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투자 유치 분투기
두 번째 투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도네시아의 재벌 기업에게 받게 되었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생전 처음 들어보는 회사명이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 회사가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재벌 기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덤으로 인도네시아의 역사까지 공부하게 되었다.
재벌은 그 나라의 정치·경제 상황과 맞물려 형성되기 마련인데,
우리나라 재벌 기업과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았고,
출장으로 인도네시아를 두번 방문한 경험까지 있어
회사의 성격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런 큰 회사가 왜 우리 회사에 투자하려 했는지는
지금도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추측컨대, 그들이 진행하고 있는 사업 영역에서 콘텐츠 부문이 취약해
이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한국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했고,
그중에서 우리가 운 좋게 선택된 것 같았다.
여하튼 해외 기업이다보니 투자 유치 과정에서 한국의 VC와는 다른 점들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것들을 소개해보겠다.
보통 계약서를 받으면 독소조항이나 우리에게 특별히 불리한 내용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변호사에게 검토를 의뢰한다.
하지만 계약 내용을 크게 바꾸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 VC에 계약 내용 변경을 요구하면
"법률적으로 문제없고, 지금까지 이 내용으로 다른 회사와 계약해왔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게다가 계약 내용을 두고 핑퐁하면 투자 마무리 시간만 길어진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알려진 국내 VC라면 불리한 내용이 있어도
가볍게 변경을 문의해보고, 안 된다고 하면 바로 체념하고 계약을 마무리하곤 했다.
그런데 해외 기업이다 보니 계약 내용을 더 면밀히 살펴봐야 했다.
문제는 영문 계약서에다가 해외 법에 기초한 내용이라
검토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투자계약서에는 분쟁 발생 시 특정 소재지 법원에서 다루도록 지정하고 있다.
이 계약의 경우 싱가포르로 지정되어 있어서,
계약서를 정확히 검토하려면 싱가포르 변호사 사무소에 의뢰해야 했다.
다행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싱가포르 변호사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변호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분께 영문 투자 계약서 검토를 의뢰했고,
문제 소지가 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자문과 번역까지 받아
직접 계약서를 검토할 수 있었다.
계약서를 검토해보니 큰 틀에서는 국내 VC 계약서와 대동소이했다.
우리에게 더 유리한 부분도 있었고,
최악의 경우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조항들도 있었다.
국내 VC였다면 그냥 감수하고 넘어갔겠지만,
해외 기업이다 보니 나중에 어떤 일로 비화될지 몰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심지어 투자가 불발될 수 있더라도 계약 내용을 조정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투자 불발을 많이 염려했던 것 같다.
계약 내용 변경을 요구하고 서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다.
모든 절차가 금방 마무리되고 투자가 이뤄질지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4~5개월의 기간이 소요됐던 것 같다.
당장 운영 자금이 충분하지 않았던 우리 입장에서는
정말 피말리는 시간들이었다.
어쨌든 우리가 요구한 내용이 모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부분의 변경은 얻어낼 수 있었다.
투자사 담당자가 한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소통해야 했다.
회사에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 없어서 온갖 번역기를 돌려 교차 비교하고,
다양한 예문을 참조해 어색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면서 메일을 보내야 했다.
(지금이라면 AI 덕분에 이 과정이 정말 수월했을 것이다.)
여러 험난한 과정을 거쳐 계약 내용에 양쪽이 최종 동의하고 서명에 성공했다.
한국은 계약서에 날인하는 문화인데 상대방은 서명하는 문화여서,
우리는 날인하고 상대방은 서명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마무리했다.
외국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으려면
사전에 진행해야할 일들이 많다.
https://www.investkorea.org/ik-kr/cntnts/i-149/web.do
일단 은행에 방문해 외국 기업으로부터 투자받을 예정이라는
외국인투자기업등록신고를 진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도 외국기업도 국내 은행에 여러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각종 자금세탁을 방지하기 위해 이런 절차들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
여하튼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이제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투자금을 받는 일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투자사는 달러로 투자하려 했지만,
국내법상 해외 기업이 국내 기업에 투자할 때는
최종적으로 달러가 아닌 원화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약서에는 투자금을 달러와 원화 모두 병기했고,
가장 중요한 주당 주식 가격은 원화로 기재했다.
문제는 투자사에서 달러로 투자금을 송금할 때 일어났다.
당연히 계약서 작성 시점의 환율과 송금 시점의 환율이 달랐다.
심지어 협상 기간이 길어져 계약서 작성과 실제 투자금 송금 사이에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환율 변동이 있더라도 원화 가치가 하락했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투자금 송금 당시 원화 가치가 상승한 것이었다.
투자사가 달러로 송금했는데 원화로 환산하니 투자금이 부족한 상황이 발생했다.
예를 들어 해외 기업이 1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하자.
환율이 1달러당 1,200원일 때 투자금은 한화 12억 원이 된다.
주식 한 주 가격을 1,200만 원으로 정하고,
투자사가 주당 1,200만 원에 100주를 취득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환율이 변동해 1달러당 1,100원이 되었다면,
투자사가 100만 달러를 송금해도 원화로는 11억 원이 되어
100주가 아닌 91주밖에 취득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계약 내용과 달라지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환전으로 인해 부족한 금액을 대충 넘어가고 싶었지만,
은행 측에서는 원화 기준으로 계약 내용과 금액이 상이하면
우리 계좌로 투자금을 보내줄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해외 기업이 외화로 국내에 송금하면 국내 은행이 이를 먼저 받은 뒤
환전해서 투자받는 기업의 계좌로 이체해주게 된다.
이때 원화로 환전된 금액과 취득할 주식 수를 합한 금액이 일치하거나
초과되어야 한다. 그런데 금액이 부족하면 위에서 언급한대로
은행이 투자금을 받을 계좌로 아예 송금을 해주지 않는다.
(초과된 금액은 송금한 쪽 계좌로 반환된다고 한다.)
심지어 시차 등 여러 문제로 인해 투자금을 송금하는데도
시간이 소요된다.
당시 난 투자금이 입금됐는지를 은행에 수시로 확인하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투자금이 입금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하고 있었는데
곧바로 은행직원으로부터 투자금은 입금되었지만 환전해보니 금액이 부족해
우리 계좌에 송금해줄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난 정말 돌아버릴뻔 했다.
투자금이 송금되어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데,
그 돈이 은행에 묶인 상태로
우리 계좌로 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정말 답답했다.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계약을 변경하거나
투자사가 추가로 송금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투자사에 상황을 설명하고 추가 송금을 요청했다.
하지만 투자사는 투자하기로 계약한 금액보다
왜 더 송금해야 하는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사실 나는 계약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예측하고 계약서에 원화와 달러를 모두 병기하고,
최종 기준은 원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담당자에게 계속 강조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기업이다보니 달러를 기준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다만 내 입장에서는 투자의 프로들이 다른 나라 기업에 투자할 때는
그 나라 통화로 투자하는 것이 기본 원칙일 텐데,
이런 부분을 왜 모르고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여하튼 투자사를 설득해 추가 송금을 받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총 10개 사로부터 투자를 받았는데,
모든 투자 유치 경험 중에서도 해외 기업으로부터의 투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기에 적지 못한 여러 에피소드들이 더 있기도 하고,
그로 인한 마음 고생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혹시 해외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려는 분들이 있다면,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필자는 크몽을 통해 투자 유치에 대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아래의 링크를 통해
필자와의 상담이나 의뢰를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