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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남긴 것

전염병 이제 그만.

by 지니운랑

둘째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 친구 중에 OO 알지? 그 아이가 나랑 4학년 때 같은 반이래. 며칠 전에 그 아이가 4학년 때 1반이라고 말해서 나도 4학년 때 1반이었는데.. 라며 서로 깜짝 놀랐어."

첫째 아이가 말한다.

"나도 6학년 때 아이들 다 몰라. 그땐 코로나여서 학교도 자주 안 가고 마스크를 껴서 얼굴도 생각이 나질 않아."


'아.. 코로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코로나 시절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르겠다. 선별검사소를 몇 번이나 찾아가고 마스크를 찾아 헤매고 예방주사만 맞으면 며칠을 아파서 누워있어야 했고 아이들 초등학교 졸업식, 중학교 입학식, 초등학교 졸업여행 등 당연히 누려야 할 추억들을 누리지 못했다. 코로나로 좋았던 건 마스크를 써서 화장을 안 하고 다녀도 됐다는 것이다.


나의 라떼의 전염병은 수두였다. 7살 때 동네 친구에게 옮은 수두는 끝내 동생에게 옮기고서야 끝이 났다. 그 당시 엄마가 가려우면 대신 긁으라고 인형을 사다 주셨는데 그 덕분에 나는 수두 흉터가 없다. 하지만 동생은 참지 못하고 딱지를 떼어내는 바람에 결국 얼굴에 2군데의 흉터가 생기고 말았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때였던 것 같다. 그 당시 첫째는 2살이었고 나는 임신 중이었다. 그런데 회사를 다녀온 남편이 갑자기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픈 것 같단다. 그리고 밤늦게 회사 동료가 인플루엔자 확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소식을 친정에 전하자마자 아빠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차를 몰고 올라오셨다. 그리곤 나와 첫째를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가버렸다. 남편의 동의하에 일어난 사건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이 무척 서운했을 것 같다. 동생 친구 중에 "언니~ 저 신종인플루엔자 걸렸었어요. 형부 아프다 하면 연락 주세요. 내가 가서 볼게요. 다행히 전 하나도 안 아프고 잘 넘어갔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애매하게 고마운 말이다. ㅋㅋ


코로나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혹자는 "코로나 때 주식 왕창 사놓을걸." 후회하기도 하고 "코로나 초기에 왜 그렇게 유별나게 굴었는지 모르겠다."라고도 한다. 그리고 나의 엄마에겐 외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게 못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며 코로나 때 수술을 받게 된 내 동생의 수술방 앞을 지키지 못했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아마도 코로나를 키워드로 삼으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밤새도록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간절하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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