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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ug 24. 2017

에비스에 대하여

술꾼이 만화에서 본 에비스 맥주를 드디어 마시다 

나는 에비스 맥주를 만화에서 처음 봤다. 내가 좋아하는 ‘술 한 잔 인생 한 입’의 맥주 씬에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몹시 궁금했는데 그동안은 마실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괜찮은 초밥집을 찾아보다가 에비스를 판다는 초밥집을 알게 됐다. 에비스 먹으러 그 집을 예약했다고 하면 좀 오버이고 그 집으로 결정한 데 에비스가 약간 영향을 미쳤다고는 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에비스


초밥집은 깨끗했고 손님도 우리 밖에 없었다. 원래 초밥집에서는 항상 많이 먹기 때문에 술도 맥주보다는 소주나 청주를 시키는데 당연히 이 날은 에비스를 시켰다. 로즈 골드빛 동잔에 담겨 나온 에비스는 보기에도 시원했고 잔을 잡는 느낌도 좋았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맥주를 마셨으나 잔이 차가운 것과 달리 맥주는 미지근했다. 어라, 하는 순간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린내까지 올라왔다. 나는 인상을 쓰며 잔을 내려놓았다. 맥주 맛이 버렸는데 초밥이라고 맛있었겠나. 젊은 셰프는 열심히 했지만 뭔가 먹다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초밥집에서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고 금요일 저녁 손님이 왜 우리 밖에 없었는지 당연한 판단을 내리고 말았다. 그렇게 내 첫 에비스는 그야말로 개 망했다.

 

두 번째 에비스


지나다니다 보면 꼭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은 식당들이 있다. 간판이 인상적이거나 인테리어가 깔끔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집은 사실 이름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이름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데다가 한 두어 번 가본 주변 지인들이 이 집 괜찮다고 칭찬을 하는 거다. 그럼 뭐 안 가는 게 이상한 거다. 


메뉴를 받고 에비스 맥주가 보였다. 일단 에비스 먼저 주시고요, 급하게 맥주를 먼저 주문했다. 유리 글라스에 에비스가 나왔고 색깔이 마음에 들었다(색깔이 있는 술은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한 입 머금었다. 뭐야, 이런 맥주를 초밥집에선 그 따위로 내줬단 말이야? 원래 기대감이 높으면 망치는 법인데, 첫 번째 경험에서 망쳤던 탓에 더 맛있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맥주, 확실히 맛있었다. 

에비스는 일본의 복신 이름이란다. 그래서 좋은 날에 많이 마신다고. 복날에 마셔도 되나? ^^  

1. 맥주, 특히 라거는 온도가 중요하다

2. 맥주잔에서는 비린내 나기 쉬우니(특히 일식집) 신경 써야 한다. 

3. 좋은 맥주를 비싸게 팔 생각이 있다면 그만큼 관리해야 한다. 술에 무관심한 집이 음식은 잘 할 리 없다(고 술꾼은 주장한다).


에비스는 독일의 맥주 순수령을 따라 만든 맥주라고 한다. 독일 맥순수령을 지켰다고 해서 그게 꼭 우리나라 사람들 입에 맞으라는 보장은 없고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맛없는 맥주,라고 평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시장이 반찬이라고 상황에 따라 맛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본을 지키지 않는 맥주가 맛있을 리는 없다. 


나는 맥주의 기본을 지킨 집이 좋다. 에비스도 맛있겠지만 다른 맥주도 맛있을 거고 음식도 맛있을 테니까(물론 에비스와 다른 공장 생산 맥주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당분간은 에비스를 고를 것 같긴 하다). / ray, the soolk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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