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탐구서
행복을 탐구한 지 이제 2달이 좀 넘었다.
행복을 탐구하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이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지난 2달간 행복과 관련한 몇 권의 책과 논문을 읽고, 나름 성찰의 시간도 가졌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평생 기획하고 발표하고 프로젝트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다 보니 이 행복도 그런 범주 안에서 전략화하고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만들어서 변화관리 하는 일련의 방식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 이 생각이 맞는지 틀린 지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행복 탐구 활동에 대해서 조금 벽에 부딪힌 느낌이다. 사실상 이론은 신선하고 흥미로운 면은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복잡하고, 실제는 너무나 변화무쌍해서 이를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즉, 행복을 원해서 탐구하려 했더니 오히려 불행해지고 마는 그런 역설적인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심리학적 통계를 무기로 실제로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이론이 현실에서는 무용(無用)에 가까운 경우도 있어 학문적인 이해와 경험적인 인정의 어느 지점에서 절충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단적인 사례가 물질적, 경제적 풍요와 행복의 상관관계인데, 물질적 풍요가 어떤 상태를 가정한다면 주식이나 코인의 경우는 그 상태가 분초 단위로 바뀌기 때문에 일상적인 행복감과 상관관계가 없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 생각한다.
행복 심리학을 다루는 많은 서적에서 물질적 풍요는 실제 행복감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목표하는 물질적 풍요 수준에 이르렀을 때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은 일시적인 쾌감과 같고 영구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다.
그러나, 주식과 코인은 어떠한가?
투자금의 규모와 비중 그리고, 분초의 등락폭에 따라 쾌락, 기쁨, 즐거움의 최대 한계치부터 고통, 슬픔, 후회심의 최대 한계치까지 거의 수시로 바뀐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면 그건 행복과 관계없는, 뇌생물학 관점에서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작용에 따른 심리 상태일 뿐이라 전문가들은 얘기하겠지만 이 또한 행복과 무관하다고 해서는 안 될 얘기다.
또한,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여러 사회통계학적 연구를 통해 물질적인 수준은 행복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하였으나 이 물질적인 수준으로 인한 사회적 지위는 행복에 영향을 준다고 하였다. 따라서, 연역적 관점에서는 물질적, 경제적 상황은 행복과 무관하다고 절대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관점은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의 차이가 있어 설명하고자 한다.
대니얼 네틀(Daniel Nettle)은 <행복의 심리학, 2005>에서 행복의 3가지 의미를 정리했는데, 흥미롭게도 이를 1단계 행복, 2단계 행복, 3단계 행복으로 단계별로 정리를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언급하는 단계는 영어로 Process, Step, Procedure, Progress와 같은 점진성을 의미한 것은 아니고 Stage, Status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대니얼 네틀이 정의한 행복의 3가지 의미는 아래와 같다.
1단계 행복: 순간적인 느낌들 (예: 기쁨, 즐거움)
2단계 행복: 느낌들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 (예: 웰빙, 만족)
3단계 행복: 삶의 질 (예: 존재의 번영, 자아실현)
앞서 예시로든 주식과 코인을 통한 물질적 풍요 측면으로 보면 대니얼 네틀은 주식과 코인의 등락 과정의 심리 상태를 1단계 행복으로 그리고, 등락 결과(장 마감 시의 심리 상태)는 2단계 행복으로, 마지막으로 투자의 장기적인 결과를 3단계 행복으로 보는 면이 있다.
이와는 다른 면으로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 2014>에서 기본적으로 대니얼 네틀이 주장하는 행복의 3가지 의미를 존중하면서도 이중 1단계 행복은 찰나적인 쾌락과 희열의 상태, 3단계 행복은 eudaimonia(자아 성취) 혹은 summum bonum(최고 善의 상태)이라 하여 행복과는 무관한 초월적 상태라 보기 때문에 오로지 2단계 행복 즉, Well-Being만이 행복이라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라면 주식이나 코인의 등락 과정에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나 심리 상태는 오로지 쾌락과 희열뿐이고 행복과는 무관하다는 건데,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나중에 행복 탐구생활에 좀 더 깊이가 있게 되면 더 얘기해 보고 싶은 것은 이런 학자들이 정의하고 있는 행복에 대한 견해와 태도이다.
사실, 서은국 교수의 저서를 먼저 읽은 후, 대니얼 네틀의 저서를 읽었는데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어 각 저서의 출간 연도를 보니 대니털 네틀의 저서가 10여 년 전에 출간된 것으로 보아 두 서적 사이에 인과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건은 <행복의 과학>까지 완독 한 후에 다시 한번 비교를 해 보고 싶다. (전적으로 비전문 탐구자의 눈높이로)
이런 상태가 지금 나의 행복 탐구 상태이다. 어설프게 알고, 흉내 내려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교착 상태에 빠진 듯하다.
물론, 위에 언급한 저자와 그들의 저서만으로 이런 교착에 빠진 것은 아니다.
이런 심리학 학자들 외에도 엔지니어 출신들이 쓴 <행복의 해답(마넬 바우셀, 라케시 사린)>에서는 공학도들 답게 행복을 ‘현실 – 기대 = 행복’이라는 공식으로 행복의 조건문을 만들었는데, 전략기획자로서 이런 조건문을 보면 ‘자산 – 부채 = 자본’이란 공식으로 치환하여 ‘행복 = 자기 자본’이라고 정의하게 되는 우(愚)를 저지른다. 이러면, 자기 자본과 행복 사이에 비례관계가 생겨 내 돈이 많으면 행복도 커진다는 정의에 이르고, 이는 물질적인 풍요와 행복은 관계가 없다는 심리학자들의 견해와 또 상반되게 된다.
이런 상태다.
처음 행복을 탐구해 보자 마음먹고 내심은 이미 정한 결론이 있었다.
뻔하지만, 기대치와 행복의 상관관계로 기대치가 높으면 행복은 낮아지고, 기대치가 낮으면 행복은 높아질 수 있다는 불가분의 관계를 정해 놓았었다.
문제는 행복이란 것이 어떤 감정, 심리 상태, 뇌호르몬 작용, DNA 등으로 딱 잘라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 탐구하고 싶은 긴장과 설렘이 드는 반면에 과연 이 탐구 과정이 끝난 후 쉽고 편하게 많은 사람들과 그 결과를 공유할 수 있을까 란 염려도 되는 게 사실이다.
어쨌든, 욕심부리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행복에 다가서 보기로 하겠다.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