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담파스타

행운을 가져다주는 4와 얼갈이배추

by 알담


얼마 전 4번째 모닝저널을 새롭게 펼쳤습니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요. 기본적으로는 새벽에 일어나서 졸음이 가시기 전에 쓰고 있습니다. 20대 내내 스스로가 올빼미족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밤이 새도록 온갖 공상에서 헤매다가 아침 해를 보는 낭만에 빠진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만, 30대가 되니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일출 직전 어스름한 고요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졌습니다.


모닝저널을 뒤적이다 보니 2번째 모닝저널을 거의 일 년 반을 썼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3번째 모닝저널도 일 년 반 정도를 쓴 거예요. 그리고 3번째 모닝저널의 첫 페이지에 쓴, 마지막 페이지를 닫고 4번째 모닝저널을 펼칠 저에게 보낸 말이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또한 저를 흥분하게 했습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우연성을 자각할 때면 운명이란 게 있긴 있나 싶기도 합니다. 그게 고작 노트를 사용한 기간이라고 하더라도요.


운명까지 들먹이는 게 어쩐지 과장되어 보이긴 하죠? 그런데, 사실은 어쩌면 모든 게 마음가짐이라는 말이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좀 더 친숙하게 접근하자면, 합리화와 정신승리가 인생을 만족스럽게 만들어준다는 말이죠.


본인의 선택에 믿음이 없을수록 합리화를 잘한다고 하는데요. 내가 고른 그 결정이, 혹시나 선택하지 않은 것보다 좋지 않을까 봐 오히려 그 다른 선택지가 나쁘고 좋지 않은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합리화는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억지로 깎아내리며 합리화하기와 내가 고른 것이 최고였다고 자신하는 합리화. 그리고 저는 후자의 합리화가 취미이자 특기인 사람입니다.


의도하지 않게 4라는 숫자와 엮이는 일이 잦았습니다. 매장 대기 순서는 4번째, 제비뽑기는 대부분 4, 아껴먹던 냉동만두를 뒤적여 보니 남은 게 고작 4개. 의식할 때마다 눈앞에 4가 있었습니다. 옛날 건물 엘리베이터에는 4 대신 F가 적혀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불행을 뜻하는 숫자였는데요. 뭐든지 의미 두기 좋아하는 제가, 문득 4를 마주할 때 얼마나 찝찝했겠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 결국은, 나에게 행운을 주는 숫자는 4라고 스스로에게 되뇌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5지만, 행운을 가져다주는 숫자는 4라고 말이죠. 왜, 네잎클로버도 잎이 4장이잖아요. 그러니까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언젠가부터 4와 마주쳐도 꺼림칙하지 않고 뭔가 반가운 마음까지 드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제 작업명인 알담(R.DAM)도 4글자였더라고요. 이 정도면 왜 제 특기가 합리화인지 아시겠죠?


그러니까 이 4번째 모닝저널이 어떤 행운을 가져다줄지 기대해 보기로 했습니다. 생각하고 계획하고 꿈꾸고 있는 내용을 가득가득 적어서, 가장 좋아하는 5번째 모닝저널을 펼칠 예정이에요.


파스타로는 언제 합리화할까요? 파스타와 합리화가 무슨 상관이냐고요? 사실 파스타에 국한된 경우는 아닙니다만, 분명 새콤한 클래식 토마토 파스타가 먹고 싶었는데 냉장고에 얼갈이배추밖에 없을 때죠. 나가서 장 보기는 너무 귀찮고, 이제 와서 배달시키기에는 돈이 아깝고. 그렇지만 토마토 파스타는 먹고 싶고, 배는 점점 고프고... 그럴 때 합리화는 아주 유용합니다. 더 맛있는 파스타를 떠올리고 그걸 만들면 되니까요.


얼갈이배추는 된장국 끓일 때 쓰려고 사둔 거지만 어쩔 수 없이 파스타에 넣어봅니다. 찹찹 썰어 올리브오일에 고루 잘 볶아 익히고, 다진 마늘을 넣어 향을 더해주고, 소금 간을 충분히 하고, 짭짤한 면수를 조금씩 넣어 농도를 잡아주면 토마토 파스타를 못 먹어서 아쉬운 마음도 적당히 달래지곤 합니다. 안 달래지면 뭐 어떡해요. 이게 오늘의 최고의 파스타인걸요!





[해당 내용은 담파스타 레터의 일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dampasta.stibee.com/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