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할 수도 없던, 어느 여행 날의 행복

오픈채팅방에서 만난 그녀와의 저녁

by 라영이


오늘 아침,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 상태였다. 개운하게 일어나 몸과 마음에 충분한 에너지가 있었고, 마드리드를 떠나기 전 유명한 스팟을 가보고픈 마음도 피어올랐다.

누군가의 일정에 졸졸 따라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그러기에 충분한 에너지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뇌는 비우고 하루를 보내고 싶기도 했다.

스페인 여행 중인 사람들이 모인 오픈채팅방에 들어갔다.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이 저녁을 함께할 동행을 찾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본 일이 없다. 연애의 참견에서 서장훈 씨가 반복해서 말하는 '신원 확인된 사람'과만 소통하라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 조심스러워한달까.

그런 내가 오픈채팅방 입장을 떠 올린 건, 지난 치앙마이 여행에서 만난 이들 덕분이었다. 치앙마이 예술인 마을에서 가죽지갑 미니공방에서 내 이름을 새기고 있었다. 지나가는 한 분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한국 여성분이었다. 잠깐의 대화를 하다가 우린 차 한잔을 하게 되었다.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한 한국 여성분이 다가와서 스마트폰 액정 클리너를 그냥 주고 갔다. 내가 출국 전엔 코로나가 발생 전이었는데, 그날은 코로나 발생 후였다. 그녀는 "지금 난리니까 위생을 챙기셔요"라는 말을 남겼다. 차를 함께 마시던 여자분에게, "사실 아까 액정 클리너를 주신 분에게 합석제안할까 고민했는데, 혹시 A님이 불편하실까 봐..."라고 하자 같은 생각 했다고 했다. 우리 둘은 그녀를 찾기 위해 그녀가 걸어 들어간 루트로 들어갔고 곧 만났다. 세 명이 되었고, 우리는 다른 카페로 가서 여행에 대한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각자 어떤 여행 중인지를 시작으로, 운 좋게도 성향이 비슷해 현재 인생의 어떤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까지 대화하게 되었다. 물론 셀카가 아닌 사진도 서로 남겨주었고, 시내로 들어오는 택시도 함께 타고, 재즈바에 가서 칵테일도 한잔 하며 밤시간도 보냈다. 세 명의 단톡방을 만들었고, 다음 날도 함께 모여 맛보고 싶던 여러 맛의 쏨땀도 같이 먹고, 혼자 가기엔 양이 많은 생선요릿집도 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쉬이 하지 않던 '온라인에서의 여행동행 구하기'를 오픈채팅방에서 한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듣게 되었다. 택시비 아끼고 어디 포인트가 야경이 좋다는 정보를 얻었다고 했다.

그 기억이 떠올라 오늘 마드리드에서 오픈채팅방에 들어갔다. 내 인생 첫 오픈채팅방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신원확인이 안 되면 소통 안 한다고 하기엔, 길거리에서 실물로 만난 사람은 소통을 쉬이 하는데 온라인에서만 안 했던 것이구나 싶다.)

오픈채팅방에 '혹시 마드리드 혼자 여행 중이신 분, 조용히 잘 따라다닐 텐데 저 좀 데리고 다녀주실 분 없을까요?'라고 글을 쓰고 싶었지만, 남의 계획 위에 무임승차하는 듯한 미안함에 망설였다. (나중에 보니, 그런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런데, 오늘 마드리드에서 함께 저녁 먹을 사람을 찾는 글을 보고 바로 "저요!"라고 답하며 합류했다.

한 여성분이었고, 약속을 정하고 나니, 미리 그 근처로 나가고 싶어 져 마요르광장에 갔다. 홀로 버스킹도 보고 크리스마스마켓도 즐겼다.

이후 동행을 만나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마드리드에 깔라마리샌드위치가 유명하단 걸 알고 있었지만, 가지 않던 내 발걸음이 그녀 덕에 움직였다. 내가 생각도 안 한 메뉴, 하지만 한국인이 진짜 많이 오는 식당에 가서 저녁도 먹었다. 마요르광장, 솔광장에 야경도 보러 갔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배경으로 서로 독사진도 남겨주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세비야를 다녀온 터라 내게 세비야 정보를 주었고, 또 다음날 톨레도를 갈 예정이라 나는 톨레도 정보를 주었다.

갑작스럽게 알찬 여행이 되었다. 정말 예상을 할 수 조차 없던 흐름이었다. 그럼에도 흥미롭고 신나고 만족함이 넘쳤다.

이런 경험도 좋구나. 오픈채팅방에 '저요!'라는 한 마디 용기(?)에서 시작된 하루. 평소 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이 힘써 극복해 내야 하는 것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졌다.

이 느낌, 참 행복하다.

24.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