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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y 03. 2016

글렌파클라스 21, 두 병째 코르크를 깨 먹다

글렌파클라스 21 두 병의 코르크가 모두 깨진 건 신의 노여움 때문인가

아일라 위스키를 비롯해서 피트가 강한 위스키를 좋아하는 데다가 세상은 넓고 위스키는 많아 살 수 있는 보틀은 한정되어 있으니 일단 위스키를 산다(누가 사준다)고 하면 아일라 노래를 부르는 것이 내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 날은 특별했다. 


- 여기 OOO 공항인데 위스키가 라프로익, 라가불린, 아드벡, 보모어, 탈리스커… 어, 그리고 이게 뭐야, 글렌파클라스가 21년짜리 있네? 

- 어, 그거 사.


외국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공항 면세점에서 M이 전화를 걸었다. 위스키를 뭘 사야 하느냐고. 기왕이면 연수가 높은 녀석을 고르고 싶었는데 아일라 위스키는 죄다 10년 12년 이 정도밖에 없어서 망설이다가 전화를 했단다. 그렇게 전화로 위스키 이름을 불러주다가 21이라는 숫자에 끌려 글렌파클라스를 불렀는데 내가 그걸 덜컥 물었다. 


- 이거 스페이사이드…라고 쓰여 있는데 괜찮아? 

- 뭐, 어때. 한 번 마셔보자고. 


이렇게 영접한 글렌파클라스 21을 처음 마시던 날, 깜짝 놀랐다. 코로 들어오는 향은 더할 나위 없이 향긋했고 입으로 들어오는 질감은 정말 부드러웠다. 위스키에서 난다는 좋은 향은 다 나는 듯했고 43도라는 도수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술술 넘어갔다(써 놓고 보니 글렌파클라스뿐 아니라 좋은 위스키는 다 이렇습니다 ^^ 글렌파클라스의 개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제가 미울 뿐). 


어우, 이거 맛있네. 그렇게 글렌파클라스 21은 아껴 먹는 위스키가 됐고 떨어지면 당연히 또 한 병 사야 하는 위스키가 됐다. 그렇게 글렌파클라스 21을 두 병째 나는 애장 하고, 아껴 아껴 마시는 중이다. 

두 병 다 깨진 걸 보니, 신의 장난이 틀림없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두 병 다 코르크가 부서졌다. 아껴 마시는 술이어서 그런가 코르크가 부서지는 순간의 멘붕은 차마 말로 하기 어렵다. 첫 번째 때는 병 안으로 밀어 넣은 후에 거름망으로 위스키를 걸러냈다가 병 안의 코르크를 꺼낸 후 다시 병에 넣는 수고를 했고 두 번째 때는 곧 빠질 것 같은 남은 코르크를 클립으로 살살 달래서 간신히 꺼냈다(눈치를 보니 선수들은 코르크 꺼내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 다음에 바에 가면 물어봐야지!). 

저 남은 코르크가 병 안으로 들어갈까봐 얼마나 손을 떨었든가

두 번째 병은 코르크 깨 먹고 부지런히 마시는 중이어서 사분의 일 정도 남았다. 어찌 보면 이 좋은 술을 빨리 마시지 뭐하러 아껴 놓고 있냐는 위스키 신의 꾸지람 인지도 모르겠다. 신이시여, 야단은 칠 때 치더라도 코르크는 그만 깨 주소서. 이 병이 다 비면 저는 또 글렌파클라스를 살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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