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것은 그저 생각뿐

아침노트

by 까칠한 펜촉

요 며칠 몸이 좋지 않았다.

'열병인가?'로 시작했던 것이 몸살과 장염이라고 처음 진단을 받았고,

출근길에 고열과 멈추지 않는 기침으로 보다 큰 병원을 가니 기관지염이라 한다.

기관지염이라는 것은 감기가 심하면 흔히 진단받는 병명인지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앓고 나니 이 역시 쉽게 볼 만한 병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비교적 허약한 몸을 타고 태어났다.

그것을 제대로 안 건, 군입대를 하고 신교대에서 훈련을 받을 때였다.

학창 시절에는 달리기를 꽤나 한 편이고 고약한 성질 탓에 싸움도 종종 나섰기에 몸이 허약하다거나 건강 체질이 아니라는 생각을 별로 한 적 없었다.

그런데, 비슷한 또래의 동기들과의 훈련에서 평균치를 밑도는 체력을 경험하고는 생각만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그저 공상과 가깝다는 현실을 처음 느꼈다.


군 자대 배치를 받고는 체격, 체력적인 문제는 더욱 큰 현실로 다가왔다.

예를 들어 20kg의 마사토를 넣은 포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달리거나, 김치깡이라고 부르는 상자에 마사토를 푸짐하니 담고 이를 고참이나 동기와 왼쪽, 오른쪽을 나눠 잡고 달리거나 할 때 나는 가끔 넘어지거나 마사토를 쏟는 실수를 했다.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작업(사역)'이란 것도 낯설었지만 무엇보다 '역시, 서울 놈은 혹은 대학생 껏들은 힘든 일을 안 해 봐서 저렇게 약하고 힘이 없다.' 등으로 갈구는 고참들의 언사는 생전 처음으로 자존감이 무너지는 처음 격는 경험이었다. '난 유약하고, 힘이 없고, 이런 환경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존재라는' 뭐 이런 느낌 말이다.


처음으로 신체를 단련하는 훈련을 시작했던 게 그때다.

일병으로 진급하고서부터는 고참들 눈을 피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근육을 단련할 수 있는 운동을 했다. 벤치 프레스와 아령을 들었다. 그리고,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다. 무거운 것을 들 때의 요령도 터득하게 됐다.


1996년 여름에 강원도에 큰 홍수가 왔고, 우리 부대(15사단)에서 100여 명 가까운 전우가 하루아침에 수마에 휩 쓸려 유명을 달리하였다. 이 수해 복구도 우리 몫이었다. 수해 후 여름에서 가을을 거쳐 겨울이 다가올 때까지 복구 작업은 계속되었다. 수해로 부러지거나 꺾인 아름드리나무를 잘라 차곡차곡 쌓는 일이나 스쿠터 크기의 바위들을 육공 트럭에 싣고 계곡에 버리는 등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 있는 무거운 물체를 밀고 당기고 올리고 내리는 일을 했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이 지나고 상병에서도 꽤 고참급이었던 어느 날 헬기 레펠장에서의 일이다.

대학입시 체력장에서 배치기가 허용되지 않았다면 단 하나도 못했을 턱걸이. 자력으로는 하나도 하지 못했던 턱걸이 봉이 눈에 띄었다. 아무 생각 없이 턱걸이 대에 손을 얻고 몸의 무게를 느끼며 하나, 둘, 셋, 넷 턱걸이를 했다. 한 열 개 남짓하고 내려오니 고참들이 "햐~ OOO 너 이제 턱걸이도 하냐?" 하면서, 후임병들에게 유약했던 신병 때 내 모습을 얘기했다. 입대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험한 작업을 하면서 체력적으로 어려워했던 이등병들은 '설마.. 진짜...' 하는 모습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때 즈음의 나는 20kg 마사토 자루 두 개를 양 어깨에 나눠지고 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시절의 경험은 내게 약과 독이 동시에 되었다.


약이라 하면, 신체를 단련하는 방법 그 자체를 경험하게 됐다는 것이고 독이라 하면, 언제든 마음먹으면 나는 지금보다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의 나태다.


엉덩이를 무겁게 하고 집중하여 문제를 풀어가는 '공부'라는 행위는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뇌'를 단련하는 일종의 훈련일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은 공부라 부르던 업무라 부르던 뇌의 가속성을 쓰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어쩌면 신체를 단련하는,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유독 시간의 투자와 열의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그 운동을 우리는 너무 가볍게 생각만하는 경우가 있다.


며칠 앓고 나선 후,

아침의 출근길에서 평상시 생각만으로 나는 얼마나 가볍게 살고 있는지 뒤돌아 보았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나, 미래를 향한 업무 거나, 작가로서의 비전을 위한 글쓰기나... 너무나도 가벼이 생각만으로 시간을 채우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도 된다.


본디 생각(사유)은 고귀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다.

그러나, 생각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은 가끔 고이고 멈춘다.

고이고 멈춘 것은 새로운 작용과 동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작용과 동기는 신체의 움직임에서 생겨난다.

어쩌면 뇌의 가소성은 신체의 긍정적인 움직임에서 더욱 활발하게 분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벼운 것은 그저 생각뿐

일어나 걷고, 뛰자!



- 까칠한 펜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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