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담파스타

계속 먹어보는 고르곤졸라 크림 파스타

by 알담


고르곤졸라를 선물 받았는데, 고백하자면 블루치즈는 별로 취향이 아닌 편입니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딱히 손이 가는 치즈는 아니라고나 할까요. 그렇지만 알량한 ‘치즈를 좋아하는 사람’의 자아가 쓸데없이 용납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저에겐 꽤 큼직한 고르곤졸라 한 조각을 받아들고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와인과 곁들이기엔 집에 가지고 있는 스위트와인이 없는 이슈로, 배보다 배꼽이 커질 것 같아 요리에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풀바디 레드와인과도 페어링이 괜찮다고 해서 곁들여 먹어봤는데, 블루치즈 취향이 아닌 사람에게는 역시나 큰 감흥이 없더라고요.


고르곤졸라 레시피를 검색하다 보니 고르곤졸라 버터를 곁들여 땅콩호박을 구워 먹는 따뜻한 요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마침 집에 땅콩호박이 있어 어떻게 먹을지 생각하던 참이었거든요. 상온에 두어 부드러워진 버터에 동량의 고르곤졸라를 잘 섞은 다음, 달군 팬에 고르곤졸라 버터를 넣고 땅콩호박을 앞뒤로 잘 구워주기만 하면 되는 쉬운 요리였어요. 너무 무겁지 않은 레드와인과 살짝 구운 견과류가 잘 어울리는 가을의 맛이랄까요. 고르곤졸라의 맛도 버터에 녹아들어 적당히 가려져서 부담스럽지 않았고요.


115367_3005985_1758210865812259745.jpg 고르곤졸라 버터로 구운 땅콩호박

그렇지만 아직도 치즈가 꽤나 남아버려서, 결국 처음 생각했던 클래식한 레시피인 고르곤졸라 크림 파스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역시나 익숙하게 콤콤한, 느끼할 법한 크림의 끝맛을 고르곤졸라가 톡 쏘며 잡아주는 맛있는 맛이었어요.


원래 저는 고수도 잘 안 먹는 사람이었는데요, 분명 세숫비누 같은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먹다 보니 그 특유의 향미가 맛있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더라구요. 그런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면 지금은 어려운 것도 수월해지는 순간이 온다는 막연한 믿음에 위로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일단 어떻게든 붙들고 있다 보면 거기서 불현듯 깨치는 순간이 있습니다. 잘 안 써지는 원고도 잠깐 바람 한 번 쐬어 주고, 끝까지 키보드 앞을 지키다 보면 갑자기 문장이 튀어나옵니다. 그림이 별로여도 일단 끝내자는 마음으로 계속 손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번뜩이며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고요. 그 작업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다음엔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 거스러미라도 동동 떠오르거든요. 작업은 엉덩이 싸움이라는 말에 격하게 동감하는 바입니다. 물론 나를 너무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요.


퇴사를 했습니다.


언제나 사이드 프로젝트였던 일을 본업으로 끌어내기 위한 마지막 용기라고 생각했어요. 간헐적으로 작업을 한 지는 10년째이고,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한 마음을 먹기까지는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실 제가 최종적으로 꿈꾸는 건 작가와 다른 개념의 결합이긴 하지만요.


계속할 수 있을까?


이 고민에 답을 내리기까지 어쩌면 10년의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작업명을 몸에 새기고, 전시를 하고, 작업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말을 걸 때마다 그 대답을 쌓아온 게 아니었을까 추측합니다. 작업을 할 때마다 계속하고 싶고, 다음은 뭘 할지 생각이 와르르 쏟아지고, 짧은 시간 안에 금방 몰입할 수 있고, 제일 나다워지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더 나답게 하고 싶어서요.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잘 될 수도, 그 반대로 안 될 수도 있는 거겠죠. 그러니까 그 10년간, 나름의 이런저런 실험과 상상을 계속하면서 결국 ‘안 돼도 괜찮다’라는 나름의 위로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또는 타인이 판단하는 ‘잘 된다’보다 스스로의 만족을 정면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일 수도 있고요.


조금 입에 맞지 않는 상황이 되더라도 일단은 계속 요리해 보려고 합니다. 버터에도 섞어보고, 호박과도 볶아 보고, 파스타에도 곁들여 보면서요. 그러다 보면 고르곤졸라도 맛있어지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해당 내용은 담파스타 레터의 일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dampasta.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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