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잘 벼려진 칼과 같습니다.
우리는 막연히 이성이 감정보다 더 뛰어난 판단의 근거가 된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뇌종양 때문에 감정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면 이성만으로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엇이라 불리는 이 남자는 뇌종양을 앓기 전 뛰어난 회계사였고, 건설 회사의 회계 감사 지위에까지 올라 있었습니다. 그는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사교성도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뇌수술을 받은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했습니다.
엘리엣은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는 과정 중 전두엽에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 이후 그는 과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고려에 넣지 않고, 사소한 디테일에만 집착하다가 일을 망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주 사소한 결정도 쉽사리 내리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는 데 2시간이 걸리고, 머리를 감는 데 온 하루를 다 쓰기도 했습니다. 어떤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을지 몇 시간을 고민했지만 결국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고, 레스토랑에 가서도 메뉴를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며 갈팡질팡했습니다.
유능한 신경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 Antonio Damasio는 엘리엇을 상대로 지능 검사를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지능은 상위 97~99%에 드는 수준이었습니다. 최소한 그의 IQ는 130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이것만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의 이성적 능력은 전 세계에서 상위 1~3% 내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수술 이후 사소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일을 체계적으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투자에 실패해 전 재산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다마지오는 긴 시간을 할애해 엘리엇과 대화를 나눈 뒤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엘리엇에게서 감정적 표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벌어진 비극에 대해서 조금도 슬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다마지오가 엘리엇에게 지진, 화재, 교통사고 등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에도 엘리엇은 어떠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저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계산한 뒤 반응하는 식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 혹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감정은 왜 존재할까요? 흔히들 감정이 하나의 알고리듬이라고 합니다. 입력이 들어가면 우리는 어떤 감정을 산출해 냅니다.
그저 감정이 산출되는 것으로 끝이라면 감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이 우리에게 벌어지는 내외부 사건에 대해 가중치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강력한 감정적 부하가 걸리는 사건은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사건에 우리의 주의를 동원하여 주목하고, 심리적 자원을 투자한 뒤 빠르게 결정을 내립니다.
엘리엇에게서 사라진 것은 바로 이 과정입니다. 이성만 남은 그에게 세상은 그저 평평하고 온통 회색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감정을 우리의 세상을 다채롭게 칠하고, 어떤 부분은 도드라져 보이게, 어떤 부분은 푹 꺼져 보이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할 때와 나아갈 때를 판단할 수 있게 합니다.
물론 우리가 끼고 있는 감정의 색안경이 무조건 옳다거나 합당한 결정을 내리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에 압도되거나 치우쳐 내린 결정을 후회하는 일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이성만으로 결정을 내린다고 해서 늘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꼼꼼하게 검토한다고 해도 우리는 모든 변수를 다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성에 비해 감정은 신속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 특히 위험할 때 속도는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위협적인 상황에 쳐해 있는데 너무 많은 변수를 고려하는 것보다는 빨리 그곳을 빠져나오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명석한 두뇌가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심장의 쿵쾅거림, 등에 흐르는 땀입니다.
이성과 감정은 둘 다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천천히 숙고할 일이 있고 직관적으로 결정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니까요. 다만 감정은 잘 벼려진 칼 같은 것입니다. 좋은 손에 쥐어져 잘 쓰이면 도구가 되지만 성급한 자의 손에서는 주인을 베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