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그리고 선택
언젠가부터 ‘제일’이라는 단어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제일’이라 함은 수많은 것들 중에서 단 하나를 뽑아내는 것인데, 나는 그것에게 ‘제일’이라는 칭호를 붙일 만큼의 확신이 있는가? 대답할 수 없었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쉽게 무언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좋아하지만 그것이 사랑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망설였다. 아무 곳에나 ‘사랑’을 붙이면 사랑의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았다. 소중한 내 사랑이 가벼워 보였다. 그렇게는 싫었다. ‘제일’도, ‘사랑’도. 아끼고 아꼈다. 정말 소중하고 확실한 것에다가 자랑스럽게 붙여주어야지, 라고 생각했다. 나의 애정은 신중해 보였고 나의 사랑을 수여하는 듯한 기분에 우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보같이, 아끼고 아껴둔 그 단어를 쓸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니, 없어졌다. 나는 매번 ‘제일’과 ‘사랑’ 앞에서 망설였고 결국은 미뤄두었다. 아직은 아냐, 이정도는 부족해 라는 변명으로 단어를 거부했다. 그러자 막상 단어를 쓰고 싶은 상황이 생겨도 습관적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검열하려 들었다. 껍데기같은 검열을 거쳐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문장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순간을 부정했다. 특별한 순간에 사용하려고 했던 그 단어들은 어느새 모습을 감추고, 그렇게 나의 자잘하고도 소중한 감정의 시간들은 흘렀다. 어떤 제일의 사랑을 기대하고 기다리던 나는 일상과 순간의 사랑을 지나쳐 버렸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수많은 사랑이 흐른 뒤였다. 고작 그게 뭐라고 나는 주저했으며 알량한 다짐에 치우쳐 용기내지 못했는가. 나중에 ‘제일’이 아니면 어떻고 알고 보니 ‘사랑’이 아니면 어떠랴. 지금의 나는 이게 제일이고 이것이 사랑이라고 느끼는데. 말하기 전에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그렇게 느끼는데. 지금의 감정에 충실한 것은 절대로 가볍지 않다는 걸 늦게 알았다. 나는 이제라도 알아챈 것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앞으로의 수많은 ‘제일’과 ‘사랑’에게 제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