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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주의

by 유현우

기다림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귀결된 것만으로 충분하다면 세상이 너무나도 명료하다.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사랑은 더욱 견고해진다. 빅터의 표정과 행동은 전혀 다급해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을 느끼냐는 질문에 냉기가 흐르는 눈빛과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한 그의 말에서 알 수 있었다. 약간의 조바심조차도 없었다. 그는 기다림에서 오는 불안, 초조함의 감정을 이겨내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보다 삶은 기다림 그 자체라는 것을 안다. 나라 잃은 슬픔에도 그는 그저 기다린다. 혼자만 남겨지고 갇힌 터미널 속에서 먹기 위해 기다리며 일하기도, 남김없이 소진하기 위해 아멜리아를 기다리며 사랑하기도 한다. 혼자만의 사랑이어도 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안다. 알기에 순수하고 열정적이다. 사랑하는 마음의 잣대를 겨눈다 해서 상대도 반드시 나에게 향하게 하고 바라는 것. 완전한 사랑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그는 원하지 않는다. 순수한 기다림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귀결된 것을 바라는 극단적 너드이즘을 알고 행동하지 아니한다. 그렇다면 과연 아멜리아는 에고이스트일까? 이것을 두고 에고이즘을 운위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기다릴 수밖에 없기에 기다리는 거라며 그를 상상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빅터도, 아멜리아도 사랑으로 귀결되기 전 어떤 존재와 맺어 주는 욕망, 애정 이러한 감정들을 안다. 이 둘은 언제 슬퍼할까? 그들이 알지 못하거나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을 때. 그때뿐이다. 희망을 품지 않으련다. 실망과 기대와 사랑은 기대를 하고, 하지 않음으로써 결정되는데, 어떠한 대상이나 상황, 미래에의 희망 즉, 기대했을 때 그들은 슬펐던 것이다. 이것을 알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순간부터 서로는 어떤 존재에 모든 것을 용서하기 시작한다. 나는 아멜리아를 비아냥 거리거나 비웃기라도 하지 않으련다. 그녀는 빅터에게도 똑같은 열정으로, 그때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빅터를 미련하다고 그녀에게 욕을 해도 마땅하다고 손가락질하라며 다그치지 않으련다. 그저 베니 골슨의 째즈를 들으며 미장질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사람도 있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희망의 또 다른 얼굴인 후회를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때때로 후회하기도 하지만. 지나간 수많은 현재를 먹고 살아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디 후회를 거부하는 것을 알고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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