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심장을 울리는 파동
솔직하게 말하면 뮤지컬 ‘광주’는 쉽지 않은 작품이다. 보통 뮤지컬이란 장르를 생각할 때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지고 극장을 찾는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광주’는 이런 생각을 넣어두는 것이 좋다. ‘광주’는 ‘2019 님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 세계화 사업’의 일환이자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2020년 초연했고,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인 민주, 인권, 평화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담았다. 5·18민주화운동의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은 올해는 그 의미를 더하며 지난 13일 LG아트센터에서 재연의 막을 올렸다.
고작 6개월이라는 빠른 귀환임에도, 고선웅 연출가와 최우정 작곡가는 초연 무대보다 높은 완성도를 위해 상당 부분 수정과 보완을 거쳤다. 이들은 초연 당시 관객과 언론의 리뷰를 꼼꼼히 찾아보며 드라마를 보강하고 서사를 간결하게 다듬었다고. 이에 따라 캐릭터 또한 달라졌다. 광주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베테랑 군인이었던 주인공 박한수는 광주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처음으로 임무를 맡아 고향으로 돌아온 군인으로 수정됐다. 투철한 신념을 가진 야학 교사 문수경은 그의 어린 시절 친구로, 오활사제 또한 과거 어린 박한수에게 직접 세례를 해줬다는 설정이 추가됐다. 무엇보다 초연과 확연한 차이는 마지막 장면에 있다. 시간이 흐른 뒤, 박한수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며 양심 고백을 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음악적 변화도 빠질 수 없다. 새로운 곡을 추가하고, 편곡을 달리한 36곡은 극의 구성을 빈틈없이 채웠다. 무엇보다 1980년대 민중의 뜨거운 삶이 담긴 ‘님을 위한 행진곡’은 끊임없이 등장하며 작품의 정체성을 성립한다. 최우정 작곡가는 이 곡을 기본적인 음악 소재이자 주제가로서 역할을 부여했다고 밝혔는데, 실제로 노래의 다양한 마디가 뮤지컬 넘버와 장면 사이에 흩어져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전남대에 재학 중이던 김종률이 작곡하고,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를 기반으로 창작된 곡으로,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서 숨진 윤상원과 그와 뜻을 같이했지만 먼저 유명을 달리한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이 곡은 시민사회단체, 노동단체, 학생운동단체 등 집회에서 널리 불렸으며, 아시아 전역에서 현지어로 번역되어 불릴 만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대표곡이다.
41년 전의 시대를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님을 위한 행진곡’ 외에도 실제 5·18민주화운동 당시 많이 불렸던 ‘애국가’, ‘훌라훌라’를 비롯해 ‘검은 리본 달았지’ 등이 삽입됐다. 최우정 작곡가는 “음악은 기억과 상상의 어느 곳이든 듣는 사람들을 데려가 주는 힘을 지녔다. 이 작품이 우리를 절박했던 역사의 한순간으로 데려가 다시 하나가 되게 해준다면 작곡가로서 그보다 큰 보람은 느낄 수 없을 것이다”라고 그 이유를 전했다. 실제로 41년 전에 불렸던 노래들은 무대 위에서 또 다른 생명력을 얻어 5월의 봄을 풍부하게 그려냈다.
명백하게 따지자면 ‘광주’의 주인공은 박한수가 아니라, 광주 시민들이다. 보통 대극장 무대에 존재하는 앙상블 배우는 여러 역할을 소화하며 주·조연 배우들이 노래를 부를 때 코러스를 넣어주거나 다양한 안무로 무대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광주’에는 앙상블 배우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는 저마다의 이름, 성격, 삶이 있는 한 명, 한 명의 광주 시민들이 있을 뿐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서 풀어내고, 1980년을 살고 있는 보통의 삶을 그려낸다. 여기서 ‘광주’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드러난다. ‘평범한 시민들이 만들어낸 희망’은 5·18민주화운동이 지닌 가장 큰 가치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렇게 소소하고 평화로웠던 광주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뛰어드는 과정을 통해, 41년 전의 광주 거리를 가슴 뭉클한 역사이자 기억으로 풀어낸다.
단조로운 무대를 채운 조명은 장면마다 분위기를 달리 만드는 주요한 요소다. 따스한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와 오로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달려가는 편의 대원들의 모습은 조명을 통해 확연하게 대비를 이루며, 순식간에 포근함과 서늘함을 넘나든다. 여기에 한국적 특색을 살린 연출은 먹먹함을 더한다. 박한수의 변화를 끌어내는 야학생 오용수의 죽음이 특히 그렇다. 작품 속 오용수의 죽음은 광주 시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그가 자신과 뜻을 함께했던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장면은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만든다. 오용수는 광주 시민들이 잡고 있는 크고 흰 천 사이를 ‘길 가르기’를 하며 떠난다. ‘길 가르기’는 무속에서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의식으로, 그가 걸어간 길을 따라 잘게 조각난 흰 천은 광주 시민들의 이마에 묶인다. 그렇게 광주 시민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곁에 있는 이들의 손을 잡으며 거리로 나서며, ‘함께’의 의미를 서글프게 그려낸다. 또한 집단 발포로 인해 천천히 쓰러져 가는 광주 시민들의 모습 뒤에 이어지는 고요한 적막은 보는 이들의 심장에 커다란 파장을 남긴다.
‘광주’의 커튼콜에서는 예쁜 꽃들이 흐드러져 핀 액자가 등장한다. 모든 배우는 관객이 아닌 이 액자를 향해 인사하며 퇴장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마침내 41년 전, 광주의 5월을 지켰던 그들을 마주한다. ‘광주’는 말한다. 봄이 왔다고. 이 아름다운 봄날, 우리는 5월에 붉게 스러져간 그들에게 말해야만 한다고. 우리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노라고. 그들의 사랑, 명예, 이름, 그리고 뜨거웠던 그 봄을 잊지 않고 있다고.
* 온라인 연예매체 <뉴스컬쳐>에 기고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