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깜짝할 사이 불쑥 찾아옵니다. 4월의 첫 금요일, 전 대통령의 파면 소식이 있었지요. 매년 걷잡을 수 없이 추워지고 더워지는 한 해 한 해 속, 지난 겨울 역시 살이 에일 정도로 시렸습니다. 그래서 더 봄소식이 반갑더라구요.
삶을 살아가며 정치가 얼마나 일상과 연결되어 있는지 점점 깨닫게 됩니다. 지난 12월 주말 내내 시위에 나가며 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를 헛먹는 건 아닌 건지 내 삶에 엮이거나, 스치거나, 혹은 전혀 마주칠 일 없는 다른 삶의 형태도 살아갈수록 어렴풋이 떠올려보곤 합니다.
흔히 사람을 일컬어 우주라고 합니다. 셀 수 없는 각자의 고유성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우주와 같다는 의미인데요. 저는 특히나 ‘모두가 보이지 않는 각자의 싸움을 해내고 있기 때문에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염두에 두려고 합니다. 그 모든 각각의 우주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사실은 가끔 아득하기도,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 그 눈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보도록 할까요. 평행우주라고 하죠. 어떤 우주에 병행해 존재하는 또 다른 우주를 의미하며,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닌 평행선상에 위치한 다른 세계라고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평행우주와 나란히 있는 걸까요? 그 평행우주들은 영원히 마주칠 일 없을 것 같지만, 공교롭게도 우리의 모든 선택과 맞물려 있기도 합니다. 두 가지 선택지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이번 평행우주에 발을 디디는 셈이에요.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나의 우주가 바뀌어 버리고, 시간을 돌릴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의 많은 선택도 양자택일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얼마 전 한창 벚꽃이 만개했을 때, 팔랑거리며 느릿느릿 떨어지는 벚꽃잎에 햇빛이 잔잔하게 비추는 풍경을 보면서 어쩐지 마음을 가누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때 이곳에서 벚꽃을 보지 않는 다른 우주의 내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매몰된 일상에 치우쳐 가끔 반항심이 일 때면 곧잘 지금의 나를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곤 합니다.
최근 헬스장에 다시 다니면서 한동안 신지 않았던 크로스핏화를 꺼내 오랜만에 신었는데요. 간만에 신은 운동화라 혹시 신발 끈이 풀린 건 아닌지 확인해 보려는데 신발 끈 끄트머리가 매듭 안쪽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거예요. 마치 과거의 내가 신발 끈을 확인하는 지금의 나에게 건네는 말처럼요.
그렇게 한 발짝씩 내디뎌서 내 우주를 엮어 가는 겁니다. 자의이건, 타의이건 과거의 수많은 선택이 쌓이고 굳어져 지금 나만의 우주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대견하기도, 놀랍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돌아와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순간마저도 각개의 우주인 우리의 선택이 모여 단단한 힘이 된 거라고 믿어요. 그렇다면 축하를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제 파면 정식은 평소 자주 해 먹는 대파 파스타로 정했습니다. 특별함을 담아서 이번에는 파를 좀 더 수북하게 썰었어요.
봄은 언제나처럼 금방 지나갈 테고 금세 또 기록을 경신할 무더위와 강추위가 번갈아 찾아오겠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선택에 선택을 거듭하고 그 선택에 각자의 감상을 덧칠하면서 시간을 쌓아가겠죠. 오늘 그 선택 중 하나를 대파 파스타로 골라보면 어떨까요?
[해당 내용은 담파스타 레터의 일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