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뒤집혔던 날

아침노트

by 까칠한 펜촉

아침 출근길, 짙은 회색빛의 구름 속에서 '우루르, 우루르' 하는 울음소리가 연신 들렸다.

보통 '우루르' 다음에는 '쾅!'이 있어야 하는데, '쾅' 소리는 나지 않고 '우루르, 우루르' 하며 마치 용 몇 마리가 곧 싸울 기세로 잔뜩 벼리고 있는 것처럼 묵직하고도 낮은 울림이 계속되었다. 이따금씩 벼락이라도 떨어지는 거 아닌가 하고,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번쩍이는 빛은 없고 낮은 울음소리만 이어졌다.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날이거나, 빛으로 만든 나무뿌리 같은 섬광이 하늘로부터 땅을 향해 내리꽂아 올 때면 어김없이 군대 시절이 생각난다. 이미 제대한 지 수십 년이 지났건 만 그날의 공기 내음과 살갗에 내려앉는 아스라한 습기의 감촉은 수십 년 전 어떤 날의 어떤 곳으로 나를 이끌어 간다.


그럴 때면, '벌써 수십 년이 지났는데?'라는 생각보다는 자연스럽게 그 추억 속으로 기억이 되살아나도록 몸과 마음을 나른하게 맡겨 놓는데 그렇게 하면 그때의 시간과 장소에서 느꼈던 정서가 더 선명하게 오감으로 이어진다. 킁킁거리면 습기 머금은 흙의 냄새라던가 판초의에서 풍기던 쿰쿰한 냄새, 물을 가득 채운 수통에서 나는 비릿한 물냄새, 판초의 밖으로 나온 팔을 직각으로 때리는 손가락 크기라고 느꼈던 빗줄기, 첨벙첨벙 모래 위 해변을 걷는 듯한 군화 안에 고인 물로 잠긴 발바닥의 감촉. '지금 전쟁이 난 건가?'라고 느꼈던 뒷등을 후벼치는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 막사 밖을 나셨을 때 '여기가 어디지?'라고 생각했을 만큼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생경했던 막사 주변의 풍경, 쓰러져 있는 아름드리나무와 곳곳에서 펌프로 퍼올리는 듯한 물줄기를 눈으로 맞닦드렸을 때 '헛!' 하며 뭔가 큰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비로소야 알게 됐던 그날의 모든 일이 생생하다.


그날은 1996년 7월 28일. 강원도 철원, 화천에 엄청난 호우가 내렸던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에 일이다. 얼마 전에도 불현듯 그날의 일들이 생각나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봤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 부대(15사단)에서 60여 명이 사망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뉴스에서는 90명이 넘었다고 하더라.


사이렌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전쟁이 났구나. 난 이제 죽었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다 언제 왔는지 간부들 몇몇이 반바지에 군화를 신고 판초의 걸치고 삽을 들고 나오란 말에 전쟁은 아님을 직감하며 안도했던 것도 잠시, 막사 문 밖에 나섰을 때 당황하던 우리들의 모습이 사진처럼 선명하다.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 있지 않고, 없어야 할 것이 새로 생긴 이상한 광경이었다. 그런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서둘러 60트럭에 올라서부터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눈으로 들어오는 낯설고 무서운 광경과 바로 오늘의 하늘처럼 살벌한 울림으로 '우루르 우루르 우르르' 울리던 머리 위에 세상은 드디어 심판자가 내려오는구나 착각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이제 아이를 찾는다. 7세 정도 된 남자 아이다. 빗물에 휩쓸려 갔는데, 어디까지 어디로 간지 모른다. 살아있을 거라는 기대는 안 하지만 꼭 찾고 싶다." 민심 참모였던 아이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한 얘기다. 군 장교 아파트 뒤편에 있는 둑이 무너지면서 대문짝만 한 바위가 아파트 2개 동을 뚫고 갔다. (이게 쉽게 상상이 되는가? 종이로 만들어진 상자라도 넘어뜨리지 않고 아래쪽에 구멍을 내려면 순간적이고도 엄청난 운동 에너지가 필요한데,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이뤄진 아파트 2개 동을 뚫고 갈 물살의 기세는 어떠했을까?) 상상이 잘 안 될 수 있지만, 이는 그날의 비현실적인 상황에 일부일 뿐이다.


아이는 그날 찾지 못했다. (일주일 후 2~3km 떨어진 헌병대 관할지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얘기만 들었다.) 이내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사단장님 댁으로 이동하여 뒷산 배수로를 확보하던 중 둑이 무너져 이를 피하다가 철책에 다리를 찢긴 일이나 사단장님 사모님이 토사 매몰되어 있던 것을 구조했거나, 우리가 지나온 다리가 2~3분 후에 무너져 끊겼거나 다리가 끊겨 부대 복귀를 못하고 인근 교회에서 그날의 첫 끼니를 빵과 우유로 먹은 것은 그마나 그럴 수도 있는 현실의 이야기다.


그러나, 새벽부터 쉼없이 일하고는 빵 한 조각으로 허기를 때우던 고참 중 하나가 "우리 공병대 새끼들은 뭐 하냐, 빨리 다리를 만들어야 우리가 부대 복귀를 하는데, 잠은 어디서 자냐.."며 투덜거릴 때, 한 간부가 전한 공병대 막사에 토사가 밀려와 공병대 전원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이었고, 그 얘기 후 그 누구도,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군악대였다.

군악대였기에 장례행사에 참여해야 했고 수많은 유가족과 친지들을 앞에 두고 장송곡과 추모곡을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아침엔 특이하게도 대장님께서 '오늘은 연주가 좀 서툴고 틀릴 수가 있다. 그래도 서로 이해하자'라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행사 간에 그 이유를 이해했다. 장례식 행사일에도 비가 내렸는데 사랑하는 젊은 청춘을 보낸 수백 명의 울음이 빗소리를 뚫고 하늘을 덮었으며 우리도 우리의 전우를 잃은 슬픔과 하늘을 뒤덮은 울음에 압도되어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없었다. 우리 모두 흐느끼고 울었기에.


지금 생각하면 그날은 세상이 뒤집혔던 날이다.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도 그러거니와 소중한 자식과 친구, 애인을 잃은 많은 이들이 느꼈을 절망이 더욱 그랬을 것이다.


간혹, TV 프로그램에서 번개 맞은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방영하곤 한다. 나는 번개를 맞아보진 않았지만 번개를 맞는 것만큼의 황당함과 그런 경험에도 운 좋게 살아남아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어떤 동위감을 같은 것을 느낀다.


집중 호우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다.

부디 사랑하는 사람이 안전하도록 기도하고, 또 안부 묻길 바란다.



- 까칠한 펜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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