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한량체질 10화

까만색 취향

취향 그리고 선택

by 알담

처음으로 용돈을 모아 가방 가게에 갔다. 지하철역에 줄지어 즐비해 있는 지하상가를 몇 번이나 빙빙 돌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가 사주는 가방이 아닌 내 돈을 내고 산 나만의 가방을 가질 생각에 들떴다. 수많은 가방을 찬찬히 둘러보고 들었다 놓으면서 구경했다.


그러다 한 가방이 눈에 띄었다. 새까만 검정색 인조 가죽 가방이었다. 고작해야 몇만원짜리 가방이었지만 나는 유독 처음에 집착하곤 했다. 품질이나 값의 상관관계를 내다보지 못했던 때라 그저 처음 사는 가방을 기념하며 오래 들고 다니기만을 바랐다. 군더더기없이 심플한 게 마음에 들어 고민 끝에 사기로 결심했는데, 사장님이 불쑥 다가오더니 말했다. "저 검정 가방 사시려고? 저건 학생이 들기에 너무 나이들어 보이는데. 저렇게 까만 건 나이 좀 있는 여사님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이에요. 차라리 여기 이 갈색 가방이 훨씬 또래같이 보이고 캐주얼하니 좋아요. 이거 사세요." 그는 옆에 놓인 밝은 갈색의 가방을 들이밀었다. 그 가방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영 탐탁지 않아 나는 검정색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사장님은 자꾸만 갈색 가방이 나와 잘 어울린다고 고집했고 아예 검정색 가방은 팔지 않을 기세였다. 나는 가방을 사는 건 처음인데다가 잘 아시는 분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해주면 그게 맞는 거겠지라고 합리화하며 결국 갈색 가방을 집어들었다. 분명 내 돈을 주고 산 내 가방이었는데 진짜 '내 가방'이 아닌 것 같았다. 어쩐지 흥이 깨진 나는 마음 한켠에 스물거리며 피어오르는 후회를 꾹꾹 누르며 한동안 그 가방을 들고 다녔다. 역시나 그 가방은 얼마 들고 다니지 못했다. 그냥 손이 가지 않았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색은 검정색이다. 옷장엔 검정색 옷이 가득하고 가방 역시 온통 검은색이다. 그때 내 눈에 띈 검정색 가방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사장님의 말을 못미더워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던 내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사장님의 말을 들었으면 안 됐다. 가방을 처음 샀든, 가방을 잘 모르든 그저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남의 말보다 내 마음에 먼저 귀기울여야 했다. 검정색은 사장님 말마따나 나이들어보이는 색이 아니었다. 아니, 나이가 들어보이면 또 어떠랴. 내가 좋아하면 그걸로 족하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때의 가방을 못 산 건 사장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쁜 생각이다. 남탓 하지 않으려면 내가 선택해야 한다. 오직 내가 결정한 선택이어야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수 있고 온전한 책임을 질 수 있으며 그렇게 자기를 만들어 간다고 믿는다. 나는 검정색을 좋아한다. 누군가 칙칙하다고, 나이들어 보인다고, 우울해 보인다고 해도 절대 바꾸지 않을 거다. 내가 검정색을 싫어하게 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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