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느리다는 것은
단지 내 주위가
빠르다는 것이죠
저는 저의
규정속도를 지킬 뿐입니다
답답하면 먼저가세요
손가락질은 삼가하시고
헤헤
이슬의 흔적이 남은 캠핑장의 아침은 개운했다. 아들과 함께 주변정리를는 하는데 이슬을맞고 돌아가는 달팽이와 마주쳤다. 급히 아들을 불렀다. 둘이 쪼그려 앉아 한 참을 바라보았다.
나는 또 생각이 많아졌다. 확실이 이건 병인것 같다.
이렇게 느린 이 아이에게 세상이 뭐라고 할말이 있을까?
왜 빨리 가지 않냐고 재촉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열심히 움직이지만 순식간에 사라지지 않는 달팽이의 느린 걸음이 나와 많이도 닮아있었다.
일을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 않던 신혼초. 숨이 차게 달렸지만 언제나 와이프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몸이 지치니 마음도 지쳤갔다. 하지만 가장이라는 책임과 자존심으로 지친 기색없이 달렸다. 혼자 감내해내야하는 고독은 결국 큰상처가 되었다. 현실의 참담함은 감히 나를 힘들게 하지 못했다. 견딜 수 없는 것은 내가 선택한 사랑이 더이상 사랑으로 되돌아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유가 없어서였을까 와이프의 한마디 한마디가 항상 비수로 꽂혔다. 그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잔인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사람에게 현실의 힘겨움을 견딜 능력은 부족할 것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을 지키는 것까지 놓아서는 되겠는가! 매일매일 돼지우리의 똥밭에서 뒹구르는 꼴이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들을 바라볼 때면 항상 마음이 찢어졌다.
나의 속도는 사회가 원하고 와이프가 원하는 속도보다 한참이 늦었던 모양이다.
일은 결과가 중요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과가 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사랑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말하고 사랑을 하지 않은가! 그대가 선택한 사랑이 세상의 속도보다 늦다하여채찍질로 몰아세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말로 비수를 꽂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해를 바라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떠오르자 나는 급히 머리를 털어냈다. 더이상 과거로 돌아가 그 아픔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달팽이는 아들의 요청대로 잠시 키워보기로 하고 작은 통에 담았다. 아직도 빠르지는 않은 나의 걸음에 스스로 심심한 위로와 격려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