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찬가
언제나 손바닥 뒤집듯 계절이 바뀐다.
오늘 하루종일 춥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고 옷장 정리를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작년 유럽에서 사온 큰 품의 빈티지 셔츠들과 모자, 니트, 목폴라를 잔뜩 꺼내두었다. 전부 좋아하는 옷가지들. 계절을 정리하는 오늘에 맞춘 것처럼, 맡겨두었던 필름사진이 예상보다 이틀 빠르게 도착했다. 이제 막 지나간 나의 늦여름과 가을.
계절이 언제 바뀌는 지 가늠하기가 어려워질 때, 그냥 피부에 와닿는 바람이 가장 정확할 때가 있다. 달을 손꼽아 보지 않고도 문을 열었을 때나 눈을 떴을 때 피부로 끼쳐오는 계절의 기운. 후덥지근한 여름의 바람이 미묘하게 차가워지고 그 차가운 기분이 반가울 때. 서리가 녹을 때처럼 서서히 하늘이 깨끗해질 때. 문득 발이 차갑다고 느낄 때. 밤바람이 청량할 때. 어쩐지 마음이 아쉬워지고 헛헛할 때.
보드라운 이불을 끌어올려 인중 아래 입술까지 덮었다. 입술로 포근한 감촉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훈훈하게 데워진 이불 안 공기를 느끼며 글자에 조금 더 가까이 닿고 싶은 마음에 책을 눈앞까지 끌어놓았다. 이불 밖으로 팔을 빼내어 굽힌 다음 책의 양 쪽을 잡아서 펼쳤다. 숨을 내쉴 때마다 이불에 닿았다. 읽고 있는 문장은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담담한 글이었다. 그래서 더 지금이 좋았다. 몸은 따뜻하게, 머리는 조금 차갑게 식어가는 어느 책읽는 하루에 가을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