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하고 상쾌한 톨레도의 아침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잊게 만들 만큼 감동스러웠던 공간

by 라영이

계획적인 나와 즉흥적인 나


나는 원래 계획을 세우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오랫동안 기획하는 일을 해왔고, 자료를 수집하는 동시에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초안이 그려지곤 했다. MBTI 검사 결과도 항상 J로 나왔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최소한의 일만 하며 몸을 돌보는 시간을 보냈다. 그 덕분에 내 본질적인 성향에 좀 더 정직하게 다가가고, 감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 능력은 나 자신이 아니다. 내가 갖춘 기술이나 능력, '내가 소유한 것'일뿐 '나 자신'은 아니다. 진짜 나는 무엇인가? 내가 잘하고 습관처럼 하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과 감정이 물 흐르듯 움직이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런 질문을 하던 중, 다른 사람과 함께 했던 해외 일정이 혼자 떠났던 여행과 얼마나 다른지 깨달았다.


그 후로 모든 것이 심플해졌다. 나는 타인과의 약속에선 계획적이고 실천력이 있지만, 혼자 있을 때는 조용히 가만히 있는 것이 평화롭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흥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깊은 만족을 느끼기도 했다. 사실, 나는 일할 때는 매우 계획적이지만, 내면에서는 P 성향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J 성향의 행동들은 단지 내가 익힌 기술일 뿐이었다. (물론 MBTI 검사는 J와 P가 늘 엎치락뒤치락 엇비슷하게 나온다.)


이 깨달음은 내 삶을 가볍게 만들었다. 몸을 털고 일어나듯, 영혼도 정돈되었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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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듯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기로


이번 여행은 다를 것 같았다. 계획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지나치게 즉흥적인 것도, 지나치게 계획적인 것도 아닌, 자연스럽게 내 시간을 흘려보내기로 했다. 매 순간 나를 수용하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다짐했다.


지난 5월 티켓팅을 한 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대한 정보를 중간중간 모았다. 저장한 자료도 있었고, 그냥 훑어본 것들도 있었다. 준비가 느슨한 편이었다. 마드리드로 떠나기 하루 전 숙소를 예약하고, 도착 후에는 근교 도시를 가볼까 정도의 생각만 했다.


여유롭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예전의 습관대로 계획을 세우는 나를 발견했다. 준비한 자료를 보며 "찾아낸 코스를 다 돌아봐야 하는 건가" 하는 욕심이 생겼다. 내가 원하는 것이 확실하지 않다 보니, 모든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불안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평화로운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순간순간 '정보보다 내 몸과 마음을 따르자. 욕심이 내 마음이면 그 마음도 그 순간에 수용하는 거지 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왕복 티켓을 예매하고 그 시간에 맞춰 움직였을 것이다. 그 시간이 넉넉하든 부족하든 상관없이, 톨레도에 가봐야 알지만, 딱 맞지 않더라도 미리 예매한 시간에 맞춰 움직였을 것이다. 그래서 편도로 각각 끊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싼 왕복 티켓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냥 지금 싼 티켓을 사는 것도, 나중에 수수료를 물고 기차를 바꾸는 것도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원 정도로 나를 몰아세우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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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갑자기 떠난 톨레도


톨레도를 26일에 가기로 한 건 아니었다. 원래는 25일에 갈까 했지만, 24일 밤과 25일 아침엔 '움직이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마드리드에 있기로 했다. 나는 움직이고 싶은 순간에 움직였다. 그리고 26일 아침, 시차 적응 탓인지 5시 반쯤 멍하니 깨어 있다가 갑자기 톨레도에 가고 싶은 마음이 피어올랐다. 바로 omio 앱에서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떠나기로 했다.


8시쯤 숙소를 나서 9시 전에 기차를 탔고, 톨레도에는 10시도 되기 전에 도착했다. 계획 없이 떠난 길이었지만, 도착한 순간의 상쾌함과 기대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도착 후 나는 느긋하게 다리를 건너며 풍경을 즐겼다. 많은 관광객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시내로 올라갔지만, 나는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그 길 위에서 멈춰 앉아 한참을 구경했다. 이른 아침의 적막함 속에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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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잔잔하고 강렬한 평온이라니!


톨레도의 아침은 내게 강렬한 평화를 선사했다. 2~3층의 낮은 건물들이 이어지는 마을 풍경은 본격적인 톨레도 마을로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이미 모든 것이 시작된 느낌이었다. 나는 톨레도 대성당이나 요새보다, 기차역에서 대성당으로 가는 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리 위에서 본 풍경은 내 영혼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듯했다. 넓고 여유로운 공간감, 오래된 성벽, 그리고 멀리 보이는 성당은 시간을 멈춘 듯한 고요를 보여줬다.


도시 안으로 들어서니 대성당과 골목길의 매력도 눈에 들어왔다. 미술관 일부 전시관이 공사 중이라 무료입장이 가능했는데, 이 행운조차도 톨레도의 평온함 속 일부처럼 느껴졌다.


이 평화는 단순한 고요함이 아니었다. 차분하면서도 시리게 상쾌한 공기가 도시 전체에 감돌았고, 그 속에서 나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새벽 리조트에서 혼자 산책하던 기억과 비슷했지만, 톨레도 아침의 평화는 훨씬 더 강렬하고 생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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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함이 내게 남긴 흔적


즉흥적으로 떠난 톨레도는 아침의 고요함과 시린 상쾌함으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잊고, 단순히 여행지를 본 것이 아니라 여행 자체를 깊이 느꼈다. 그 평온함이 단순히 톨레도라는 공간을 넘어, 나 자신을 더 깊이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건 아닐까?


이 긴 여행의 도입부에서 겪은 이 경험은 정말 축복이고 행운이다.


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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