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의 눈물
어린이 수영장의 주고객은 초등학생이다. 그래서 대부분 억양에 리듬이 들어가며 존댓말로 끝나는 말투로 수업을 한다. 예외도 있다. 어린이라고 하긴 제법 성인모양새가 나는 질풍노도의 5/6학년 친구들이다.
그 아이들을 지도 할때는 친구처럼 대하는 편이다. 종종 버릇없이 행동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스스로 컨트롤
하지 못하는 롤러 코스트같은 감정마저 부러워하며 못 본척 넘어간다.
남자친구들은 정말 편하다. 이성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진로에 대한 이야기도 하며 편한 대화로 수업한다. 그에 비해 여학생들은 많이 조심스럽다. 요즘 아동성폭력에 대한 문제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시각각
붉어지기 때문에 사과밭에서 갓끈을 묶지 않으려는 것이다. 농담을 할 때도 한번 더 생각하고 영법을 잡아 줄때도 차라리 못 가르치는게 낫지 너무 적극적으로 지도하다가 스킨쉽이 잦지는 것을 경계하고있다. 물론 여학생과도 진로에 대한 이야기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불편함은 없다.
고학년 친구들은 대부분 늦은 시간에 수업을 하는 편이다. 학원스케줄의 가장 마지막을 수영장에서 끝내는 것이다. 그 것을 알기 때문에 하루의 스케줄을 물어보고 컨디션에 맞춰서 운동량을 조절한다. 학원이 많아서 바빴던 날은 여유있게 수업을 하며 대화를 많이 한다. 부모님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나 고민거리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되도록 수영장에서 좋은 기억으로 하루를 마감 할 수 있도록 챙겨보려한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겨우 호흡을 할정도의 힘든 운동량을 소화시키고 샤워 후 귀가하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마스터반에서 함께 수영을 했던 5학년 남학생이었다.
평소처럼 워밍업을 하고 자유형 드릴 (교정운동법)을 시켰다. 정확한 자세가 나오지 않는 부분에서 잠시 일으켜 세워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설명을 하는데 대답도 없고 듣기 싫다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예의 없는 모든사람에게 너그럽지 못한 성격이지만 이런 아이들은 답이 없다. 잘못이 무엇인지 알아도 몸에서 솟구치는 호르몬이 엉켜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다. 내가 훈육 할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느낌이 좋지 않아서 눈을 보고 이야기 하려 수경을 드는 순간 고여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당혹스러웠다. 수영을 하며 아이들이 계속 돌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자리를 피해줘야 할것 같았다. 수경을 다시 씌워주고 시작지점에 가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우선은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해야 했다.
내가 지적한 것이 싫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알아야 적절한 대화가 될 것 같았다.
< 선생님은 너를 혼내려는게 아니라 설명을 했을 뿐인데 기분이 나빴어? > 말투를 이쁘게 다듬어서 의사를 전달했다. 아이는 참았던 눈물이 터진듯 어깨를 들썩였다. 시간이 필요한 듯 했다.
< 그럼 잠깐 쉬고 있어. 좀 있다가 다시 이야기 하자 > 라고 말하고 남은 아이들을 반대편으로 불러서 수업을 진행했다. 고학년 남자친구가 우는 모습을 다른 아이들이 볼 수 없도록 지켜주고 싶었다. 간단히 설명하고 운동량을 준 후에 다시 그 아이에게로 갔다.
< 진정이 좀 됐으면 왜 기분이 안 좋았는지 설명 해줄래? > 아이는 내가 오는 시간을 빠듯하게 맞춰 울음을 멈춘것 같았다. 아직도 들썩이는 어깨를 애써 눌러가며 입을 열었다.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말이 잠깐씩 끊겼다.
< 집에서... 숙제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숙제 안한다고.. 혼내고... > 라고 말하곤 터지는 호흡을 참지 못하고 말을 멈췄다. 그리곤 다시 참기 힘든듯 어깨를 들썩였다. 단번에 알았다. 수영장에 올때부터 엄마때문에 서러웠던 것이다. 나는 단단해지기 시작한 남학생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위로하듯 두드려주며 다음 이야기를
스스로 이어갈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곧 진정을 시킨 아이는 다시 말을 이었다.
<엄마도 그랬는데... 여기와서 선생님이 또 지적하고! > 터져나오는 호흡으로 마지막 억양은 화가난 듯 뱉어졌다. 아이는 슬퍼했지만 나는 웃음이 났다. 나도 그 시기에 경험했던 짜증나는 감정이었다. 아이가 엄마에게 받은 지적은 어른들도 기분 좋지 않을 일이다. 오늘 저녁설거지는 내가 할 계획으로 주방으로 향하는데 와이프가 세탁실에서 <오늘 설거지는 당신이 좀 해!> 라고 소리지르면 괜히 더 하기 싫어진다.
개그맨 허경환의 유행어로 재치있게 넘어가고 싶은 순간에 아이는 잔뜩 혼이나서 온 것이다.
< 숙제 할라고 하고 있~는~~데~~~~ 수학책 펼치고 있~는~데~~~~>
짜증나는 감정을 갖고도 수영장에 온 것을 칭찬하며 한 가지만 약속하자며 대화를 이었다.
< 그런일이 있었구나? 엄마한테 서운했겠네~ 쌤도 다른 뜻이 있었던 건 아닌거 알지? 오늘 수영은 네가 하고싶은 것만 해! 대신 약속하나 하자! 집에 갈때는 기분 좀 풀고 가도록 하는거야! 할수있겠니? >
선생님이 수영을 가르치긴 하지만 나의 학생이 안좋은 기분으로 집에 가는건 마음에 많이 걸린다며 약속을 받아내고 그날 수영수업을 마쳤던 적이 있다.
사춘기로 접어든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많이 발달 된 상태이기 때문에 동기부여만 잘 시켜주고 지도자과의 관계만 좋다면 여러모로 수월한 수업이 된다. 이해력도 있어서 수업에 집중하고 성인기록이 나올 만큼 영법적으로도 성장하는 단계가 된다. 조심할 것은 그들의 유리같은 감정이다. 본인들도 어쩔 줄 모르는 다양한 감정이 대중없이 그들을 괴롭힌다. 이때 지도자는 바른 방향으로 풀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주어야한다.
숨을 겨우 쉴 만큼의 강도 높은 운동량으로 그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도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소통하는 정도라면 충분히 바르게 해소 할 수 있다고 본다.
가끔은 웃음이 나오는 고민들로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의 여린 마음이 부러울 때가 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