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담파스타

굳이 푸타네스카 파스타

by 알담

효율성이 무엇보다도 주목받는 시대입니다. 비효율은 곧 열등을 뜻하고, 시간이 가치 자산인 세상에서 효율이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미덕으로 손꼽히곤 하죠. 우리는 언제나 최단 거리를 검색하고, 이미 인증이 완료된 식당만 찾으며, 업무에 AI 툴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시간에 다른 할 일이 수도 없이 빽빽하니까요.


‘굳이’가 효율을 이기는, 제가 아는 유일한 세계는 요리입니다. 식품공학이 얼마나 단기간에 발전했는지 우리 모두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데우기만 하면 식당에서 먹는 그 맛 그대로, 뚜껑만 열면 현지에서 맛본 그 소스가, 칼 한 번 쓰지 않고도 근사한 요리가, 뚝딱 내 식탁에 차려지곤 합니다. 시간을 아껴 주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꿩 먹고 알 먹는 시대지요. 가끔은 포만감 알약으로 인간이 식사를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추측해 보기도 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굳이, 정말 ‘굳이’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 신선하고 귀한 재료를 찾아 정성스럽게 씻고 다듬은 다음, 온 신경을 집중해 요리를 완성합니다. 뻔한 말이지만 그런 요리에는 닿을 수 없는 한 끗이 담겨 있습니다. 미묘하고 세세해서 어찌 보면 지나칠 만큼 옅은 차이인데, 한입 베어보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입안 가득 선사하며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굳이’에는 또한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성질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마음이 담길 때 특히요. 그리고 다시 한번, 요리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푸타네스카 파스타를 만들면서 ‘굳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푸타네스카는 앤초비와 올리브, 케이퍼를 넣은 토마토 파스타의 한 종류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찬장에 언제나 있는 재료로 만드는 푸근하고 편안한 가정식 요리인데요, 문제는 제가 푸타네스카를 만드는 이곳은 한국이라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앤초비나 케이퍼는 어떤 목적성이 있어야만 사는 재료에 가깝습니다. 고추장이나 멸치액젓처럼 항상 냉장고에 구비하는 필수 식재료와는 거리가 멀죠. 이 지점부터 오로지 푸타네스카를 먹기 위해서 앤초비와 케이퍼를 ‘굳이’ 구매해야 하는 난관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앤초비나 케이퍼는 부피감도 크지 않아서, 막상 파스타에 넣었을 때 버섯이나 새우처럼 눈에 띄는 재료도 아닙니다. 가격은 뭐 말할 것도 없지요. 한국에서 앤초비 한 통은 기성 파스타 소스로 몇 번을 해 먹을 수 있는 가격입니다.


그렇게 푸타네스카 파스타를 ‘굳이’ 요리해 먹어 보면, ‘굳이’의 맛을 비로소 어렴풋이 짐작하게 됩니다. 토마토소스 속에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앤초비의 짭짜름한 감칠맛과 케이퍼의 톡톡 터지는 산미, 푸르스름한 풋풋함이 어우러지며 자아내는 담백함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거든요.


한 그릇 뚝딱 비워놓고 보니 푸타네스카 파스타의 맛이 ‘굳이’의 미학을 가장 직설적으로 설명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먹어 본 사람만 알아채는 '굳이'의 가치. 오로지 파스타를 맛볼 사람만을 위한 수고스러움은 어쩌면 비효율적일지 몰라도, 그래서 반대로 요즘 같은 세상에 더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대접하고 싶을 때, 푸타네스카 파스타를 만들어 보세요. 나 한 사람을 위한 식탁이어도 좋아요. 중요한 건 굳이 앤초비와 케이퍼와 올리브와 토마토 홀을 구비하는 것. 그리고 굳이 앤초비를 잘게 뭉개고 올리브를 반으로 가르는 것. 토마토를 넣고 15분 정도 맛이 배어들게 약불에 굳이 끓여주는 것. 그런 자잘한 굳이와 굳이가 만나 식사 시간을 좀 더 귀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해당 내용은 담파스타 레터의 일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dampasta.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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