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그리고 선택
친하냐고 물으면 친하다고 답하지만 살갑냐고 물으면 잠시 대답할 시간을 들이는 관계가 있다. 그렇지만 들뜨고 살가운 것보다 퍽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믿음이나 편한 침묵이 우리 사이에는 있었다. 언니는 잘 웃지만 냉소적이고, 날카롭지만 배려깊었다. 속이 깊지만 침묵하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언니를 만났다.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라 사실 그녀와 나 사이에 ‘오랜만에 만나는 사이에서의 인위적인 자연스러움 속 어색함’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만나지 않은 오랜 시간동안 켜켜이 쌓인 소식을 서로에게 건네야만 했다. 수많은 나라를 누빈 언니는 언제나 내게 자유로운 한량이었지만 어쨌든 그녀도 사회생활과 경제활동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언니는 여전히 틈나는 대로 여행을 다녔지만 따분한 회사 생활에 지친 듯 했다. 나는 언니를 보고 나의 친구가 떠올랐다.
“언니, 제 친구는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데요, 거긴 야근도 없고 업무도 크게 힘들지 않아서 적성에 맞지는 않지만 퇴근 후에 자기 생활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공연이나 음악을 좋아하는데 일하는 시간 외에 여가시간에서 자기 인생을 찾는다고 그랬어요.”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십사 시간 중 여덟 시간을 재미없게 보내니까 나머지도 어느 순간 재미없어지더라.”
언니의 말에 나의 알량한 위로는 금세 초라해졌지만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언니의 말이 나의 인생관이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세 시간도 버틸 수 없는 나는, ‘어른이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할 때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마음깊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는, 돈에 허덕이면서도 당장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차마 손놓을 수 없었던 나는, 주제넘게도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위로랍시고 건네고 있었다. 사실이었다. 나는 이미 쪼들리는 나의 지갑상황을 터놓았었다. 언니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언니는 얼마 전에 차를 장만했다고 했다. 나는 축하해 주었다. 언니도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리의 상황은 각자의 선택에 따른 결과였단 걸. 우리는 서로의 어떤 장점을 부러워할 순 있지만 시간을 돌린대도 절대로 선택을 번복하지 않을 거란 걸. 다른 삶으로 내 삶을 비교하면서 내가 낫다는 어줍잖은 자기 위로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저 이런 삶도, 저런 삶도 있으며 내 삶은 내 선택의 결과라는 것. 그러니 그 결과의 이유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현실을 바라보자는 것.
"어쨌든 각자 더 가치를 두는 것을 선택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잖아.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언니는 언제나 맞는 말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