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엄마 혼내도 되죠?

나는 피터팬의 나라로 출근 한다.

by nAmsoNg


수영장의 하루를 마무리하다보면 꼭 하나씩 생기는 것이 있다.

바로 이름 없는 분실물들이다. 가장 많은 것은 수영모자와 수건, 수경이다. 주인 잃은 수영복도 심심치 않게 탈의실 한 켠을 차지하곤 한다. 입회원서를 작성 할 때부터 엄마들에게 강조하며 수영용품에 이름을 써달라고 이야기 하지만 대부분 쓰지 않는다. 아이들이 많다보니 선생님들이 모두 챙겨주기 어려운 상황이 자주 생긴다.

새로산 수영복에 이름을 쓰지도 않고 수영장에서 분실됐으니 책임지라고 하는 어머님도 있다. 그럴 땐 회사비용으로 같은 제품을 사드리기도 한다.

분실물 문제로 컴플레인이 생기고 수영지도에 서류업무까지 바쁜 지도자들이 분실물까지 찾아 나서려니 너무 힘이 들었다. 결국 지도자 회의때 대처방안이 몇가지 나왔다.

첫째, 담당 선생이 상담전화시 어머님께 아이의 수영용품에 이름을 기재하도록 전달한다.

둘째, 수업이 끝나고 샤워장에 들어오는 즉시 아이들 스스로 수모와 수경을 본인 가방에 넣도록 교육한다.

셋째, 손에 잡히는 수영복은 모두 이름이 있는지 확인 후 선생님들이 직접 그자리에서 이름을 적어준다.

한 동안 운영을 해보니 눈에 띄게 분실물이 줄었다.


그렇게 평범하게 지나가던 어느날 오후였다.

수업을 마친 친구들에게 수영복을 찾아주며 옷입는 것을 도와주는 시간이었다. 우리반은 아니지만 평소에도 눈에 익어 인사를 나누던 6살 아이 앞에 앉았다. 가방옆에 떨어진 수영복을 무심히 들어서 넣어주려다가 혹시나 해서 수영복을 살펴봤더니 이름이 없는 것이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심각한 어조로 아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 어! 수영복에 이름이 없네? > 옆에 있던 선생들은 장난에 시동이 걸린 것을 알고는 덩달아 큰일 났다는 듯이 분위기를 조성했다.

난 다시 아이에게 물어봤다.

<수영복에 이름을 써야해요~ 안써야 해요? > 아이는 굉장히 당혹스런 눈빛이었는데 너무 귀여워서 장난을 멈출수가 없었다. 아이는 선생님의 말이 장난인지 진심인지 감을 잡으려는 듯 씨익 웃으며 작게 대답했다.

< 엄마가 안 써줬어요~ > 엄마이야기를 하면 그냥 넘어 갈꺼라 믿고 정답을 말한듯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여기서 장난을 멈출 수 없었다. 지금 이 대화는 절대 장난이 아니라는 듯 어두운 표정으로 이름 없는 수영복과 아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이는 한쪽 다리만 바지에 넣은체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잠깐의 침묵을 깨고 내가 말했다.

< 안 되겠어요! 선생님이 엄마 좀 혼내도 되죠? > 아이가 위기를 넘기기엔 질문이 너무 어려웠다. 엄마가 선생님에게 혼나는 것을 상상이라도 하는 듯 아무대답이 없었다. 그때마침 아이의 왼쪽손목에 채워진 귀여운 레고 시계가 눈에 띄었다. 나는 장난을 이어갔다.

< 좋아요! 그럼 엄마 안 혼낼 테니깐 이 시계 선생님 선물로 주세요! 괜찮죠?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는 손목을 등 뒤로 감췄다. 아이에게 엄청나게 소중한 것임이 확인 되는 순간 바로 일침을 가할 질문을 던졌다.

< 그럼 선생님이 시계 안가져 갈테니깐! 그냥 엄마 혼내도 되죠? > 아이는 이어지는 난감한 질문에 처음으로 대답했다.

< 네! >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지만 아이는 여전히 심각했다.

엄마가 혼나도 포기할 수 없을만큼 소중한 시계로 아이가 오늘 얼마나 행복했을지 짐작이 갔다.

그리곤 시계와 엄마를 바꿔버린 아이의 선택이 너무 귀여웠다.

< 오케이! 선생님이 지금은 바쁘니깐 엄마는 다음에 혼낼께요! 오늘은 일단 옷 입고 잘가요! >

옷을 입혀가며 했던 대화였기 때문에 곧 귀가했고 선생님들 사이에선 그날 탈의실에서 있었던 아이의 귀여운 행동이 이슈가 됐었다.

그리고 이틀이나 됐을까...

인포데스크로 컴플레인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에게 엄마를 혼낸다고 한 선생님이 계셔서 아이가 계속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고! 내 이야기였다. 지금껏 한 번도 컴플을 받아보지 않았던 내게 컴플레인이 생겼다.

어머님은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 엄마가 수영선생님 이겨! > 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직접 전화를 드려서 다음 수업시간에 아이랑 잘 이야기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심각한 컴플이라기 보다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 어른들의 장난이 들어갈 자리가 없으니 장난을 친 선생님이 직접 아이의 걱정을 풀어주길 바라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 관람석에서 만난 아이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아이는 엄마 뒤로 슬금슬금 숨었다. 시계가 너무 예뻐서 선생님이 장난을 쳤다고 선생님이 정말 엄마한테 진다며 사과를 하며 상황은 종료됐다.

그 것이 인연이 되어 그 친구에겐 만날 때마다 장난을 쳤다. 주로 내가 쳤던 장난은 난감한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00아! 엄마가 좋아요~~ 선생님이 좋아요? > 대답을 못하고 난감해 하는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만날 때마다 물어봤는데 다행이 이후에 컴플이 나오진 않았다. 나중에는 하도 질문을 하니깐

<아이 좀~ 그만 좀 물어보세요!! > 라고 말할 정도로 친해졌다. 그렇게 탈의실 친구로 지내던 아이는 7살이 되며 우리반으로 옮겼고 지금은 마스터레벨까지 취득하며 아직도 나에게 수영을 배우고 있다.

감사하게도 어머님은 수영수업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나를 믿고 맡겨주신다. 이제는 수영을 잘하니 아이스하키에 전념하자던 아버님을 어머님과 아이가 설득해서 꾸준히 수영을 다니고 있다.


아이들과의 대화중 순수한 대답으로 웃을 때가 많다. 대출금 납입일자가 다가와 짜증이 났다가도 출근해서

아이들과 엉켜서 수업을 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나도 잠깐은 순수해지는 듯한 황홀한 기분이 든다.

요즘엔 마술봉을 잃어버려서 미국에 재료를 주문해 놓은 상태라며 해리포터 컨셉으로 장난을 주고받는다.

아이들은 수영장에 올때마다 택배가 왔는지 요술봉은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보며 옷을 갈아 입는다.

몇 주 전부터 시작된 이 장난은 현재 100년 된 오동나무가지가 품절이라 기다리는 중으로 되어있다.

요술봉이 완성되면 개구리로 변신 할 아이도 대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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