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다행이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도 잘 보이기 위한 피곤한 이상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이토록 아름다운 시간이 허무한 표정과 구부정한 허리 그리고 통하지 않는 바람 덕분에 식은땀 흐르는 발바닥과 함께 미련하게 흐른다. 언제쯤이면, 내일이면 괜찮으려나. 고독하지도, 외로우지도, 떠오르지도 않으며 응달진 확고한 곳으로 향할 수 있을런지.
가만히 눈을 감고 떨리는 눈빛을 감추기 바빠하지만 눈꺼풀이 빛을 가린다 해도 은은한 잔향과도 같은 빛을 전부 가릴 수 없는 것처럼 눈을 서서히 혹은 질끈 감아도 어떻게 해봐도 떨리는 눈빛을 금세 감출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기억은 나이가 들면 함께 성숙해져 왜곡되지 않을 줄 알았다. 나쁜 기억은 오늘도 떠오르지 않아 더욱 숨통이 조여 온다.
그러기에 기억을 왜곡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잊고야 말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늘 그러니까 반드시 맑은 하늘이 투영된 드넓은, 아른한 윤슬 머금은, 겹겹이 자기주장이 강한 보랏빛 쌓인 산정들의 능선이 아로새겨진, 새들의 힘찬 날갯짓이 착각으로 춤을 추듯 보이는, 밀물과 썰물이 없어 고요하기도 바람 덕분에 일종의 몬탁 해변 같기도 한 그러한 물이 가득한 곳에서 보자.
아무렴 어떤가. 그저 내 마음이 이러하기에. 오늘도 기억의 주인을 찾으려 애썼던 나를 위해. 내일은 기억의 왜곡을 애써 부정하지 않고 수용해 나아가는 나와 너를 위해. 먼 미래에 연거푸 이상 행동을 해버릴 것을 아는 우리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