킷리스트를 다 짜 놓고 지낸다. (스스로를 계획의 쳇바퀴에 밀어 넣는 경향이 있다.)

이건 일반적으로 자기 계발서나 인터넷에 보면 다 나오는 방법이긴 한데, 큰 최종 목표를 정하고 ->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목표를 정한 후에 -> 그 세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 계획을 짜서-> 연간/월간/주간으로 목표 배분하기 를 실행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배분'파트 같다. 지치지 않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잘 나눠야지 효과적이다. 그리고 까먹지 않도록 종종 들춰봐서 확인도 해야 한다. 나의 경우, 장기 목표는 스케줄러가 아닌 몇 년 동안 꾸준히 쓰는 노트나 개인 홈페이지 등에 적어놓았다. 


특히 월간 목표는 딱 3개만 정하고 책상이나 오피스 벽에 붙여 놓는다. 어디서 봤는데 목표는 한 번에 3개가 넘어가면 다 못 지킨다고 해서, 무리하지 않고 3개만 정하고 다 못 지킨 거나 또 하고 싶은 일은 다음 달로 미룬다. 


주의할 점 

일의 특성 파악하기 : 어떤 일은 시간 내에 끝내는 게 중요하고 어떤 일은 시간이 오래 걸려도 완성도 있게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종류의 일들은 언제나 있다. 계획할 때 이 점을 고려해서 짜야지 무리한 일정이 되지 않는다. 대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종류의 일은 하루의 마지막에 두는 편이다.

휴식시간 꼭 넣기 : 자기 체력이나 업무 능력, 집중력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난 성격 상 노는 일도 계획에 넣어버린다.

알람 시계 활용하기 : 뽀모도로나 40+20 집중법까지 쓰진 않지만 자잘한 일을 많이 해야 할 경우엔 그냥 다음 일정을 시작할 시간에 알람을 맞춰놓고 다음 일정을 완전히 잊어버린 다음 지금 당장 하는 일에만 집중한다. 

스스로의 기억력을 믿지 않기 : 건망증이 정말 심하기 때문에, 중요한 일은 리마인더도 챙기고 여러 번 적어두고 포스트잇도 붙여 놓아서 내가 생활하는 패턴 안에서 계속 기억할 수 있도록 한다. 

특정 장소에서 해야 하는 일은 특정 장소에 적어두기 : 예를 들어 컴퓨터로 작업해야 하는 일들은 그냥 바탕화면에 적어둔다. 그러면 랩탑을 켤 때마다 리마인드하고 해결할 수 있다. 화장실에서 해야 하는 일은 화장실 벽에다 붙여놓는다. 


스케줄러는 아기자기한 다이어리부터 불렛 저널까지 써봤는데 아무리 봐도 저 틀에 맞는 디자인은 없어서 요즘엔 그냥 사이즈 맞는 줄 노트 사서 저렇게 자체적으로 세로줄 긋고 사용한다. 


3. 실행방법


계획 짜는 것보다 중요한 건 실질적인 실행이다. 사실 나도 내 계획을 다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서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내가 의식적으로 실천하거나 지키려고 노력하는^^ 몇 가지 팁을 풀면 다음과 같다. 


중요하지 않은 일은 완전히 패턴화 하기


집안일 같이 사소하고 일상적인 건 완전 규칙적이고 습관적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아침 식사랑 점심 식사 메뉴는 고정해놓는다. 점심은 학기 중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데, 일요일 저녁에 밀프렙으로 일주일 치를 한꺼번에 만들어놓고 다닌다. 하지만 맛있게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면 시간을 더 투자해도 될 것이다. 난 뭐 먹을지 고민하는 걸 싫어해서 저렇게 산다.


모닝 루틴도 단순한 편인데, 아침잠이 많기 때문에 대신 밤 샤워 습관을 들였다. 아침엔 머리 모양 정돈하고 빠르게 세면하고 옷만 주워 입고 나올 수 있는 생활패턴을 만들어 둬서 빠르면 20분 정도면 끝난다. 사실 나는 옷에도 별로 관심이 없어서 나한테 적당히 어울리는 스타일 몇 개 정해놓고 비슷한 옷을 사서 계절에 맞춰 돌려 입기 때문에 뭘 입을지 딱히 고민하지 않는다. 사실 사람들이 내 의상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머리도 펌이나 염색을 하면 오히려 손이 많이 가서 커트만 하고 손톱도 네일아트 하는 걸 싫어해서 늘 바짝 깎는다. 하지만 나는 지금 대학원에 다니니까 그런 것이고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거나 꾸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많이 들여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특별한 약속이 있는 날은 시간을 많이 들인다. 


평소에 되게 심심하게 사는 것 같지만, 나는 이럴 시간 아껴서 드라마를 보거나 덕질을 하거나 브런치 글을 쓰고 그러면 내 하루가 즐거워진다. 이런 활동이 나에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관심 없는 일엔 크게 신경 쓰지 않게 삶을 만든다. 집중력을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일에 쏟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각자 삶의 우선순위가 다를 텐데, 난 내가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단순화시켰다. 



시간 vs 돈 일 때는 시간에 투자하기


나는 시간은 유한하고 돈은 쓸려고 버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돈이 없다. 돈 모으는 습관은 절대 아님.;;) 그래서 보통 시간을 아낄 수 있는 일에 돈을 쓴다. 사실 현대 사회의 많은 재화와 서비스는 돈을 줄이려면 시간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들어져 있다. 세일하는 상품을 구매하려면 오랜 시간 줄을 서거나 세일하는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적어도 세일 정보를 확인하려고 사이트에 접속하는 수고는 들여야 한다. 근데 나는 그 모든 걸 굉장히 귀찮아하고 그런 거 찾아볼 시간에 좋아하는 배우의 예능 출연 정보를 한 번 더 확인하거나 ㅋㅋ 칼럼 같은 걸 읽는 걸 좋아한다.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그때 바로 최저가 정보랑 상품평 보고 가장 괜찮은 물건을 빠르게 고른 다음에 주문하고 잊어버린다. 사실 그래서 좋은 물건을 잘 못 고르는 경향은 분명 있고 세일을 직전에 두고 비싸게 물건을 사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그걸 딱히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5분 아껴서 10만 원 절약할 수 있는 순간에는 5분을 더 투자하겠지만, 보통 많은 상품이나 서비스 구조는 1시간 기다려서 천 원 아끼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럴 땐 그냥 천 원 더 쓰는 편이다. 그 한 시간 동안 다른 걸 하는 게 나는 더 좋고 돈이 엄청 부족할 때가 아니면 그럴 시간에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더 벌자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실 이건 가치관에 따른 문제라서 나는 남에게 강요하고 싶은 생각이 절대 없고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치지 않기 & 완벽주의 버리기


난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어릴 땐 좀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된 후에도 워낙 덜렁대는 스스로를 기어코 인정하면서 포기했다. 또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서 모든 게 완벽할 수 없다며 좀 달관한 경향도 있다. 지금은 너무 대충 살아서 큰일이다... 


아무튼 목표를 세울 때 예상 결과를 두 가지로 나눈다. 일단 결과가 pass/fail로 나오는 경우는 pass 하는 것이 목표이다. 나는 1등 하는 것에 관심 없다. 그냥 늘 적당히 pass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적처럼 스펙트럼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일단 평균 넘기, 꼴찌 안 하기, 70% 정도 달성을 목표로 한다. 학창 시절에도 A+을 목표로 했던 수업은 별로 없었고 늘 평균 넘기기만을 목표로 삼았다. 특별히 좋아하는 과목이 아니면 한 과목에 너무 집중하진 않았고, 여러 과목을 적당히 사수하려고 신경 썼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한 과목을 완벽하게 5 회독하기보다는 여러 과목을 3 회독씩 했다. 이러면 정신이 좀 전환되어서 집중이 더 잘 되기도 했다. 


아무튼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되 결과에는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면 그걸로 충분하고 본다. 결과는 내 노력과 다를 수 있는데, 그건 내가 노력을 덜해서 그런 게 아니라 운이 닿지 않았거나 나랑 안 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류를 내거나 시험을 보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운빨에 맡기며 기도만 열심히 한다. (열심히 노력하는 건 시험 보기 전까지이다.) 그렇게 해서 잘 되면 좋은 일이지만 그게 100% 내 노력 덕분은 아니고 운도 좋았고 누군가의 도움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또 안 되면 실망은 하지만 그게 나 자신의 부족함 뿐만 아니라 부족한 운 때문이었다고도 생각한다. 성취 자체에 너무 집착하면 자기 자신을 잃게 되고 마음이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성공하는 습관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지금 성공하는 얘길 쓰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난 정말로 내가 정한 목표 달성에만 관심이 있는데 목표 중에 사회적 성공은 없다. 또 난 남들하고 경쟁하는 걸 싫어하고, 불필요하게 굳이 남을 이기고 싶지도 않다. 남들 일엔 별로 관심도 없고, 남이랑 나는 역량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목표도 다른데 이겨서 뭐하나 싶다. 내 목표만 달성하면 나는 만족한다.


체력&운동


당연한 건데, 뭐든 체력이 좋아야 한다. 아프면 계획 다 어그러진다. 20대 초반엔 외려 체력이 약해서 자주 계획 펑크를 냈는데 나이 들면서 운동하는 요령도 생기고 체력을 키우면서 스스로를 좀 더 관리하게 되었다. 어지간히 바쁘지 않으면 운동을 꼬박꼬박 하는데, 그래야 공부할 때 머리도 더 잘 돌아가는 것 같다. 평소에 운동해 두면 급할 때 밤새고 무리해서 달릴 힘도 생긴다고 생각한다. 

또 나는 걷기나 달리기를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하려고 한다. 원래 사람은 단순한 행동을 반복하며 몸을 움직일 때 뇌가 자유롭게 움직여서 새로운 생각을 많이 떠올린다고 하는데, 그 단순 행동 중에 대표적인 게 샤워나 산책이라고 한다. 칸트도 오후 4시마다 산책했다고 하는데, 나는 칸트는 아니지만 칸트 발가락 때만큼이라도 되면 나을까 싶기도 하고. 실제로 나도 산책하면서 정 줄 놓고 걷다가 안 풀리던 문제의 답을 떠올리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의 끝에 기똥찬 아이디어를 떠올려서 재미난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나한테는 뇌가 휴식하는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다. 



영역 나누기


내 친구들은 나보고 덕질하면서 대체 언제 현실 인생 사냐고 물어보는데ㅋㅋ,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워라밸 에너지 분배를 적당히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의 삶은 다양한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에 일만 하는 사람은 없고, 놀기만 하는 사람도 없다. 나의 경우는 내 삶을 몇 가지 영역으로 구분해서 시간을 골고루 배분하려고 한다.


공부/일 (70 - 90%)+ 여가 (30-10%) : 덕질/친구/가족/취미/운동/봉사활동/종교 등등


공부/일 : 나는 학생일 때도 일을 했고, 직장 다닐 때도 공부를 했기 때문에 둘을 거의 비슷하게 생각하고 커리어를 위한 공적 영역으로 분류한다. 이 부분은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내가 덕질이나 취미에 미쳐있을 때라도 절대 침범하지 않도록 한다. 아주 바쁜 기간엔 90%까지 시간을 소모하고 한가할 때는 70% 정도까지 에너지를 쓰는 것 같다. 공부와 일 영역의 목표는 내가 다른 데 정신 팔려 있어도 잘 굴러가야만 한다.


여가 :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온갖 덕질을 해왔고, 성인 되어서도 멈추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려서 덕질은 그냥 삶의 한 영역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주 바쁠 때만 아니면 덕질에 쓰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모해서 나 자신이 완전히 휩쓸리지는 않게 하려고 늘 뇌에 힘을 주고 있다. (물론 최애의 예쁜 모습을 보면 결심은 와르르 무너진다.) 그리고 사실 덕질은 하는 동안 성취감을 느끼기 쉬워서 일이나 공부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덕질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또다시 현실로 돌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만약 내가 덕질에 푹 빠져 있다면 다른 취미를 줄이거나 집안일을 안 하지 공부나 일하는 시간을 크게 줄이진 않는다.


취미는 별게 아니고 그냥 덕질이 아닌 여가 생활의 총칭이다. 독서, 영화, 음악부터 여행이나 등산처럼 새로운 걸 배우거나 직접 하는 활동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동호회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봉사활동의 경우, 나는 스무 살 이후로 꼭 봉사활동 차원의 활동을 가끔씩이나마 하려고 해왔기 때문에 넣었다. 스펙 쌓는 용도가 아니라면 격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빈도 만으로도 꾸준히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이 많기 때문이다.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시간을 투자하면 뭔가 보탬이 되니까 좋을 테고, 스스로 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보람도 느끼고 또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여가의 영역을 다양하게 두는 이유는, 삶을 어느 정도 분리해야 한 쪽에서 일이 잘 안 풀릴 때 다른 쪽에서 재충전을 하고 와서 다시 안 풀리는 일에 집중할 여력을 얻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나는 한 가지 일만 계속할 때는 오히려 소모된다는 느낌을 받고, 오히려 여러 종류의 일정이 많을 때 좀 더 집중이 잘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박사 과정 중에도 작은 비중이나마 여가의 영역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4.


정리해놓고 보니 다들 별 대단할 건 없는 방법들이다. 모아놓고 보면 어디서 봤던 방법들의 조합일 것이다. 나도 인터넷에서 자기 계발 팁 같은 거 보면 팁을 저장만 하고 다시는 열어보지 않는 사람인데, 그런 와중에 살면서 내 몸에 겨우겨우 익은 것들이다. 사실 나는 끈기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저렇게 정해 놓고도 내가 편한 대로 규칙을 바꾸기도 하는 등 굉장히 유동적으로 살고 있다. 솔직히 저거만 다 지켰어도 나 벌써 성공했겠다 싶음ㅋㅋㅋ (성공 못함=안 지킴ㅠㅠ) 암튼 대체로는 저렇게 사는데 이제 저 패턴이 익숙해져서 바꾸지도 못한다. 이게 비효율적이라도 나는 이제 이렇게 살아야 한다.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어... 하지만 브런치에 적어놓으니 나 자신이 열심히 사는 사람 같아 보인다. (쓰면서 놀랐다.) 앞으로도 계속 자기계발서형 인간인 척, 헤르미온느의 시계를 돌리는 척해야겠다. 


아무튼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도 자신의 성격, 하는 일, 생활 패턴 맞게 자신 만의 삶의 요령을 터득하고 스스로에게 만족하셨으면 좋겠다. 혹시 자신은 이런 방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신이 의식하지 못했던 요령이나 습관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로 차근차근 정리해보면 어떤 삶의 형식이 든 되게 그럴듯해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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