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사업은 모두 잔혹한 면을 가지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한 순간의 판단 실수가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비즈니스를 전쟁에 빗대어 표현한다.
치열한 경쟁, 생존을 위한 투쟁, 그리고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 순간들.
이 모든 것이 전장의 풍경과 닮아있다.
전쟁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교과서다.
특히 리더십과 의사결정에 관한 통찰을 얻기에는
전쟁사만큼 풍부한 사례를 제공하는 분야가 드물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조선의 해군 지휘관들은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경상좌수사 박홍과 경상우수사 원균은 일본 수군과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자신들의 전선을 스스로 침몰시키고 육지로 도망쳤다.
이들은 일본의 대규모 침공 소식을 듣고는
지레 겁을 먹어 항복하거나 도주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전라우수사 이억기도 초기에는 이순신의 합동작전 제안에 바로 응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일본 수군의 규모에 압도되어 신중한 접근을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순신은 초기 해전들을 전라좌수사 단독으로 수행해야 했다.
이들의 소극적 대응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조선의 해군 무기 체계는 사실 일본을 상대로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오랜 기간 일본의 해적질에 시달리면서
이에 대응하는 독특한 전술 체계를 발달시켰다.
일본 수군의 주요 전술은 '등선백병전(登船白兵戰)'이었다.
이들의 주력 전선인 세키부네(関船)는
길이 약 20미터, 폭 3-4미터, 높이 1.5미터 내외의 좁고 긴 배로,
속도는 빠르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선체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 수군은 이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 적선에 빠르게 접근한 후,
갈고리를 걸어 배를 고정시키고 대량의 무사들이 칼과 창을 들고
적선으로 뛰어올라 백병전을 벌이는 것이 핵심 전술이었다.
이는 육상에서의 사무라이 전투 방식을 바다로 그대로 옮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조선은 오랜 기간 왜구의 침입을 겪으면서
이런 일본의 전술적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완전히 다른 대응책을 마련했다.
이는 1차적으로는 화포를 통해 일본 수군을 원거리에서 제압하고,
2차적으로는 설령 일본 수군이 배에 접근한다 해도
등선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이중 방어체계로,
일본군의 핵심 전술을 완전히 봉쇄하는 전술적 혁신이었다.
가장 핵심은 화포를 통한 원거리 타격이었다.
조선의 판옥선에 탑재된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등의
화포는 사거리가 600-1000미터에 달해,
일본 함선이 접근하기도 전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특히 대형 화포는 당시 목재로 만든 전선을 완전히 파괴하고
항행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더 중요한 것은 판옥선의 구조적 우위였다.
판옥선은 길이 약 35미터, 폭 10미터로 세키부네보다 훨씬 크고 안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선체 높이가 3미터가 넘어 일본 수군이 올라타기 극도로 어려웠다.
마치 성벽과 같은 구조로, 아래에서 위로 기어올라야 하는 일본 무사들을
조선 수군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창과 활로 제압할 수 있는 구조였다.
설령 일부가 올라온다 해도 높은 판옥선에 오르는 것 자체가
극도로 어려워 소수만 등선할 수 있었고,
조선 수군은 갑판 전체에 배치되어 있는 반면
일본군은 한두 명씩 기어올라와야 하는 구조적 특성상
필연적으로 다수 대 소수의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백병전 경험이 풍부한 일본군이라도
압도적인 수적 열세 상황에서는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물론 일본 수군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술이 있었다.
다만 이런 부분은 맥락 상 생략하기로 한다.)
이는 1차적으로는 화포를 통해 일본 수군을 원거리에서 제압하고,
2차적으로는 설령 일본 수군이 배에 접근한다 해도 등선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이중 방어체계로, 일본군의 핵심 전술을 완전히 봉쇄하는 전술적 혁신이었다.
하지만 이런 명백한 무기 체계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해군 장수들 대부분은 이 사실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다.
아니,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실전에서 이를 활용할 용기가 없었다.
일본의 침공 규모에 압도되어 자신들의 강점을 시험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이순신은 달랐다. 그는 프로이센의 군사학자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강조한 '신념적 용기(moral courage)'를 발휘했다.
클라우제비츠는 용기를 두 가지로 구분했는데,
하나는 물리적 위험 앞에서 보이는 '육체적 용기'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감 앞에서 보이는 '신념적 용기'였다.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신념적 용기는 "자신의 내적 확신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 용맹과는 차원이 다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판단과 신념을 믿고 결단을 내리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특히 지휘관에게는 이런 신념적 용기가 더욱 중요한데,
부하들의 생명과 국가의 운명이 자신의 결정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보여준 것이 바로 이런 신념적 용기였다.
단순한 개인적 용맹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전략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용기였다.
그 결과 옥포해전, 사천포해전 등에서 연이은 승리를 거두며 조선 수군의 우위를 입증했다.
이순신이 신념적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의 깊은 전략적 통찰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에게 수로를 내어주면 그 수로를 통해 원활한 보급이 이뤄지고,
나아가 수로를 통해 조선의 수도인 한양으로 손쉽게 입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중요한 수로를 적에게 내주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었다.
명량해전은 이런 신념적 용기의 극치를 보여준다.
정유재란 당시 조선 수군이 궤멸 상태에 빠져 겨우 12척의 배만 남은 상황에서,
선조는 이순신에게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 명령을 거부하며 다음과 같이 답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오니, 죽을 힘을 다하여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전선이 비록 적으나 미천한 신이 아직 죽지 아니하였으니
왜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가 12척으로도 싸우겠다고 한 이유는 명확했다.
"지금 만일 수군을 폐한다면 이는 적들이 크게 다행으로 여기는 것으로 호서를 거쳐 한강까지
곧바로 쳐들어갈 터인데, 신이 걱정하는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순신은 선조에게 이길 수 있다고 말했지만
압도적인 병력 차이로 인해 실제로는 승리를
자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수로를 그냥 포기하면 일본군이 서해를 통해
조선의 곡창지대인 호남지역을 장악하고 나아가
수도 한양까지 직접 위협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 하에,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출전을 결심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순신도 완벽한 영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명량해전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후
그는 "이번 싸움은 정말 천행이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는 두려움도 있었고, 불안함도 컸으며,
실패할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평범한 인간이었다.
다만 그 불안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으로 옳다고 판단한 일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업 역시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크다.
시장은 예측불가능하고, 경쟁은 치열하며, 자원은 한정적이다.
하지만 이런 리스크를 두려워하면 시작할 수도 없다.
조선 수군의 사례처럼, 자신이 충분한 강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레 겁을 먹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현대 기업사에서 이런 신념적 용기의 대표적 사례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 결정이다.
1983년 이병철 회장은 모든 임원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사업 진출을 강행했다.
당시 반도체는 극도로 위험한 투자였다.
투자 규모는 천문학적 금액에 달했고, 기술도 없고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일본과 미국의 거대 기업들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임원들은 "돈 먹는 하마", "자살행위"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가 미래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며,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를 잃을 것이라는 전략적 통찰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반도체 없이는 전자산업의 미래가 없다"며,
실패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해야 할 일이라는 신념으로 투자를 단행했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는 현재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 누구도 이런 성공을 예측할 수 없었다.
많은 기업가들이 완벽한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시장 조사를 더 하고, 자금을 더 확보하고, 완벽한 계획을 세우려고 한다.
이런 신중한 접근은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 현실에서 완벽히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손자병법에서도 "교지불여졸속(巧遲不如拙速)"이라 하여
완벽하지만 느린 것보다는 미비하더라도 빠른 행동이 낫다고 강조했다.
준비만 하다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병철 회장도 반도체 시장에 진입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기회를 잃는다"고
판단하고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렸다.
신념적 용기는 맹목적인 도전과는 다르다.
자신의 강점과 시장의 기회를 냉정히 분석한 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어도 전략적으로 올바른 길이라 판단되면
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의 미래 가치를 내다보면서도
성공을 보장받지 못한 채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런 용기는 특별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순신도 두렵고 불안했던 평범한 인간이었고,
이병철 회장도 거대한 위험 앞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감정보다 전략적 판단을 우선시했고,
불확실함을 받아들이면서도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사업에서도 이런 신념적 용기가 필요하다.
완벽한 성공 공식은 존재하지 않지만,
전략적 통찰에 기반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때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한다면 진정한 기회를 놓치게 된다.
미처 자신도 알지 못했던 잠재력과 능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용기 있게 도전했을 때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념적 용기를 기를 수 있을까?
이순신과 이병철이 보여준 사례에서 몇 가지 실용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사색과 숙고를 통해 전략적 가치 판단에 내적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순신이 수로 차단의 중요성을 간파했듯이,
이병철이 반도체가 미래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을 예견했듯이,
표면적 현상 너머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는 끊임없는 학습과 깊은 사고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때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자신의 판단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깊은 확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둘째, 결과보다 옳음에 집중하라.
이순신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지만 수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있었고,
이병철은 성공을 보장받지 못했지만 반도체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성공과 실패를 넘어서 "이것이 옳은 길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져야 한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전략적으로,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확신이 있다면
후회 없이 행동할 수 있다.
결과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에 대한 신념이 진정한 용기의 원천이다.
셋째, 작은 결단부터 연습하라.
신념적 용기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일상의 작은 선택에서부터 자신의 판단을 믿고 행동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작은 실패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경험이 쌓여야 큰 결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결국 성공하는 기업가와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특별한 재능이 아닐 수도 있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을 인정하면서도,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전략적 판단을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신념적 용기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일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 역시 인생과 사업에서 두렵고 회피하고 싶어서
결정적 순간에 용기를 발휘하지 못했던 적이 많았음을 깨닫는다.
이순신과 이병철이 보여준 신념적 용기를 되새기며,
앞으로는 두려움이 있어도 전략적으로 옳다고 판단되는 길이라면
용감히 맞서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