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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작가 Nov 21. 2022

20200704 토요일: 상담자 노릇

첫번째 입원: 20200630~20200711


병동 친구가 또 한명 늘었다. 27살의 남자아이. 생긴건 30대 아저씬데 27살ㅋㅋㅋ 볼 때 마다 너무 깍듯하게 인사해서 나를 너무 어르신 취급 하는거 아니냐고 물었다. ㅋㅋ 그랬더니 여기 할머니도 계시고... 라는 말을 하며 어젯밤에 둘이 폭소했다ㅋㅋㅋ 너무 웃김. ㅋㅋ




주치의가 복도에 있다. 다른 환자랑 얘기 중이다. 문득 질투가 조금 날 것 같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걸까 젠장. 빨리 나랑 면담했으면 좋겠다 ㅠㅠ 애닳아 진짜... 이런 마음은 진짜 대체 왜. 어떻게 생기는거지?ㅜㅜ 너무 짜증난다. 이런 애끓는 마음.. 남/여 가리지 않고 나는 이런것 같다ㅠㅠ 어떻게 이렇게.. 상담자나 면담자에게 쉽게 이런 마음이 드는건지.. 역시나 '경계선' 으로 밖에 설명이 안된다. 설명이 안돼ㅠㅠ 빠져나올 수 없는 병. 고작 4일 꼬박 면담했다고 이런 마음이 생겨??! 왜캐 나는 마음을 쉽게 주냐.. 지금 믿을 곳, 의지할 곳이 아마 주치의 밖에 없어서 그런것같다 ㅠㅠ 흑흑. 너무 지겹다 기다리는 거. 시간이라도 좀 알려주면 좋겠다.. 지겨워 정말.. 지겹고 불안해. 왜 나한테 안오지? 생각이 들어서 무척 불안 ㅜㅜ




주치의 면담. 생각보다 많은 말을 했다. 울컥 할 뻔. 어릴 적 엄마 얘기. 날 싫어한다는 얘기. 그거 지금 생각해도 너무 서럽다. 소외감, 동떨어진다는 생각에 대해서도 말했다. 말하고 나니 뭔가 뿌듯.. 면담 길게 못한다더니 생각보다 길게 해서 좋았다. 아.. 내일은 아무것도 없구나ㅠㅠ 넘나 심심할듯 ㅜ 어제 아빠한테 전화 안했는데.. 해줘야되나.. 귀찮다. 아빠는 입원하면 모든게 나아질 줄 아는데, 현실의 나는 그렇지 않다.




또다른 친구. 연애 스토리를 들었다. 너무 힘들었다. 하아... 그치만 공감해주고 관심있게 얘길 들었다. 이 친구는 좀 매력적인 것 같아.. 흡입력있게 얘길 들었다. 아직도 3시 20분 밖에 안됐다. 시간이 무척 안간다ㅠㅠ 시간 드럽게 안가. 면담도 아침에 했고, 내일은 면담도 없을거고.. 흑흑 무척 힘이 드네..




몇 일 지내면서 느낀거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자기얘기만 하고 싶어해. 다른 사람들에 대해 궁금하거나 걱정하지 않아. 내게 다가왔던 사람들 모두 자기 얘기만 실컷 떠들다 가버려. 그래서 공허하다 공허해.. 뭔가 아깐 불안이 올라왔다가 공허하고 조금 죽고싶었다. 다들 껍데기 뿐이야 라는 생각이 드니까 정말 힘이 빠진다. 집단 사람들이 그리울 지경. 집단 다시 가고싶다. 랄라도 만나고싶다. 혜운도 보고싶다. 무척무척. 빨리 퇴원해서 벗어나고파. 퇴원은 언제쯤..ㅜㅜ 죽고싶은 마음이 나아지든 말든 상관없이 퇴원이 하고싶다ㅠㅠ 병원생활 너무 갑갑해. 하... 오늘 내일 중으로 비상약 처방 받아야 할듯. 너무 공허하고 불안하다. 곧있음 죽고싶어질것같아.ㅜㅜ 월요일까지 어떻게 기다려;; 내일이 고비이군. 혜운한테 전화했는데 안받는다. 상담중인걸까.. 원래 5시 내시간이었는데..




새로 생긴 친구가 또 찾아와 나를 만나서 해결이 됐다고. 평안해졌다고 말했다. 좀 부담이 됐다. 걔는 언니가 생겨 좋다며, 고민 생기면 또 와도 되냐고 했다. 나는 흔쾌히 ok 했지만 조금 부담스럽다. 얼마만의 언니이자 상담자 노릇인지.. 학창시절에 좀 했었는데.. 다시 돌아왔다. 나의 이 사람 마음을 잘 읽는 모습. 경계인의 특징. 후.. 좋은건지 나쁜건지 잘 모르겠다. 상담을 해 준 나는 우울하니... 태주님이 내게 남에게 관심갖고, 채움받으려고만 하지 않고 채워주면 공허하지 않고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는데.. 그걸 내가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공허해... ㅜㅜ 에휴 내가 이모양인데 내가 누굴 상담해주고 채워줘. 저 친구가 퇴원 후에도 계속 연락올까 두렵다. 과연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주말에는 주치의 선생님 못만나는 줄 알았는데 토요일에 나오신다고 말해서 기뻤다. 이 날은 아침부터 오셔서 일찍 면담해서 좋았다. 30분 면담.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늘 면담하고 느끼는거지만, 30분 시간이 아쉽지 않게 꽉꽉 채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좋다. 30분 안에 이렇게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점점 주치의 선생님에게 빠져드는 중...... 이런 내가 너무 싫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좋은걸 어떡해.




이 날은 병동 복도를 걷다가, 혼자 서 있는 여자 아이를 발견하곤, 말을 붙였다. 어제 수액 맞던데 몸 괜찮은지 그런 안부를 묻다가 이 친구가 갑자기 자기 연애스토리를 쫘악 펼쳤다. 자기가 이 병원에 들어온 이유이자 현재 가장 중요한 이슈에 대해... 3시간 넘게 얘길 들었다;;;;;; 내가 연애는 안해봤지만, 끊어진 관계가 얼마나 마음 아픈지 잘 알아서 이 친구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일명 상담자 역할. 이 친구의 마음을 스스로 탐색하게 도와주고, 어떤 감정인지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얘기가 끝나갈 무렵 이 친구는 무척 감격하며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언니를 만나서 얘길 할 수 있게 되서 내가 마음이 너무 평안해졌다고.. 모든게 다 해결된 것 같다고.. 후....... 나는 피곤했다. 3시간 넘게 얘길 듣고 에너지를 썼더니 너무 피곤하고 모든게 다 해결된것같다는 이 친구의 반응도 조금 의아했다. 나중엔 밖에 나가서도 연락하자는 말에 조금 질겁했다. 내 표정을 보고 이 친구가 언니 나랑 연락하기 싫어? 하고 묻길래, 그런거 아니라고 말하긴 했지만 솔직히 밖에 나가서도 이 친구의 고민을 들어줄 자신은 없었다. 이친구는 바로 이틀 후에 퇴원을 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지 내게 번호를 묻지 않고 나갔다. 정말 다행이었다.




병동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며, 집단과 태주님이 많이 생각났다. 여기 사람들은 다들 자기 얘기만 하고, 남에겐 관심없구나. 라는게 너무 느껴져서... 집단에서 내 모습도 저랬겠구나... 하고... 태주님이 내게 자주 해줬던 말들도 함께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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