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남자가 왜 꽃을 좋아해?

중년의 남자가 꽃을 가꾸는 이유

by nAmsoNg


꽃은 아리따운 여성에게 어울리는 것으로 각인되었다. 고백의 수단이고 이벤트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여성들은 꽃다발을 받으면 모두 헤집어서 작고 반짝이는 것을 찾는다고는 하다만...

아무래도 꽃다발을 받고 코끝을 가까이하며 행복해하는 여성이 남자들의 정서에는 더욱 사랑스러울 것이다.

먹을 수도 없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닌 꽃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남자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여자라면 아무리 예뻐도 매력은 반감된다. 반감을 넘어 만남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도 연애를 하면서 종종 꽃다발을 선물한 적이 있다. 사랑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법이고 낭만이라 믿었던 시절이었다. 꽃이 여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하던 시기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남자들만이 가지고 있던 네모난 관념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자들에겐 주기적으로 꽃을 선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기적으로 받치지는 않았지만... )


후리지아 꽃을 들고 그녀를 기다리던 어느 봄날이었다. 동인천 역 계단에는 고양이가 하품을 하며 나른하게 늘어져 있었다. 가슴 앞에 들고 있던 노오란 후리지아 꽃에서 사랑스러운 내음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후리지아 꽃향기를 맡으면 그날의 봄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처음 꽃에 매료되었던 날이었다. 그날 데이트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봄볕에 더욱 짙어진 노오란 후리지아의 매력이었다.

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곁에 두거나 키워보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꽃은 아름다운 것이고 또한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적절한 도구정도였다. 예쁜 것은 알지만 내가 필요할 때 잠깐 찾는, 딱 그 정도의 거리였다.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자연스레 정신적인 안정과 여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글을 쓰고 캘리그라피를 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다 문뜩 하얀 시간과 맞닥뜨릴때면 두서없는 생각으로 채웠다. 어느 날은 그 두서없는 생각 가운데 하나의 생각을 잡고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꽃은 참 예쁘다>

<내 곁에 꽃이 있으면 참 행복하겠다>

<꽃을 가꾸면 차분하게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까?>

<화단에 물을 주는 남자는 매력 있지 않을까?>

<그래! 꽃을 키워보자!>

21년도 8월이 며칠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가을에 피는 꽃을 검색해서 <국화>와<쑥부쟁이>라는 꽃을 주문했다.

생각이 너무 깊어서 놓치는 것이 많은 성향이면서도 어떨 때는 총알처럼 움직이는 실행력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본가에 방문했을 때 노랗게 피어있는 멜람포디움이라는 꽃을 몇 송이 가져왔다.

화단이 있던 게 아니라 직장 한켠의 작은 공간에 흙을 퍼담아 화단을 만들고 멜람포디움을 심었다.

노랗게 핀 꽃은 10월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더욱 풍성하게 꽃을 피웠다. 국화도 꽃을 피웠다.

여태껏 요지부동이던 쑥부쟁이는 며칠 전부터 보랏빛 꽃이 열리더니 이제 제법 들꽃 다운 수수한 멋을 낸다.

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화사하게 피어있는 것 같다.


이후로 걷다가 활짝 피어있는 꽃을 보면 가까이 가서 보기도 하고 차를 타고 갈 때면 <와! 꽃 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 나를 보고 있던 아들은 <남자가 왜 꽃을 좋아하고 그래? 아빠 여자야?>라고 묻는다.

10살배기 아들에게 남자의 선입견을 가르친 것도 아닌데 남자는 당연히 꽃과는 거리가 있어야 하는 듯 알고 있다. 나는 대답했다.

<남자도 꽃을 좋아할 수 있는 거야! 예쁘지 않아?> 꽃이 예쁘다는 것에는 공감하면서도 아들은 아직 아빠만큼 꽃을 좋아할 마음은 없는듯하다.


영화 <레옹>에서는 레옹이 마틸다와 집을 나서며 식물이 담긴 작은 화분을 들고 나선다.

킬러가 키우는 화초.

영화 <대부>에서는 마피아 보스가 꽃에 물을 주는 장면도 있었다.

누구보다 거칠고 냉철할 것 같은 남자가 꽃을 가꾸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여러가지 해석을 갖게 한다.

남자에게 꽃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발산할 수 없는 남자의 여성성을 표현하는 방법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꽃을 가꾸는 남자는 더욱 매력적이다. 왜소한 여성이 4륜 구동 지프를 운전하며 오프로드를 달리는 이질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매료되는 매력과 비슷할 것이다.


매력적인 남자를 추구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꽃을 가꾸는 것은 아니다.

시든 꽃을 따네고 삽목으로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물을 주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나의 마음이 차분해지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로 생명 하나도 죽이지 못하는 여린 마음이 되었다. (바퀴벌레는 예외지만... )

오징어게임의 배우 오영수 님이 말했다.

<젊을 적엔 예쁜 꽃을 보면 꺾었지만 이 나이쯤 되면 그대로 둡니다. 그리고 꽃을 보러 다시 가지요. >

생명의 소중함과 급하지 않는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무엇이든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이치에 맞고 아름다운 것 같다.


내가 앞으로 꽃을 가꾸는 일이 꽃과 더불어 내 마음에도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취미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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