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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Jul 11. 2016

바의 젊은이들

그곳은 아재패션드가 절대 아니었다 

레어브리드 한 잔을 샷으로 주문할 때만 해도 나는 미처 몰랐다. 여기서 네 시간을 보내리라고는. 나는 원래 세 잔만 마시고 일찍 귀가해 내 남은 토요일 밤을 즐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레어 브리드는 기가 막히다 

처음 이 바를 찾았다는 젊은 손님 둘이 왔다. 뜻밖에도 손님은 라프로익을 주문했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십 대가 틀림없을 텐데 저렇게 자연스럽게 싱글몰트를 주문하다니. 솔직히 부러웠다. 나는 마흔 살이 넘어서야 위스키를 배웠고 이제야 그 재미를 누려가고 있는데 이 손님들은 벌써부터 위스키를 알았으니 앞으로는 대체 얼마나 더 다양한 술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결심했다. 아직 안 늦었으니 더 열심히 마시기로. 으응?! ㅋ


오너 바텐더의 단골이라는 젊은 손님도 왔다. 어떡하다 보니 까마득하지만 대학교 후배. 자연스레 말문이 트였다. 카메라를 멘 또 젊은 손님이 왔다. 아재패션드라더니 손님은 죄다 이십 대다. 이 손님, 어디선가 본 것 같다 했더니 역시, 이제서야 비로소 얼굴을 본 내 페이스북 친구였다. 


뜻밖의 젊은 손님들이 놀아준(!) 탓에 술꾼 아재는 바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했고 어느 틈에 네 시간이 흘렀다. 계획했던 시간을 넘어선 만큼 술은 과했고 몸은 늘어졌고 갈 길은 멀었다. 술이 과했다며 오너 바텐더가 만들어준 칵테일은 기가 막혔으나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고(제발 칵테일 이름 좀 짧게 지으라고~) 기껏 부른 택시 기사는 골목을 찾지 못해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밖으로 뛰어나가야 했다. 


밀려드는 손님에 바텐더는 땀을 뻘뻘 흘렸겠지만, 바는 즐거웠고 술은 맛있었다. 바는 술꾼들로도 살아 숨 쉬는 법이라는 사실을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연남의 밤은 여전히 흥겨웠고 술꾼 아재는 덩달아 젊어졌다. 다른 손님들에게 물 흐린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이면서도, 술꾼은 연남에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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