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담파스타

청개구리는 크로스핏을 끝내고 크림파스타를 먹는다

by 알담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은 제가 크로스핏을 하기 시작할 때 믿게 되었습니다. 운동은커녕 대부분을 집에서 누워만 지내다 보니 문득 체력이 달린다고 은연중에 느끼기 시작하던 차, 삼십 살이 지나기 전에 운동 습관을 다져 놓아야 한다는 말을 스쳐 듣고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나름 노력해 본다고 홈트레이닝을 몇 주간 했었는데요, (그 와중에도 집 밖을 나가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 느껴지지요?) 막상 기대한 건강검진 결과에서 근력이 하나도 늘지 않아서 반발심에 다짜고짜 빡센(?) 운동을 해야겠다고 홧김에 다짐해 버렸습니다. 우연히 그때 친구가 크로스핏에 한창 빠져 있었는데요. 양 손바닥과 무릎에 온갖 상처가 생겨도 양 엄지를 치켜세우며 크로스핏을 추천하는 친구를 보며 ‘저런 건 다시 태어나도 관심이 생길 수가 없다.’라고 굳게 믿었었는데, 청개구리 마음은 정상 수치 미달의 골격근량 앞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습니다.


동네 크로스핏 박스에 처음 갔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동시에 들렸던 억세게 힘을 주는 소리에 뒤섞인 고함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세에 눌리지 않고 오히려 더 크게 뻗어대던 세상 에너지 넘치는 노래들까지요. 이십 대 초반 클럽에서 놀던 이후에 그렇게 큰 음량의 음악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닫힘 버튼을 누를까 순간 고민했었죠. 그렇지만 삼십 살은 코앞이고, 이대로 골골대며 피곤함에 절어 살기도 싫고, 어차피 첫 번째 수업은 무료 체험이라고 했으니까. 눈 딱 감고 한 번만, 아니 한 시간만 참아보자 싶었습니다.


와드 한 바퀴 돌았다가 토를 했다느니, 정강이에 박스가 찍혀 패였다느니, 풀업을 하다가 머리를 잘못 부딪혀 잠시 기절했다느니 (전부 제 지인들이 직접 겪은 경험담이라는 사실이 저를 식겁하게 했습니다) 도시 괴담에 가까운 흉흉한 후기들을 딛고 직접 체험해 본 첫 감상은, ‘할 만 한데?’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팔락팔락거리는 저를 단숨에 알아보고 딱 맞게 지도해주신 코치님 덕분이었죠.


그렇게 대략 2년간 크로스핏을 했습니다. 중간에 일이 생기면 잠깐 쉬기도 했지만, 운동화도 한두 개를 돌려 신던 제가 무려 장비까지 마련해 가며 크로스핏을 2년이나 꾸준히 했던 사실은 아직도 금메달리스트 선수들의 자부심 못지않게 저를 치켜세워주곤 합니다. ‘저 크로스핏 해요.’ 이 말 한마디에 마치 마술쇼 보는 듯 놀라던 모습들이 은근히 재미있기도 했고요.


그래서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요? 운동은 너무 힘든데, ‘삐’ 하고 운동이 끝나던 때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는 상태에서 오는 희열이 있다고나 할까요. 하루치의 웬만한 스트레스는 스르르 녹아버리고, 심지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운동이 너무 힘들어서, 운동 중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매번 의도치 않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던 저에게는 겪어보지 못했던 해방감을 주었습니다. 저한테는 그야말로 명상이나 다름없었어요. 너무 재밌어서 박스가 쉬는 하루를 제외하곤 6일을 출석한 적도 있었습니다.


드디어 인생 운동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허리디스크가 도지면서 크로스핏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척추 측만증에 크로스핏은 특히나 쥐약인데, 중증 측만증이었던 저는 2년간 꼬박꼬박 기꺼이 제 척추를 짓밟고 있었던 거죠. 사실상 저에게 크로스핏은 신체 운동이 아니라 정신 운동에 가까웠던 거예요.


그래도 삼십 살 되기 전에 운동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속설은 어쨌거나 유효했습니다. 잠시였지만 운동량에 비례해 늘어나는 체력과 근력을 맛보고 나니 제 인생에 운동의 존재감이 커질 수 밖에 없더라고요. 그간 필라테스로 허리를 달래면서 걷기와 수영을 병행하다가, 드디어 오늘 정말 오랜만에 헬스장을 등록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가벼운 근력 운동을 시작했답니다.


그렇지만 식단은 아직까지도 도저히 친해지지 못하겠어요. 건강하게 먹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당기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건 필요 이상으로 괴로우니까요. 대신 저를 운동의 세계로 이끌었던 청개구리 심보를 충실히 따르곤 합니다.


그러니까 운동 직후 허덕일 정도로 배고플 때, 꾸덕꾸덕하고 혀를 꽉꽉 눌러 주는 크림 파스타를 먹는 거예요. 그때 먹는 크림소스는 어쩐지 바닥이 깊은 그릇을 맛보는 느낌이에요. 보울에 가득 담긴 풍성한 크림의 풍미를 혀로 옮겨 담는 것 같달까요.


배고프니까, 조리 방법이 어렵거나 오래 걸리면 안 돼요. 그럴 바엔 라면 끓여 먹고 말지! 상황이 되어버리니까요.


운동한 나에게 보상으로, 혹은 일탈로 크림을 콸콸콸 부어 만든 파스타를 만들어 보세요. 어차피 느끼해서 매일은 못 먹어요. 가끔 이런 쓸데없어 보이는 정반대의 일들이 작은 만족감을 주기도 하거든요. 어차피 운동했으니 뭐, 아무렴 어때요!






[해당 내용은 담파스타 레터의 일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dampasta.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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