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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MIROTIC)

by 유현우

8월은 후텁지근하고 모래를 삼킨 듯 텁텁한 목 넘김이 인상적이었던 여름날의 연속이었다. 해가 높아지고 짧아져 간다. 가을이 오고 여름은 끝자락으로 향한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매장 책장 내 쌓아둔 책 사이로 마음에 드는 책을 꼬집어 내어 곧장 자리로 가 묵독을 한다.


한가로이 체호프 단편 [드라마]를 보면서 웃고 있다. 이따금 희랍어 가득한 턴테이블 사용법 및 매뉴얼을 본 것처럼 미간을 찌푸린 채로 어떻게든 읽어나간다 나도.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오후 네 시 오십 분. 오후 다섯 시는 동화책이 철학책으로 보이는 시간이다. 체호프가 적어둔 글과 낱말들이 뿔뿔이 흩어져 날아다닌다. 천장에 붙어 있다. 잠에 들만한 순간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에스파뇰 있나요?”


희랍어로 커피를 주문한 것인가. 스페인어인가. 그런 메뉴가 있는 것인가. 잘 못 알아들은 오른쪽 귀를 만지작거리며 어항 속에 바나나가 떠다니는 것을 본 것처럼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떤 것을 찾으시는지 물었다.


“에스파뇰.. 어.. 어.. 커피..?”


아! 에스프레소. 오른 귀에서 떼어진 오른손은 이마를 탁 치고 만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자연스레 유머러스한 주인장인 것처럼 주문을 능숙하게 받아내었다 나는. 휴.


주문받은 에스프레소와 티라미수를 만드는 와중에 홀에서 그녀의 통화소리가 오른쪽 귓전을 울린다. 스페인어다. 차라리 졸았기에 못 알아들었다고 자백할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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