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그리고 선택
손톱을 깎을 때 항상 바투 깎는다. 조금이라도 길이가 올라오면 거슬린다. 예쁘게 매니큐어를 바른 모습이 좋아 보이지만 네일아트니 뭐니 하는 단어는 내 인생에 영영 없는 것만 같다. 중학생 때는 어떻게든 손톱을 기르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엄마의 매니큐어에도 꽤나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손톱을 포함한 모든 외적인 모양새에 기준이 생겼다. 주기적으로 손톱 길이를 검사하는 시간도 있었다. 어떤 친구는 항상 손톱깎이를 가지고 다니며 검사시간 전에 미처 깎지 못한 친구들을 챙겨주기도 했다. 우리는 나름의 중요한 명분을 가지고 손톱을 검사받았다. 중간은 없었다. 무조건 빈틈없이 짧은 손톱이어야만 했다. 그렇게 3년을 내리 짧았던 내 손톱은 그 이전의 길었던 모습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도저히 불편해서 생활할 수가 없었다.
종종 손톱이 그게 뭐냐며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내게 손톱은 그저 일상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신경이 전혀 쓰이지 않도록 있는듯 없는듯, 아프지만 않으면 되는 존재다. 만사가 걱정거리인 나에게도 신경쓰지 않을 존재는 필요하니까.
그런가 하면 나는 일할 때나 글을 쓸 때 대부분 연필을 사용한다. 연필깎기를 들고 다니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연필을 쓴다. 거슬러보면 첫 직장에서부터였다. 특별히 주문제작한 회사 연필은 사무실 어느 구석에나 굴러다녔다. 연필은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대변하는 물건이었다. 처음에는 당장 펜이 없어서 쓰기 시작한 연필이 곧 모양이 마음에 들어서, 종이에 써지는 필기감이 좋아서, 그 사각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쓰게 되었다. 그림 그릴 때나 쓰던 연필은 내가 좋아하는 사무용품 1순위가 되었다. 나름의 취향도 생겼다. HB가 아닐 것. 너무 뾰족한 것보다 살짝 뭉특한 상태를 유지할 것.
펜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잉크가 나오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물론 잉크의 양을 확인할 수 있는 펜이 있긴 하지만 매번 체크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렇지만 연필은 매번 내가 얼만큼 사용했는지 바로 눈에 보인다. 연필심이 닳으면 당장 사용할 수 없으니 항상 확인해야 했고, 내가 사용한 만큼 정직하게 짧아지는 그 단순함이 좋았다. 보통 펜은 하나를 들고 다니니 정작 필요할 때 구태여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이건 내가 덜렁거리는 탓이 크다- 연필은 굴러다니는 그 수많은 것들 중에서 심이 길게 남은 것 하나를 빼서 쓰면 그만이었다. 그 평범함이 좋았다. 최근에는 예쁜 연필을 모으는 수집욕도 생겨버렸다.
처음을 어떻게 시작하든, 돌이켜보면 이렇게 필연적으로 취향이 만들어지나 싶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지만 스스로도 지금이 좋으니까 이만큼 가지고 온 거다. 그래서 사소한 취향일수록 사람을 말해주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