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버티는 게 답일 때도 있는 날이 드디어 찾아왔습니다. 문을 활짝 열었을 때 고막을 스치며 터질 듯한 째즈가 흐르고, 살갗을 찌르는 겨울바람 덕분에 얼어붙은 콧 속을 녹여주는 따듯한 커피 내음 가득한 공간에 매료되었습니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린 지 어언 일 년 하고 여섯 달이 지난날입니다. 지그시 바라보면서 조곤조곤 속삭이는 눈빛과 목소리를 겸비한 때론 진지하게 때론 장난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을 꼭 닮고 싶은 단골 중년 부부가 일 년 전 중얼거렸던 말을 제게 건넨 날이죠. 어쩌면 좋을까요.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사르르 동공을 채우는 잔잔한 감동이 들킬까 대뜸 저는 고개를 잠깐 숙이고 말았어요. 그러곤 대답합니다. 꿈을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이루었습니다, 라구요.
버틴다는 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이 일이 일상이 되어 그러니까, 지루함 고요함 심심함이라는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아니한 그 중간의 상태라 생각합니다. 일종의 무중력 상태를 유지하는 행동이죠. 한 끗 차이로 수면과도 같은 이 상태 위로 떠오를 수도, 꼬르륵 잠겨 버릴 수 있는 그러한 상태를 머무르는 행동. 둥둥. 물(어쩌면 저는 파도리 해변의 물을 연상한 듯합니다)의 마찰 소리를 듣기 위해 고막을 반쯤 열어둔 채 떠 있는 상태. 체력이 닿는 한 계속 버틸 수 있겠습니다. 눈을 살며시 떠야지만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볕 조도를 낮출 수 있으며, 조금의 발장구를 쳐야지만 구름 한 점 없는 물이 투영된 듯한 하늘에서 새털구름 흩날리는 저 편으로 움직이고 바라볼 수 있겠죠.
살아갑니다. 어떻게든 저지르면 살아가지더라구요. 체력이 전부 소진될 때까지 혼자 열정적으로 사는 게 답인 것을 알아차리며, 기다림 고요함 후엔 마침내 사랑하게 될 먼 훗날만 그저 알고만 있으면 됩니다. 사랑은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았고. 이영훈 그리고 곽진언의 일종의 고백에서 말하고 있음을. 사랑의 대상이 살아 숨 쉬어도 죽어 있어도 아무렴 어떻든 기다리어야 하니라. 순수함. 대가 없이. 버티며 기다리기. 저를 늘보로 여길수록 가까워지고 있음을. 그러나 언제나 저 세계는 제가 이러한들 변함이 없을 테고, 관심조차 없을 테니까요. 그저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 전람회의 이방인, 김해솔의 무중력, 윤종신의 기억의 왜곡, 윤상의 행복을 기다리며, 그리고 째즈만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겁니다.
아, 그리고 심심할 때는요. 어쩌면 무탈하기에 드는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무엇을 해야만 심심하지 않을까가 아니라 지금 주어진 해야 할 일들이 완벽에 가까우니 드는 감정이지, 걱정과 잡념이 없는 이 또한 무중력 상태. 복잡하지도 단순하지도,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그러한 상태. 심심 당부의 말씀드립니다. 심심한 건 어쩌면 평온하다는 의미라는 것을요. 부디 오늘날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기를 바라며.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