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노트
살다 보면 인생의 선배들에게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라."라는 조언을 듣곤 한다.
한데,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데 전념을 다 하는 이에게 숲을 보라고 조언을 한 들 그 이야기가 도움이 되겠는가. 숲의 생태계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공감대가 없다면 숲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형상일 뿐, 생태계라는 맥락의 이해가 투영되긴 어렵다.
우리는 이런 실수를 많이 한다.
목적, 목표, 방향성, 흐름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 없이 단순히 몇 마디 말(Order)로 실행자가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라는 그런 실수 말이다. 어떤 주문자는 본인도 이해 못 하는 말(Order)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잘못된 언어와 뉘앙스를 섞어 최초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말(Order)을 토스하기도 한다.
하여, 숲을 그리고, 때론 나무를 심는 수많은 경험 끝에 느낀 건.
각자의 역할과 책임, 권리와 의무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 것이 필요하다란 것이다.
우리는 백반집에서 한 상의 음식을 만들어 서빙하는 종업원이 아니다.
기업의 크기와 업종, 업태, 업무의 다양성, 조직의 문화는 다를지라도 최소한 직무와 직위, 직급으로 역할과 책임이 비교적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내가 설계자가 되어야 하는 경우는 숲을,
내가 실행자가 되어야 하는 경우는 나무를.
각자의 책임과 권한, 의무에 맞게 목표를 수행하면 그뿐이다.
때론, 실행자가 엉뚱한 숲을 '상상'하 듯, 설계자가 한 그루, 두 그루 나무에 '집착'하는 마이크로 한 매니징도 경계해야 한다.
이렇듯. 숲을 보고, 넓고 크게 본다는 것은 어쩌면 '상상의 영역'이기에 이해와 공감대를 상호 갖기 위한 끈기 있는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내려오는(Cascading) 말(Order)은 필연적으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의 결과를 면할 수 없다.
무언가를 보고 이해와 공감하기 위해서는 '목적과 목표, 지향점'의 가치성과 선명함이 전제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