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은 저를 설명하는 여러 문장 중 하나입니다. 김칫국 마시기는 특기, 앞서 나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는 취미인 사람이거든요. 어느 정도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면 질릴 법도 한데 도무지 그럴 기미가 없습니다. 이쯤 살아보니 원래 성질이 그런 것 같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100명의 지인보다 1명의 소울메이트가 더 값지다고 믿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 큰 이견은 없지만, 그땐 타인에게 나를 투영하는 위험한 습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친한 관계라고 해도 타인은 내가 될 수 없는 건데, 오롯이 나의 전부를 위탁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니 관계가 실망스러운 결과로 마무리되는 건 당연하겠죠. 학창 시절에는 절교라는 깔끔한 결말을 몇 번 당해보기도, 반대로 질러보기도 했습니다. 친구가 세상의 전부이던 때라 다시 보지 않는 관계로의 종결은 정말 다치기라도 한 듯 쓰라렸습니다. 절대 아물지 않는 상처였어요.
사회 경험이 묻었다 뿐이지 지금도 크게 달라진 바는 없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속으로 적당히 삭히는 법도 배우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가끔 드는 서운한 마음은 가눌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최근에 친한 친구들에게 각자 몇 번씩 어라?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분명히 전에는 안 그랬을 텐데 문득 이 친구가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을 보일 때, 마음속 레이더는 기막히게 알아채곤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먼저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은연중에 상처를 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말을 너무 편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그 단계의 저울추가 나에게 완연하게 기울어지지 않았다는 판단이 서면 기다렸단 듯 실망감이 들이닥칩니다.
어렸을 때는 그럴 때 다짜고짜 상대의 면전에다가 사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관계가 돌이킬 수 없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이유를 몰라 답답한 마음에 도리어 불씨를 키운 셈이었죠. 지금은 그럴 용기도, 여유도 없어서 조용히 거리를 둡니다. 가끔은 이렇게 내 관계의 폭이 점점 줄어드는 걸까? 겁이 날 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특히나 가까운 사이일수록, 허무하게도 별일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저 각자의 현실에 떠밀려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그 사이에 나와의 관계가 도드라졌을 뿐이었죠. 몇 번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나니 세상은 사람 관계만큼 환경의 불가항력도 치명적일 수 있구나, 절감했습니다.
어렸을 때 동화책에서 본 통통한 가지의 윤기 나는 보랏빛이 더없이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뽀득뽀득한 표면과 누르면 쿡 들어갈 것 같은 곡선의 모양이 귀여워 몇 번 스케치북에 캐릭터처럼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급식에서 먹은 칙칙하고 물컹한 가지나물을 먹기 전까지 가지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 축축한 색과 식감이 아직도 생각나는데요. 급식을 먹고 뱉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이었어요. (이제 와 급식 조리사분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만)
대학교 때 어향가지를 처음 먹어보기 전까지 가지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채소였습니다. 그 세월이 무색하게 어향가지는 배신감이 들 정도로 맛있더라고요. 그 이후로 장 볼 때마다 양파, 감자, 버섯에 이어 가지 또한 꼭 사두는 식재료가 되었습니다. 특히나 올리브오일을 잔뜩 머금은 구운 가지를 베어 물었을 때의 따뜻한 채즙은 분명 다음을 기약하는 맛이었어요.
친구와 가지를 비교하자니 멋쩍은 마음도 듭니다만, 최근 데면데면했던 친구와 서로 아무렇지 않게 다시 대화하면서 어쩐지 가지가 생각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가지는 그대로였고, 내가 어떤 상황에서 겪었냐에 따라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는걸요. 물론 여전히 급식 가지 볶음을 좋아할 마음은 없지만, 적어도 구운 가지를 떠올리면서 급식 스타일 가지볶음도 가지 요리 중 하나겠거니 넘길 수 있는 아량은 챙겨야겠습니다.
[해당 내용은 담파스타 레터의 일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