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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미모미 MomiMomi Apr 02. 2020

너와  나 사이의 구멍

소통의 틈


2년 전 제주살이를 할 때 작은 땅을 분양받아
‘달팽이 농장’이라 이름을 붙이고
아이들과 함께 밭을 가꾸었다.


10평도 안 되는 아주 아주 작은 땅이었다.

분양을 받고 처음 한 일은 몇 년간 방치되어있던 풀이 무성한 땅을 정비하는 것이었다. 읍내에 나가 커다란 곡괭이와 호미 몇 자루 그리고 밭 일용 방석을 샀다.
 
땅이 손바닥처럼 작아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무성하게 자란 유채꽃과 잡초들은 금세 뽑혔지만, 복병이 숨어있었다.

씨앗과 모종을 심기 위해 호미로 파 본 땅은 뭔가가 계속 걸렸다. 돌멩이였다. 그것도 제주에만 있는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돌멩이들이 파도 파도 끝없이 나왔다.

우리는 두둑 3개를 만들었는데 한 두둑 안에 있는 돌멩이를 캐내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은 구멍 숭숭 난 돌멩이가 아빠 코를 닮았다며 좋아했다가 뜨거운 햇살에 지쳤는지 다음 날 다시 하자고 했다.
 
다음날도 밭 일용 방석에 주저앉아 하루 종일 돌을 파냈다. 10평이 안 되는 작은 땅에서 나온 돌만으로도 달팽이 농장의 아담한 담장을 쌓을 수 있었다.

제주에는 돌이 정말 많다는 말을 노동요 삼아
돌을 파냈다.

아이들과 현무암으로 돌담을 쌓으며 돌에 난 구멍,
그리고 돌과 돌 사이에 난 구멍을 관찰하게 되었다.

밭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돌담도 유심히 관찰했다.


 


자세히 보니 제주의 돌담은 품자 쌓기라
한자어의 品 모양으로 얼기설기 쌓았는데,
심한 바람이 불어도 끄떡 이 없었다.


간혹 시멘트를 사이사이 부어 고정한 돌담도 있었지만,
그런 고정된 아교 없이 현무암 만으로 쌓아진 돌담이 소박하지만 정겨웠다.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 돌담이 신기했다.
딸아이가 인터넷을 검색해 보더니
제주 돌담에는 과학이 숨어있다고 알려주었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현무암의 구멍과
또 그 현무암을 얼기설기 품자 모양으로 돌담을 쌓으면
구멍 사이사이로 바람이 통과되고
그 세기가 약해지면서 무너지지 않고도 담장의 역할을 단다.

바람과 돌이 많은 곳에 사는
제주 사람들만의 삶의 지혜가 담긴 돌담이었다.
 
제주 특유의 멋을 간직한 돌담을 보며, 약점을 인정하고 극복하지 않고도 오히려 그것을 이용함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낸 제주민의 삶에서 지혜와 긍정이 껴졌다.


구멍이라는 작은 공간이 주는 여유와 지혜를 제주 돌담을 통해 우리네 인생에도 대입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살면서 내 삶에 필요한 구멍들을 허용하고 있을까?


세상 사이에 바람이 넘나들 수 있는 틈새를 허락하고 있는 것일까?
 
구멍은 소통이다.

나를 전하기 위해 그리고 세상을 나에게 닿게 하기 위해 필요한 소통의 창구가 구멍이다. 구멍이 없다면 막혔다는 것이고, 막힘은 흐름 멈추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함께 살면서 그 필요한 존재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틈과 구멍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더 세게 부딪히고 충돌하다 서로에게 생채기를 남기기도 한다.


사람 사이의 구멍이란 뭘까?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여지,
상대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란 배려가 상대와 나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구멍이 아닐까 한다.
 
누구나 나의 입장만 보면 상대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인다. 비정상으로 보인다.

우주에서 바라보면 세상은 비정상인들로 가득 찬 세상일 것이다.

이상하고 비정상인 것을 달리 표현하면 ‘다름’이다. 인정하기 쉽지 않지만 창조주는 우리를 다 다르게 만들어 놓으셨다. 태생이 그렇다는 것이다. 게다가 살아온 환경과 감정의 역사들이 모두 다르다. 그러니 얼마나 다르겠는가? “다름 천지’에 살고 있다.

창조주는 사람을 동일하게 만들지 않고 각자 다르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다름 안에서 인생의 묘미를 찾아보라고 하는 창조주의 재치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문자 추상의 대가로 잘 알려진 이응노 화백은 사람들의 집합체인 군상 그림으로 유명하다. 이 화백의 작품에서 사람들은 구멍을 하나씩 가지고 서로 연결된 모양을 하고 있다.

<이응노, 군상>


구멍은 나의 세상과 저쪽 세상과의 끊임없는 연결이. 내 생각만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는 것이 아나라 세상을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인정는 것이다.
 
제주의 여유로운 돌담처럼,

이응노 화백의 군상 조각 가운데 뻥 뚫린 구멍처럼

오늘도 구멍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고 싶다.

내 생각만 붙들고 무거워 어쩔 줄 몰라하는 대신 

삶이 던져주는 많은 것들을 내 안을 통과시키면서

의미가 주는 것들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삶을 살고 싶다.

하루를 마치며 그 구멍이 미약했다는 생각이 들면
후회와 자책 대신, 오늘보다 조금 더 큰 구멍을 허락할 것이다. 내일을 더 온전히 살아내기 위한 연습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말이다.    

주말에도 새벽 출근을 하는 남편을 향해
미소로 인사한다.
어젯밤 세금 문제로 인한 의견 차이로
서로 심기가 살짝 불편하다.

운전 조심하시오~
인사하며 어색한 미소로
나의 틈을 연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도 당신처럼 허점(구멍) 투성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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