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로 여행가기 전 그리고 조치원을 마침내 떠나 버리기 전, 내게 건넨 그녀의 말이 2024년 여름 하루하루를 느지막하게 늦잠을 자다 깨어도 마음이 편안한 토요일 오전의 공기로 만들어 주었다.
누구와의 만남을 기약하고 나서 그 누구와 사적인 연락은 특별히 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 약속된 날까지 살아온 나날들에 관하여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그녀의 말.
그렇게 나를 통제하고 살아가는 동안 내 삶에 희노애락한 일이 생겼을 때 상대방을 하루빨리 만나 삶을 공유하고 싶어 안달이 나는 그러한 기다림을 즐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것을 알아버린 채 만났을 때 불현듯 찾아오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나도 모르게 만지작거리는 핸드폰을 원망할 때가 종종 잊지 않은가. 누구를 탓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서로를 너무 많이 알아버린 행복한 일일 수도 있지 않은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그러니까, 기다리고 고요함을 내 삶에 적용했을 때 오는 희열을 느껴보자는 말이다. 마치 뜨거운 여름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날 옷장 속 곱게 개어진 포근한 스웨터를 꺼내 입기를 기다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